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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은 '블랙' 쓰촨은 '핑크'···中 매출 2조, 이 기업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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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은 K패션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다. 청담동 유행이 6개월 뒤면 상하이에 상륙한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 진출해 돈 번 한국 패션 브랜드는 드물다. 2000년대 초부터 패션 대기업은 장밋빛 전망을 품고 진출했지만 번번이 쓴맛을 봤다.

문옥자 이랜드 시스템스 대표가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명동 스파오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문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곰돌이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배치된 게 가장 호감을 주는지 결정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분석을 통해 소비자가 세 마리의 곰이 아래 위로 포개진 형태를 가장 귀엽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티셔츠 장식으로 사용됐다. [사진 이랜드]

문옥자 이랜드 시스템스 대표가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명동 스파오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문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곰돌이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배치된 게 가장 호감을 주는지 결정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분석을 통해 소비자가 세 마리의 곰이 아래 위로 포개진 형태를 가장 귀엽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티셔츠 장식으로 사용됐다. [사진 이랜드]

이런 와중에 중국에서 연간 2조원(지난해 기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있다. 국내 재계 42위 그룹인 이랜드다. 1994년 진출해 스파오 등 50여개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이룬 성과다. 2000년 연 매출 90억원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눈부신 도약이다. 뭐가 다를까. 이랜드 관계자는 비밀 병기 중 하나로 이랜드시스템스를 꼽는다. 이곳은 중국 빅데이터 분석팀을 두고 세밀한 분석을 내놓는다. 인구 14억명 시장인 만큼 지역별 공략법이 각각 다른 나라인 것처럼 크게 차이가 난다. 당연히 시즌별로 ‘밀어야 하는 아이템’도 다르다. 각 지역에서 좋아하는 색과 질감부터 기후와 소비자 기질까지 고려한다. 시스템스 중국 분석팀이 중국 소셜미디어와 댓글, 주요 쇼핑 사이트 후기 길거리 패션에서 ‘한 땀 한 땀’ 모은 정보는 중국 현장에서 디자이너와 상품기획자(MD)가 바로 쓸 수 있는 핵심 정보가 된다. 지난달 말 서울 명동 스파오 매장에서 시스템스를 이끄는 문옥자(47) 대표를 만나 중국 공략법을 들어봤다. 이랜드에 94년 입사한  문 대표는 패션 사업부 마케팅팀장 출신으로 2015년부터 그룹 마케팅의 전 영역을 빅데이터로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그가 이끄는 시스템스는 연 매출 400억원 규모로 최근 중국 데이터 사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빅데이터로 시장 공략한 이랜드 #상하이·선양·베이징·청두·선전 #5개 권역으로 나눠 거리패션 분석 #맞춤상품으로 매출 18년새 222배

‘패션 차이나’는 다섯개의 국가

한국 패션 브랜드가 중국에서 실패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결정적 패인은 한국 유행 제품을 그대로 들고 간 것이다. 이랜드 시스템스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뒤 우선 중국 패션 시장을 크게 5개 지역으로 나눠 분석한다. 상하이ㆍ선양ㆍ베이징ㆍ청두ㆍ선전을 중심으로 한 다섯개의 지역에서 매달 1만3000장씩 5년간의 길거리 패션 사진을 모았다. 결과를 내고 보니 각 지역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 다른 지역에서는 별 반응이 없을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 인기 있다고 중국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랜드 시스템스에 따르면 베이징 소비자는 무채색을 선호한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즌에도 지역별로 유행하는 아이템이 매우 다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이랜드 시스템스에 따르면 베이징 소비자는 무채색을 선호한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즌에도 지역별로 유행하는 아이템이 매우 다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이랜드 시스템스에 따르면 베이징 소비자는 무채색을 선호한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즌에도 지역별로 유행하는 아이템이 매우 다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이랜드 시스템스에 따르면 베이징 소비자는 무채색을 선호한다. 중국에서는 같은 시즌에도 지역별로 유행하는 아이템이 매우 다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지난 가을·겨울 시즌을 예로 들면 젊은 인구가 많은 쓰촨에서는 훨씬 화려한 색상의 아우터가 팔려나갔다. 쓰촨에서 핑크와 아이보리 재킷이 잘 팔렸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는 블랙 네이비(남색) 화이트의 기본색이 제일 많이 팔렸다. 화서 지역에서는 과감하게 무릎 위로 오는 부츠를 신고 코트를 입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유행하지 않는다”
각 지역 데이터를 모아 시각화해 전달하는 게 이 시스템의 특징이다. 중국 현지 디자이너에게 중국패션연구소와 빅데이터 팀이 수시로 정보를 공급한다. 정보를 축적하고 보면 같은 시즌이라도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아이템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시스템스가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중국 솔루션은 누구나 접근해 볼 수 있다. 성별과 연령대에 대한 패션 성향 데이터와 중국 패션 시장 흐름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특히 빅데이터를 통해 추린 왕홍(중국 인플루언서) 분석이 호평을 받는다. 수십만명이 넘는 왕홍 중 적임자를 뽑아 마케팅에 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중국 유행의 중심인 상하이 길거리 패션.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유행의 중심인 상하이 길거리 패션.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유행의 중심인 상하이 길거리 패션.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유행의 중심인 상하이 길거리 패션.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도전, 70% 판매 

‘100장을 만들면 70장을 정가에 판매하는 것’. 패션 회사의 꿈이다. 실제는 30~70% 깎아 아웃렛에서 판매하는 수량까지 합한 누판율 60%도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2014년 시스템스에서 중국팀을 꾸릴 때 내려온 주문은 단순했다. “예측률 70%를 목표로 할 것”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는 문옥자 대표는 “그래도 최근 수치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중국 쓰촨성의 청두 길거리 패션. 젊은 인구가 많아 트렌드도 경쾌한 편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쓰촨성의 청두 길거리 패션. 젊은 인구가 많아 트렌드도 경쾌한 편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쓰촨성의 청두 길거리 패션. 젊은 인구가 많아 트렌드도 경쾌한 편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쓰촨성의 청두 길거리 패션. 젊은 인구가 많아 트렌드도 경쾌한 편이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재고를 딱 맞추는 것은 디자인만 좋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디자인보다 오히려 타이밍이 중요할 때가 많다. 유행하는 소재와 출고 시점, 가격 설계, 날씨, 사회적 분위기 등 수백개의 요인을 꿰어 본 뒤 물량 설계가 가능하다. 최근엔 여기에 소비자 라이프 신(Scene) 분석이 더해졌다. 문 대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최근 피크닉 신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며 “돗자리가 아닌 매트를 깔고 예쁜 바구니 도시락이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을 제안하고, 물량을 준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삶의 흐름을 파악해 뜰 트렌드와 지고 있는 트렌드를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얼마나 만들고 주력 제품으로 밀지를 정하게 된다. 중국의 경우 인구가 많아 한국보다 다양한 트렌드가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표는 “한국에서는 한 시즌에 5~6개의 유행 아이템을 소화할 수 있는 규모라면 중국은 이보다 많은 10개 이상의 유행 아이템이 등장한다”며 “이에 맞춰 유행할 아이템의 개수를 생각하고 어떤 경향이 지배적일지를 짚어주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선양 길거리 패션. 코트 패션이 큰 트렌드였던 상하이 등 도시보다 패딩이나 무스탕 같은 캐주얼한 외투가 인기였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양 길거리 패션. 코트 패션이 큰 트렌드였던 상하이 등 도시보다 패딩이나 무스탕 같은 캐주얼한 외투가 인기였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양 길거리 패션. 코트 패션이 큰 트렌드였던 상하이 등 도시보다 패딩이나 무스탕 같은 캐주얼한 외투가 인기였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양 길거리 패션. 코트 패션이 큰 트렌드였던 상하이 등 도시보다 패딩이나 무스탕 같은 캐주얼한 외투가 인기였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구체적이고 쓸모있는 분석  

“중간 길이의 청치마를 만들 것인데 무릎의 반을 덮을까요, 전체를 덮을까요”. 중국에서 시스템스로 들어오는 분석 요청 중엔 이런 것이 많다. 구체적이고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사안에 대한 질문이다. 빅데이터가 아무리 ‘빵빵’해도 이를 답변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분석팀은 똑같아 보이는 제품의 한끗 차이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다. 취향은 제각각이겠지만, 소비자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최적을 뽑아내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한 화남 지역엔 젊은 소비자가 많아 경쾌한 색상을 많이 입는다. 베이징, 상해와 같은 시즌(2019 봄)에 찍힌 사진이지만 기후가 달라 착장도 판이하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한 화남 지역엔 젊은 소비자가 많아 경쾌한 색상을 많이 입는다. 베이징, 상해와 같은 시즌(2019 봄)에 찍힌 사진이지만 기후가 달라 착장도 판이하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한 화남 지역엔 젊은 소비자가 많아 경쾌한 색상을 많이 입는다. 베이징, 상해와 같은 시즌(2019 봄)에 찍힌 사진이지만 기후가 달라 착장도 판이하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한 화남 지역엔 젊은 소비자가 많아 경쾌한 색상을 많이 입는다. 베이징, 상해와 같은 시즌(2019 봄)에 찍힌 사진이지만 기후가 달라 착장도 판이하다. [사진 중국 소셜미디어 캡처, 이랜드]

가령 겨울 코트를 만들 때 무게는 몇 그램(g)이어야 보편적으로 좋아할지, 단추는 반짝이는 소재로 할지 무광으로 할지, 유행하는 체크 재킷의 변종은 5종으로 할지 3종으로 할지를 물으면 결정해 준다. 답은 매년, 매달 때로는 매주 변한다. 분석팀은 의뢰가 들어오는 즉시 쇼핑몰 후기와 멘션, 자사와 경쟁사 매출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돌려 결론을 내린다. 문 대표는 “과거 10년이었던 패션 주기는 최근 4년으로 짧아졌다”며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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