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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의 10대 임신율’ 온두라스 여성들 들고 일어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낙태와 피임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온두라스에서 사후 피임약 규제가 완화될 조짐이 싹트고 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 낙태·사후 피임약 불법 #2009년 사후피임약 금지 후 10대 임신↑ #사후피임약 합법화 캠페인에 변화 조짐 #성폭행 피해 여성들 UN에서 여론 일으키기도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인구 956만명의 이 작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10대 임신율로 악명을 떨쳐왔습니다. 온두라스보다 10대 임신율이 높은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힘든 사하라 이남의 일부 아프리카 국가뿐이라고 하는데요.

온두라스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산부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 MedicusMundi 홈페이지]

온두라스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산부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 MedicusMundi 홈페이지]

이런 오명의 배경에는 빈곤으로 인한 교육 기회 단절과 엄격한 피임 규제 정책 등이 있었습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온두라스는 가톨릭 국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여성의 재생산권을 규제해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불허할 뿐 아니라 사후피임약을 사용하는 것 또한 불법이라고 합니다. 또 온두라스의 초등 교육 수료 이후 자퇴율은 약 30%로 중남미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원천 봉쇄된 낙태 시술과 사후 피임약 사용, 낮은 수준의 성교육은 지난 10년간 온두라스의 10대 임신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동력이 됐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온두라스 임산부의 약 25%는 10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온두라스에도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로이터는  7일 “온두라스 낙태 금지법 유지, 사후피임약 규제는 완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온두라스 보건부 고위 관료를 인용해 “보수 성향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낙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사후피임약 사용 규제는 완화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최근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사후피임약 합법화 캠페인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이름은 ‘있는 그대로 말하라’는 뜻의 ‘아블레모스 로께에스(Hablemos lo que es)’라고 하는데요. 캠페인을 이끄는 여성들은 정치인들이 사후피임약의 부작용을 과장하고 있다며 “가짜 뉴스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 말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캠페인 시작 한 달 만인 지난 3월 약 1000명의 여성이 온라인 운동에 동참하며 변화에 대한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넉 달이 지나자 온두라스 보건부가 사후피임약 사용에 대한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실상 한발 물러선 겁니다.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논쟁은 온두라스뿐만이 아닌 대부분 중남미 국가에서 현재 진행형입니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고 있고, 가톨릭은 교리로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국가의 낙태 규제 수준은 여성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일으킬 만큼 엄격합니다. 니카라과는 성폭행과 근친상간을 포함해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과테말라는 임산부가 사망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에콰도르는 임산부가 사망할 위험이 있는 경우와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합니다. 온두라스는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는 물론, 사후피임약조차 허용하지 않고요.

지난 5월 29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중남미 출신 성폭행 피해자 여성 4명이 “낙태를 방해했고 적절한 보건 관리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각 자신의 모국인 니카라과, 에콰도르, 과테말라를 제소해 국제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습니다.

가디언과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12~14살의 나이에 친척 남성과 성직자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네명의 여성 모두가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도 실형 선고를 받지 않았다고 외신은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성인이 된 이후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면서 낙태 규제를 완화하라고 유엔에 호소하고 나선 겁니다.

이후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NGO들까지 중남미 여성 인권 상황에 대해 거세게 비난하며 이들 국가는 안팎으로 압박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온두라스가 사후피임약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도, 최근 거세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 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시위 참가자들이 드럼을 치며 행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시위 참가자들이 드럼을 치며 행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극도로 제한해온 온두라스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운동이 여성 재생산권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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