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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너무도 비교육적인 ‘자사고 죽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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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심사를 받은 전주 상산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상산고는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 이사장이 세운 학교로 전국 단위로 학생을 뽑는 몇 안 되는 자사고다. 애초 이번 주 중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다음 주로 미뤄졌다고 한다. 다른 자사고도 다음 달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아야 자사고로 재지정된다. 다른 시·도는 70점인데 전북교육청만 기준을 80점으로 했다. 평소 “자사고 폐지”를 주장해 온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재지정 점수를 높였으니 일부에선 정해진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자사고는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봐도 그렇다. 당시 쟁점 중 하나는 자사고가 일반고에 앞서 학생을 뽑는 것을 금지하고 동시에 선발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0조 1항 등의 위헌 여부였다. 당시 위헌 의견이 재판관 9명 중 5명으로 다수였다. 하지만 위헌 정족수(6명)를 채우지 못해 위헌이 나지 않았다. 재판관 5명은 “이 사건 동시선발 조항은 고교 평준화에 매몰되어 ‘사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수월성’ 보장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진보 성향의 재판관 4명은 “자사고에 우수 학생의 쏠림현상이 나타났고, 고교서열화 현상이 초래됐다자사고를 전기학교로 규정하는 것이 더 이상 정당성을 찾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자사고에 대한 시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사고의 존폐 문제는 정당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야 한다.

지난 4월 헌재가 자사고를 일반고와 함께 후기에 선발하도록 한 교육 당국의 조치는 합헌으로 봤지만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 있다. 자사고에 지원했다 떨어지면 원하는 일반고에 갈 수 없도록 한 것(중복지원 금지)은 평등권 침해라는 내용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1지망(1단계)은 자사고, 2지망(2단계)에는 일반고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자사고에 지원했다는 이유로 2지망에 일반고를 쓰는 기회조차 박탈하려 한 교육 당국의 조치는 너무나도 비(非)교육적이다. 고교 서열화를 없앤다는 ‘신성한 목표’에 역행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런 위헌적인 행정이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더 놀랍다. 헌법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서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자사고 재지정 심사도 문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은 자사고 폐지다. 이걸 내걸고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평가하는 해에 기준을 높인 것도 적절하지 않다. 학생에게 “내가 너의 지난 과거를 보다 엄정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니 “자사고 죽이기”란 비판도 나온다. 앞으로 이렇게 평가할 테니 그 기준에 맞게 교육을 하라고 하는 것이 교육적이며 상식적인 처사다.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하는 것도 근시안적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몇 년 단위로 정권이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지위가 흔들린다면 누가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나서려고 할까.

분야는 다르지만 논란이 됐던 면세점의 특허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장기적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입시 부정 같은 중대 비리가 없다면 자사고의 재지정 심사 기간도 지금보다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