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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들 "연봉 1600만원인데···" 1550만원 김제동 논란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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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결국 강연은 취소됐지만 방송인 김제동 씨의 강연료 1550만원 논란은 최근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강연료가 과도하다’며 정치권에서는 공세도 이어졌죠.

[여의도인싸]

“김제동씨는 ‘판사와 목수의 망치가 동등하게 대접받는 평등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평등한 세상이라더니 왜 본인의 마이크만은 평등하지 않은가.”(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
“정년 청년을 생각하고 위한다면, ‘8350원x1시간 30분’이 마땅하다.”(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

방송인 김제동. [연합뉴스]

방송인 김제동. [연합뉴스]

그런데 김씨의 강연료 논란에 가장 박탈감을 느끼는 직업중 하나가 대학 시간강사가 아닐까 합니다. 경남의 한 4년제 대학교 시간강사인 A(49)씨는 박사 학위를 얻는 데까지 11년 반이 걸렸다고 합니다. A씨는 “우리 대학 시간강사들의 평균을 내 보니 한 학기에 4.4학점의 강의를 맡는다. 이를 연봉으로 계산하면 1188만원, 월급으로는 99만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A씨 가족은 생계유지를 위해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A씨는 “강사 한명이 한 학기에 맡을 수 있는 강의가 6학점인데, 이를 연봉으로 계산하면 1600만원가량 된다”며 “김제동씨의 1550만원 강연료를 보면 배가 아프긴 하다”고 털어놨습니다. A씨에 따르면, 그의 동료들은 보통 전공 관련 책을 내서 인세로 부가 수입을 올리거나, 학술연구재단 등의 프로젝트에 응모해 연구비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해고된 경험이 있는 한 시간강사는 “강연료만 놓고 보면 김제동씨의 강의는 ‘귀족 강의’인 셈”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대학 강사 및 학생 등 집회 참가자들은 대학 당국이 개정 강사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고 비용절감 논리로 이미 지나치게 줄여 온 강좌 수를 더 줄이고, 졸업이수학점을 줄이는 한편 대형 강좌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풍선을 들고 있다. 대학 강사 및 학생 등 집회 참가자들은 대학 당국이 개정 강사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고 비용절감 논리로 이미 지나치게 줄여 온 강좌 수를 더 줄이고, 졸업이수학점을 줄이는 한편 대형 강좌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강사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강의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태까지 시간강사들은 법적으로 교원의 대우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강사의 연구 능력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학교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교원들이 부당한 해임이나 재임용 거부 등의 처분을 받았을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청구를 하지도 못했죠. 공개채용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친한 교수 등을 통해 ‘알음알음’ 채용이 이뤄지는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학강사 대량 해고 대책 마련 및 강사제도개선협의회 합의문 성실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학강사 대량 해고 대책 마련 및 강사제도개선협의회 합의문 성실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상황이 8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으로 변화가 생깁니다. 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에게 법적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 기간을 1년 이상 보장하며 ▶재임용 심사 통해 강사직을 3년간 유지하게 하는 등,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법입니다. 취지는 시간강사의 복지를 증진한다는 것이지만 오히려 이법 때문에 많은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대학들이 강사 인건비 증가에 부담을 느껴 강사 채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마치 저임금 근로자들을 위한다는 최저임금 인상이 되려 많은 저임금 일자리를 없앤 것과 똑같은 현상입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현장 안착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현장 안착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교육부가 부랴부랴 보완책을 마련중이지만 얼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봐야 합니다. 김용섭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대학에서 강사들이 줄어들면 강의 부담은 고스란히 전임 교수들에게 전달된다. 전임 교수들의 강의가 늘면 늘수록,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교수들의 강의 부담은 또 학생들의 피해로 전달된다. 특히 외국어 수업의 경우에는 학생 20명 정도의 강의에서도 말소리를 잘 듣기 어려울 텐데, 40명씩 들어가서 외국어 강의를 듣기란 정말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에서 떼로 모여 강의를 듣는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냐는 겁니다.

물론 대학측이 인건비를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대학들도 요즘 전부 재정이 쪼들린다고 아우성인 판에 막무가내로 대학을 압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마냥 최저임금을 올려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3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강사 구조조정 저지와 학습권 보장 결의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인 김제동 씨의 1550만원 강연료 논란을 대학 시간강사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입니다. 새로 시행될 강사법이 시간강사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강사들의 처우 개선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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