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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눈치와 공감 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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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악의를 갖고 한 말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영어권 사람에게 한국인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렵다. 여자 골프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생각은 자유다. 하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다중에 전달되는 말을 할 땐 책임을 져야 한다. US 여자오픈 골프대회를 앞두고 한국 여성 골퍼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호되게 비난받은 골프코치 행크 헤이니 얘기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런데 이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느냐의 문제다. 비난받지 않을 자유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지만, 그 표현에 따른 비난 또한 감수해야 한다. 결국 ‘눈치’가 있어야 한단 얘기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시대(물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에 공적 발언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입바른 소리와 눈치 없는 소리는 ‘한 끗 차이’다. 비 내리는 한밤중에 강물에 빠진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건 누구나 머리로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참사로 슬퍼하는 국민에게 ‘골든 타임은 3분’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자들이 욕을 먹지만, 회의장 밖에 쭈그려 앉아 정치인의 한 마디를 기다리는 기자들의 상당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주권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의자를 내줄 것까진 없어도 ‘걸레질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재미없는 농담은 재앙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 2009)에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種)이 된 건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치’의 세련된 말이 바로 공감 능력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