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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 전희경 "김원봉이 국군 뿌리? 대통령 선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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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재인 정부의 선별적 추모에 분노하는 거예요. 왜 천안함이나 연평해전 관련 행사는 찾지 않고, 이번에는 해군 사고에도 찾지 않고….”
4일 대전 국립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묘비를 닦고 나오던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의 두 눈은 다소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어른들이 울어서 나도 모르게…”
전 의원은 쑥스럽다는 듯 말하고는 다시 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묘역으로 향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일부 당직자들은 현충일을 앞두고 4일 이곳을 찾았다. 국회에서 치러진 오전 행사를 마무리하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40분. 구름 한 점 없는 31도의 날씨는 한여름처럼 푹푹 쪘다.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 묘역을 방문하고 충혼탑에 참배까지 마치고 나오는 전 의원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에도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보낸다, 잠수사들을 보낸다, 대책을 서둘러 지시했잖아요.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왜 그런 정성과 관심이 유독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만 달라지냐는 겁니다.”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의 묘비석을 닦는 전희경 의원.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의 묘비석을 닦는 전희경 의원.

보수의 여전사, 보수의 잔다르크.
한국당 전희경 의원을 묘사하는 수식어다. 국회의원 300명 중엔 한국당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어느 쪽에서 정치 생활을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의원이 적지 않다. 특히 비례대표 중에 그런 경우가 많다.

전 의원의 경우는 반대다. 초선 비례대표임에도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정치활동은 언뜻 상상이 가지 않는 정치인이다. 정치 입문 후 활동을 봐도 ‘좌파정권 방송장악 피해자지원 특별위원회 위원’,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회 위원’ 등 색깔이 명확하다. 비교적 일찌감치 시작한 유튜브 ‘전희경과 자유의 힘’은 구독자가 11만 3600명에 달한다.

우파 색을 낼수록 인기는커녕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게 최근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기란 웬만한 강단이 아니고선 쉽지 않다. 단지 신념이 아니라 그의 탄탄한 논리와 풍부한 사례에 감복해 팬이 됐다는 이도 적지 않고, 그만큼 일정도 바쁘다. 4일 오전도 원내대책회의(오전 8시)-당 대표실 티타임(오전 8시30분)-브리핑(오전 10시)-2020 경제대전환 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오전 11시) 등 10분의 짬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이 4월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경수 경남지사 보석 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이 4월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경수 경남지사 보석 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날 오후 5시 현충원 참배 일정이 마친 뒤에야 겨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났다.

문재인 정부의 주류인 586 정치인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전희경이 보는 586 정치인은 어떤 존재인가.  
“586중에서도 정말 열심히 살고 그 시절에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투쟁을 한 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그야말로 운동이 업(業)인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분들은 대한민국을 위한 운동을 하는지 그야말로 북한을 염두에 두고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은 자신들이 디자인하는 이상향대로 설계하고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목적이 정당하기 때문에 수단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사고도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청와대와 586 정치인 그룹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 40대라고 한다. 전 의원도 40대인데.
“한때 대한민국을 위해 586그룹이 주장했던 민주, 인권, 평화, 정의 등이 3040 세대 가슴에도 들어와 있다. 내 삶을 챙기느라 바빴는데 우리를 대신해 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부채의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586도 기득권이고, 그들이 외쳤던 가치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어, 이게 뭐지? 저 사람들이 내가 선배라고 형이라고 했던 그 사람들이 맞아?’라는 물음이다. 김제동씨의 강연료 1550만원 파장이 컸던 것도 이런 회의감과 무관치 않다.”

전 의원은 2016년 총선 당시 당선 안정권인 비례대표 9번을 받았다. 김무성 대표가 영입한 '젊은 인재 6인' 중 유일한 당선자였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전 의원을 반드시 국회 입성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가 2016년 1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젊은 전문가 그룹 영입기자회견을 열고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배승희 변호사, 변환봉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총장, 김태현 변호사, 최진녕 전 서대변인, 박상헌 정치평론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가 2016년 1월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젊은 전문가 그룹 영입기자회견을 열고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배승희 변호사, 변환봉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총장, 김태현 변호사, 최진녕 전 서대변인, 박상헌 정치평론가 등을 소개하고 있다.

걸출한 커리어가 없는 시민단체 실무자 출신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번호를 받았다.
“자유경제원,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우파 NGO와 싱크탱크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국정교과서 논란 때 좌편향 역사교과서 문제를 지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좌편향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이나 경제에 대해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전파하면서 '보수의 잔다르크' 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다가 새누리당 의원총회 특강을 했는데, 총선을 앞둔 당에서 '저런 사람이 정치권에 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 경력 때문인지 국회에서 교육위로 활동했다. 자녀들에게 권하는 책이 있나. 
“아이들에게 ‘지금 읽는 책과 다른 내용을 말하는 책도 있으니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 애들도 그다지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 거 같다. (웃음)”

6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약산 김원봉을 언급해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이와 관련된 질문을 전 의원에게 추가로 했다.

김원봉 논란이 뜨겁다.
“국가 원수는 한 국가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그 역사 인식이 머물러야 한다. 개인으로서 김원봉을 존경할 수 있다. 그런데 6·25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에 현충원에 가서 국군의 뿌리라고 결부시킨 건 대통령으로서의 선을 넘었다. 순직 장병보다 6·25 공로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은 사람을 현충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입으로는 통합을 말하면서 대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유발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당내에서 전 의원은 ‘고독한 투사'로 분류된다. 한 의원은 “초선이지만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의원은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도 대변인을 했고,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당내에서 딱히 어떤 계파로 묶이지 않는다.
“일부러 무리 속에 들어가거나 다수의 그룹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떠오른 발상을 다듬고, 곱씹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내가 주장이 강하다고 하는데, 그건 그만큼 의심하고 회의해서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며, 사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릴 수도 없다. 욕을 먹고 트집이 잡혀도 내 길을 뚜벅뚜벅 갈 뿐이다. 보수가 이토록 몰락한 건 신념으로 무장하지 못한 채 이익을 좇아서 아닐까. 내가 유튜브를 하는 건 나를 더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파의 가치와 체계를 아카이브처럼 쌓아간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두 대표 체제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했는데도 큰 설화가 없었다.
“명확하게 말하고 정확성을 기하는 것과 이걸 거칠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입장이 다르고 정파가 다르고 지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다. 정당 대변인이란 이토록 대립적인 사회에서 발언 수위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다. 두루뭉술하지는 않되, 인격적 모독이나 혐오감은 들지 않게끔 노력한다. 특히 방송이나 토론에서는 일부러 말을 한 템포 늦춘다. 입이 머리보다 앞서지 않도록 한다."  
자유한국당 이만희 원내대변인(왼쪽)과 전희경 대변인이 3월 13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이만희 원내대변인(왼쪽)과 전희경 대변인이 3월 13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내년 총선에서 전 의원이 과연 어디로 출마하는지도 당내에선 얘깃거리다. 전투력을 인정받은 만큼 공천이 유력하다는 시각이 많다. 전 의원이 유년 시절을 보낸 의정부는 현역인 홍문종 의원이 4선을 한 지역이다.

내년 총선에 어디에 출마할 생각인가.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계획은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다. 진심으로 어디에 출마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당의 지침을 따를 뿐이다. 보수우파가 한국사회에서 다시 재평가받는 데 미력을 다하고 싶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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