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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 아베’를 넘어선 아베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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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휴일인 9일은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의 결혼 32주년 기념일이었다. 긴자(銀座)의 극장에서 ‘날지 못하는 스페이스맨과 위험한 시나리오,개그마겟돈 미션’이란 긴 제목의 연극을 아키에(昭惠)여사와 함께 관람했다. 그리고 총리공저에서 밤 11시가 넘도록 지인들과 함께 축하 만찬을 했다. 사실 결혼기념일말고도 그에겐 얼마전 축하받을 일이 또 있었다.

“1차 내각때의 경험 위에서, 국민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2720일. 통산 재임일수에서 ‘고향(야마구치현) 대선배’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지난 6일 아베 총리가 출근길에 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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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하는 순간 끝나버린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의 실패가 롱런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1차 아베 내각은 정말 참담하게 끝났다. 52세의 젊은 총리는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강경 보수 정책을 계속 밀어부쳤다. 애국심을 중시하는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청의 방위성 격상,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 제정 등 별렀던 정책들을 일사천리로 강행했다. 국민의 반발이 커졌고, 각료들의 스캔들과 참의원 선거 패배가 결정타가 됐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핑계로 총리직에서 도망치듯 떠났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와 올 11월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에 올라서게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2년전, 13년전과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마음만 급했던 ‘야마구치 도련님’의 미숙함을 극복했다. 밀었다 당겼다, 속도를 붙였다 늦췄다 완급 조절을 할 줄 알게 됐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제 개정 작업을 밀어붙인 뒤 실제 개헌엔 숨을 고르고 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 아베 본인은 주변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1차 내각 때는 국민들의 생각보다 한 보(한걸음)앞서 가려 했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국민들에게서 딱 반 보(반걸음)만 앞서 가겠다고.” 국민들의 일반적인 상식과 정서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이 롱런의 비결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베 총리에게만 정답인 것일까. 경기 판단, 외교안보정책의 성과, 누가 봐도 전 정권과 비슷한데  “우린 다르다”고 강변하는 인사문제, 무엇보다 심각한 국민통합 위기에서 한국의 지도자는 국민들과의 생각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과연 하고는 있는 걸까. 자기 편 국민들만이 아닌 전체 국민들 말이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