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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우습게만 볼 수 없는 교활한 녀석들

중앙일보

입력

영화 ‘기생충’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포스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관객이 몰리고 있다.
반지하 방에서 백수로 살아가는 기택(송강호) 가족이 영화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들이 널찍한 잔디밭이 있는 박 사장(이선균) 가족에 얹혀살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제목은 기택 가족이 ‘인간 기생충’으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으로 하나둘 들어가 살게 되는 과정은 나름 치밀한 작전의 결과다.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에 전시된 영화 기생충 포스터.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에 전시된 영화 기생충 포스터. [뉴스1]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생충도 교활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번식을 위해 숙주의 몸을 자기에게 맞게 뜯어고치기도 하고, 숙주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아예 숙주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기생충은 치열하게 적응하고, 진화했다.
우리가 기생충을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이유다.

자연계에선 흔해 빠진 상호작용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의 기생충 컬렉션 중 일부. [사진 스미소니언]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의 기생충 컬렉션 중 일부. [사진 스미소니언]

기생(寄生, Parasitism)은 생물 종(種)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관계 중 하나다.
기생 생물이 숙주(宿主, host)의 몸속이나 몸에 붙어살면서 이익을 챙기고, 동시에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양쪽이 이익을 주고받는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이나, 한쪽은 이익을 받으면서도 다른 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편리공생(片利共生, commensalism)과는 다르다.
또, 기생 생활이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포식(捕食, predation)과도 차이가 있다.
다만, 숙주보다는 번식 기간이 짧은 게 보통이다.

자연계에서는 수백만 가지에 이를 정도로 기생(寄生)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구충(鉤蟲, hookworm)·회충 같은 장내 기생충은 물론 머릿니·모기 같은 곤충도 기생충이다.
물고기 중에서도 기생 생활을 하는 종류가 있다.

또, 말라리아 원충 같은 원생동물, 뽕나무버섯 같은 곰팡이, 겨우살이 같은 식물도 기생생물이다.
동·식물이나 다른 미생물에 감염하는 세균·바이러스도 기생 생물로 분류된다.

탁란이나 자궁 속 태아도 일종의 기생

수컷 딱새가 자신 보다 몸집이 훨씬 큰 어린 뻐꾸기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대리모인 딱새의 둥지에서 먼저 부화하는 뻐꾸기는 둥지 안의 딱새 알을 자신의 몸으로 밀어내 제거한 뒤 둥지를 독차지하며 자란다. 둥지를 벗어난 어린 뻐꾸기는 독립해서도 한동안 대리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탁란은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의 독특한 종족번식 방식이며 이들은 자신이 직접 자식을 키우지 않고 딱새, 뱁새, 개개비, 휘파람새 등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새의 둥지에 침입해 알을 낳는다. [중앙포토]

수컷 딱새가 자신 보다 몸집이 훨씬 큰 어린 뻐꾸기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대리모인 딱새의 둥지에서 먼저 부화하는 뻐꾸기는 둥지 안의 딱새 알을 자신의 몸으로 밀어내 제거한 뒤 둥지를 독차지하며 자란다. 둥지를 벗어난 어린 뻐꾸기는 독립해서도 한동안 대리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탁란은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의 독특한 종족번식 방식이며 이들은 자신이 직접 자식을 키우지 않고 딱새, 뱁새, 개개비, 휘파람새 등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새의 둥지에 침입해 알을 낳는다. [중앙포토]

뻐꾸기가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둥지에 알을 낳으면,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제 알인 줄 알고 부화시키고 정성껏 먹이를 물어다 주며 기른다.
이를 탁란 혹은 기생 부화라고 한다.
뻐꾸기 새끼 탓에 정작 자신의 알은 둥지 밖으로 버려지는 해를 입는다고 보면, 탁란도 크게 봐서 기생의 일종이다.

작은 수컷이 큰 암컷에 빌붙어 사는 심해 아귀의 경우 ‘성적 기생(sexual parasite)’으로 볼 수 있다.

모체의 자궁에서 자라는 태아도 어느 정도 기생충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태아는 모체의 면역 체계를 피해서 영양분을 얻어야 한다.
태아가 지나치게 많은 영양분을 가져가면 모체는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밖에 기생생물이 또 다른 기생생물의 숙주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중복 기생(hyperparasitism)’이라고 한다.

물어뜯은 상처의 응고를 방해

구충(십이지장충) [중앙포토]

구충(십이지장충) [중앙포토]

사람의 창자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구충(鉤蟲, 십이지장충)의 알은 흙에서 부화해 작은 유충으로 자란다.
유충은 오염된 음식을 통해 직접 장에 들어가기도 하고, 피부를 뚫고 들어간 뒤 모세혈관과 심장, 폐, 식도를 차례로 거쳐 장으로 들어간다.

구충은 십이지장충으로 불렸고, 그 이름처럼 십이지장에도 사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작은창자에 산다.
장 속으로 들어가면 구충은 1㎝ 정도의 성체로 자란다.
구충의 주둥이에는 비수처럼 생긴 이빨이 원을 이루며 돋아나 있다.
구충은 십이지장의 벽에 이빨을 박고 살점을 뜯어먹거나 피를 빤다.

그런데 만일 혈관이 찢어지면 빠르게 혈액 응고반응이 진행된다.
그렇게 되면 구충이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할 시간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구충은 응고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보낸다.
마치 거머리가 혈액 응고반응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응고 인자를 중화함으로써 혈소판이 응집하지 못하게 하고, 계속 피를 빨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구충은 유유히 십이지장 벽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고양이를 쫓아가는 쥐

톡소플라스마 곤디의 원충. [중앙포토]

톡소플라스마 곤디의 원충. [중앙포토]

기생충은 쥐와 같은 포유동물의 뇌에 침투해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톡소플라스마(Toxoplasma gondii)의 원충(原蟲)이다.

쥐가 톡소플라스마 원충에 감염되면 활동적으로 변한다.
고양이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쫓아가기도 한다.

감염된 쥐가 고양이 오줌 냄새를 맡으면 성적 이끌림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고양이 오줌이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최음제로 작용하는 셈이다.
‘최음제’ 때문에 겁 없이 고양이를 쫓아가는 쥐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톡소플라스마 원충이 쥐를 이렇게 조종하는 것은 원충의 번식 때문이다.

원충은 고양이 소화기관에서 암수가 만나 유성생식을 하고, 알을 낳는다.
알은 배설물과 함께 고양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퍼진다.
원충은 다시 고양이 몸속으로 들어가야 번식할 수 있다.
고양이 몸에 들어가기 위해 쥐가 필요한 것이다.
실수로 고양이 배설물을 건드린 쥐는 원충의 알에 감염된다.
감염된 쥐가 고양이에게 먹히도록 원충은 쥐를 조종하는 것이다.

인간도 조종…자살·정서불안 초래

톡소플라스마 원충의 감염 경로.

톡소플라스마 원충의 감염 경로.

문제는 사람도 톡소플라스마 원충에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양이 배설물을 치울 때, 고양이 배설물로 오염된 물을 마실 때다.
채소를 통해, 제대로 익히지 않은 쇠고기·양고기를 통해 옮을 수도 있다.

이 원충 감염과 사람의 자살·조현병 사이에 통계적 연관성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감염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평균적인 정서불안 수치가 높았다.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톡소플라스마 원충에 감염된 사람은 창업에 적극적인 경향을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감염되지 않은 학생들보다 비즈니스 계통의 전공을 택한 경우가 1.4배였다.
그 전공 중에서도 회계나 재무보다는 경영이나 창업 관련 공부를 하는 경우가 1.7배였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전 세계 인류 중 30억 명이 이 톡소플라스마 원충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서는 10~20%, 미국에선 22%, 프랑스에선 50% 정도가 이 원충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영국은 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지 않는 식습관 때문에 톡소플라스마 원충 감염률이 높은 편이지만, 한국인은 식습관이 다르고 감염률도 낮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적혈구를 번식 공장으로 개조

말라리아 원충의 생활사. 1. 모기가 사람을 물면 원충의 포자소체가 인체로 들어온다. 2. 사람의 간에서 번식한다. 3. 분열소체가 사람의 적혈구를 공격한다. 4.원충이 암수 생식자로 분화된다. 5.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게 되면 원충이 모기의 체내로 들어간다. 6. 짝짓기 후 접합자가 되고, 모기 체내에서 포자소체를 생산한다. [자료 미국 국립보건원(NIH)]

말라리아 원충의 생활사. 1. 모기가 사람을 물면 원충의 포자소체가 인체로 들어온다. 2. 사람의 간에서 번식한다. 3. 분열소체가 사람의 적혈구를 공격한다. 4.원충이 암수 생식자로 분화된다. 5.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게 되면 원충이 모기의 체내로 들어간다. 6. 짝짓기 후 접합자가 되고, 모기 체내에서 포자소체를 생산한다. [자료 미국 국립보건원(NIH)]

말라리아란 말은 중세 이탈리아어 mala aria에서 온 말이다. ‘나쁜 공기(bad air)’란 뜻이다. 전염되는 병이란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던 때 붙인 이름이다.
말라리아모기 암컷이 사람을 물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플라스모디움(Plasmodium) 속(屬)의 원충(단세포 동물)이 사람의 혈관으로 들어온다.
오이처럼 생긴 포자소체가 들어오는 것이다.

원충의 포자소체는 혈관을 타고 사람의 간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4000여 마리의 분열소체로 번식한다. 포도송이 모양처럼 자란다.
분열소체는 다시 적혈구를 공격, 그 속에서 숫자를 늘린다.
분열소체는 헤엄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혈관 벽을 타고 다니는데, 암벽 등반하는 것처럼 걸쇠를 박아 끌어당기며 전진한다.
분열소체는 적혈구 세포막에 구멍을 내는데, 구멍을 낸 다음에는 그 걸쇠를 이용해 틈을 벌린 뒤 적혈구 안으로 뚫고 들어간다.

말라리아 원충의 침입과 증식 후 손상된 적혈구 모습. [중앙포토]

말라리아 원충의 침입과 증식 후 손상된 적혈구 모습. [중앙포토]

적혈구 속으로 들어간 분열소체는 적혈구 표면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적혈구가 혈관 벽에 달라붙게 한다.
이는 노쇠한 적혈구를 걸러내 파괴하는 비장(脾臟)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루가 지난 뒤 적혈구를 터뜨리고 나온 분열소체는 다시 다른 적혈구를 찾아 공격한다.

그러다 분열소체는 암수 구별이 되는 생식자가 된다.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게 되면 생식자가 모기의 몸으로 들어가고, 생식자는 모기 몸속에서 짝짓기한다.
짝짓기 후에는 단상접합자가 만들어지고, 단상접합자는 모기 몸속에서 수천 마리의 포자소체로 분열한다.

말벌 유충 먹이가 된 ‘좀비’

말벌에 포획돼 '좀비'가 된 바퀴벌레. [중앙포토]

말벌에 포획돼 '좀비'가 된 바퀴벌레. [중앙포토]

에메랄드바퀴말벌은 미국바퀴벌레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먼저 말벌은 바퀴의 가슴 부위를 침을 꽂고 마취제를 투입한 뒤 날아간다.
바퀴가 꿈틀대다 잠잠해지면 말벌이 다시 와 바퀴의 식도 신경 마디를 찌르고 독소를 주입한다.

첫 번에 주사한 마취가 풀리고 바퀴가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더라도 이 두 번째 독소 탓에 바퀴는 순종적으로 변한다.
말벌은 바퀴의 더듬이 끝을 조금 잘라내고 체액을 빨아먹는다.
조종을 받는 바퀴는 이 과정에서 몸에 달라붙은 곰팡이나 다른 기생충을 없애면서 몸을 깨끗이 단장한다.
말벌이 알을 잘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말벌은 바퀴의 더듬이를 붙잡고 자기 둥지로 끌고 간다.
둥지 속에서 말벌은 바퀴의 다리에 알을 한 개 낳는다.
바퀴는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5주 정도 살아 있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목숨만 유지하는 ‘좀비’ 신세다.

말벌의 알은 애벌레로 부화해 바퀴의 몸을 먹어 치운다.
다 자란 말벌이 바퀴의 몸을 뚫고 나오면 숙주로서의 바퀴 역할은 끝난다.

말벌 유충이 자라고 있는 무당벌레.

말벌 유충이 자라고 있는 무당벌레.

말벌은 바퀴 대신 무당벌레를 이용하기도 한다.
무당벌레를 공격해 몸속에 알을 낳는다.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면 무당벌레의 배를 뚫고 나와 무당벌레 다리 사이에 고치를 튼다.
이때까지도 무당벌레는 목숨을 부지한 채 고치 틀 공간을 내주게 된다.

귀뚜라미가 물에 뛰어드는 이유

기생충에 감염돼 애벌레처럼 퉁퉁 부은 달팽이의 눈자루,

기생충에 감염돼 애벌레처럼 퉁퉁 부은 달팽이의 눈자루,

달팽이도 기생충의 숙주가 된다.
달팽이는 새의 배설물을 먹는데, 배설물 속에 있던 기생충 알이 달팽이 몸으로 들어온다.
기생충의 유충은 달팽이의 눈이 달린 눈자루로 이동한다.

기생충 때문에 달팽이 눈자루는 퉁퉁 붓는다.
그러면서 달팽이는 어두운 곳 대신 밝은 곳으로 올라가는 행동을 보인다.
퉁퉁 부은 달팽이 눈자루가 새에게는 꿈틀대는 애벌레처럼 보인다.
새는 달팽이를 잡아먹거나 눈자루를 쪼아먹는다.

기생충은 새의 내장으로 들어가고, 기생충은 거기서 성숙해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은 또다시 새의 배설물에 섞여 세상으로 나온다.

모양선충과 바퀴벌레.

모양선충과 바퀴벌레.

털 모양의 기생충인 모양선충(毛樣線蟲)은 귀뚜라미에게 더 큰 피해를 요구한다.
모양선충은 알이 물속에서 부화한다.
그런데도 육지 곤충인 귀뚜라미나 메뚜기를 숙주로 조종, 물에 뛰어들어 빠져 죽게 한다.

모양선충은 알에서 부화한 뒤 물속에 같이 있던 모기 유충에 침투한다.
모기 유충이 자라서 모기가 되면 모양선충도 물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래서 기생충으로서는 다시 물로 돌아올 방법이 필요하다.
귀뚜라미를 이용하는 이유다.

모기는 귀뚜라미가 곧잘 먹는 먹이 중 하나다.
모양선충은 모기가 귀뚜라미에게 먹힐 때 함께 귀뚜라미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귀뚜라미의 시각체계를 어지럽힌다.
귀뚜라미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데, 밝은 곳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귀뚜라미가 활동하는 밤 시간대 숲속에서는 대체로 물가가 훤하다.
귀뚜라미는 밝은 곳을 좇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결과 모양선충의 성충이 물로 돌아와 번식하게 된다.

누가 기생충인가

미 항공우주국 인공위성이 촬영한 지구. 지구 생태계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중앙포토]

미 항공우주국 인공위성이 촬영한 지구. 지구 생태계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중앙포토]

서민 단국대 의대(기생충학) 교수는 그의 책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에 이렇게 썼다.
“주위 사람들에게 기생충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생명체고, 볼수록 매력이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일반인으로서는 기생충이 매력이 있다고 하긴 힘들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는 걸 인정할 순 있겠다.

자연계에는 수백만 가지의 기생생물이 존재한다.
기생 현상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기생이 사라지면 다 좋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말라리아 같은 질병은 사라지겠지만, 기생충이 없다면 우리 몸의 면역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알레르기 질환이나 자가 면역 질환을 앓게 될 수도 있다.
또, 농작물의 해충을 억제하는 기생생물이 사라지면 농작물 수확량이 급감할 수 있다.

동물이 암수로 진화한 것, 즉 유성생식을 하게 된 것도 기생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학설도 있다.
짝을 찾아다녀야 하고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성생식을 택한 것은 서로 유전자를 섞음으로써 기생충에 훨씬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면에서 기생충은 생명체의 진화를 촉진한 역할을 한 셈이다.

지난 2017년 11월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JSA 귀순 북한 병사 2차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이국종 교수가 병사 배에서 나온 기생충 제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11월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열린 JSA 귀순 북한 병사 2차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이국종 교수가 병사 배에서 나온 기생충 제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2017년 귀순한 북한군 병사에게서 기생충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민들은 기생충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일선 약국에서는 구충제 판매가 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 3월 허선 한림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인의 회충·편충 양성률은 0.5%를 밑돌고 있어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또는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는 건 권장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2005년 11월 중국산 김치에 이어 일부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당시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하는 시민들이 급증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지난 2005년 11월 중국산 김치에 이어 일부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당시 약국에서 구충제를 구입하는 시민들이 급증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이제 2년 만에 다시 시민들은 영화 때문에 ‘기생충’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됐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마르크스와 레닌은 부르주아와 관료에게 ‘인간 기생충’이란 말은 사용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기생충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돼왔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Gaia) 이론’에서는 인류 전체를 하나의 ‘기생충’으로 보기도 한다.

지구 환경을 바꾸고 황폐화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인류가 기생충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숙주(지구 생태계)가 완전히 멸망한 후에는 기생충(인류)도 더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참고문헌≫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 을유문화사.
●‘숙주인간’. 캐슬린 매콜리프 지음, 김성훈 옮김. 이와우.
●‘기생충 제국’.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궁리.
●‘Microbial Ecology’. R.M. Atlas and R. Bartha. The Benjamin/Cummings Publishing Company,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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