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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조원 무역분쟁의 숨은 피해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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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지난달 30일 퇴근길에 만난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 기사 카렌은 다짜고짜 “트럼프는 미쳤다”고 언성을 높였다.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매긴 게 “당신에게 영향이 있느냐”고 묻자 바로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장을 본 직후였는지 조수석 밑에서 돼지고기와 계란, 우유, 올리브유 등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우유는 2달러였는데 3달러로 올랐고, 계란값도 지난달보다 두 배로 올랐다”고 일일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스(휘발유)는 1갤런에 50센트 넘게 올라서 3달러를 넘는다. 나 같은 리프트 기사는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탄했다.

카렌이 얘기한 장바구니 물가 인상 사례 가운데 휘발윳값을 포함한 모두가 대중 관세 탓은 아니다. 식료품 중 소매용 냉동 돈육이나 올리브, 딸기잼, 간장 같은 일부만 대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소비자가 직접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소비재는 관세를 최대한 미뤄 현재까진 25%만 대상이다. 하지만 카렌처럼 미국의 저소득층 서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노동부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 물가지수 인상률 0.1%, 전체 인상률 0.3%라는 지표에선 나타나지 않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다. 우리나라도 1~4월 누적 평균 인상률이 0.5%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인데 쌀(11.6%), 우유(6.3%), 빵(5.5%), 사과(5.5%) 등 일부 생필품 가격만 올라 비슷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CNBC 방송에서 “미국의 관세 인상에도 소비자 물가지수엔 큰 영향이 없어 보이는 현상은 수입업자나 소매상 등 기업들이 이윤 마진을 줄이며 비용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머지 3000억 달러어치 대중 수입품까지 추가 관세 인상이 이뤄지면 결국엔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5일 블로그에 직접 글을 올려 “미국이 예고한 대로 전면 관세가 시행되면 2020년 세계 총생산(GDP)을 0.5%, 4550억 달러(약 536조원)만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런 보호무역 조치들은 성장과 일자리를 해칠 뿐만 아니라 소비재를 값싸게 구매하기 어렵게 만들어 저소득층 가구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고 했다. 미국만이 아니라 상대 중국의 소비자들도 돼지고기, 과일 등 식료품 가격이 지난 4월 6.1% 오르는 등 똑같이 피해를 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올해 1분기 대중국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3% 감소한 우리나라도 결국 서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피해가 돌아올지 걱정스럽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