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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노조원 “파업 고마하입시다” 집행부에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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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2월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현장 책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르노삼성차]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가운데)이 지난 2월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현장 책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르노삼성차]

“고마하입시다(‘그만합시다’의 부산 사투리).”

‘1인당 연 1억’ 임단협에 긍정적 #집행부 지침 안 따르고 공장 돌려 #“납품하는 형님들 생각나서 거절” #후속 물량 배정 영향 미칠까 촉각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 A씨는 6일 0시30분 야간근무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5일 오후 3시45분 야간조로 조업에 참여했다. 오후 5시45분까지 정상근무를 하고 있는데, 르노삼성차 기업노동조합(르노삼성차 노조) 대의원에게 전면파업 돌입 소식을 들었다.

대의원에게서 파업을 통보받은 A씨는 “파업하면 내 소득도 줄어들지만, 납품하는 ‘헹님’이 생각나서 지난 4월처럼 이번에도 거절했다”며 “(파업 지침이 내려왔는데도 조업한) 오늘은 특히 보람차게 일하고 퇴근한다”고 말했다.

2018년 임금및단체협약(임단협)을 두고 르노삼성차는 5일 노사 대표단 축소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날 오후 5시45분 르노삼성차 노조는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노사가 교섭한 이래 전면파업은 처음이다.

“상생 문구 놓고 파업하는 게 말 되나”

하지만 노조원 반응은 시큰둥하다. 집행부가 이날 야간조부터 근무조 전원이 일손을 놓으라는 방침을 내렸지만 절반가량의 노조원이 반발해 생산라인에 남았다. 이날 부산공장은 조립 속도가 다소 느려지긴 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6일 0시30분까지 가동했다.

공휴일인 6일도 엔진공장 근로자 67명이 특근을 자처했다. 엔진공장에서 특근을 선택한 B씨는 “원래 6일은 부산공장 전체가 가동을 멈추기로 예정돼 있었다”며 “하지만 엔진 물량 대응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애사심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가 전면파업이라는 강수를 던졌지만 조합원이 거부해 공장을 가동한 건 한국 완성차 제조사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컨베이어벨트 조업의 특성상 1개 공정이 멈추면 후발 공정도 일제히 중단된다. 따라서 파업에 반대하는 소수의 인력이 근무하더라도 완성차 생산라인을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날 공장이 예정대로 돌아갔다는 것은 현재 노조 집행부에 반대하는 생산직 근로자 세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르노삼성의 직원 1인당 급여성 지출

르노삼성의 직원 1인당 급여성 지출

시급제를 적용하는 현대차·기아차·쌍용차와 달리 르노삼성차는 월급제다. 고정급 비중이 커서 파업해도 감소하는 월급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데도 과반의 노조원이 ‘파업하라’는 지침에도 밤에 쉬는 대신 일을 한 것이다.

이처럼 집행부를 다수의 노조원이 불신하는 건 전면파업에 돌입할 명분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노사협상의 본질은 1차 잠정합의안에서 부결했던 임단협 재협상이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본질적인 내용보다 부차적으로 작성·발표하려고 했던 ‘노사 상생 공동 선언문’ 때문에 갑자기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노사는 이 선언문에 ‘평화유지’라는 문구 삽입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1년째 임단협 분규로 2800억 손실

애초 르노삼성차 노조원이 강경한 집행부를 선출한 배경은 ‘경쟁사보다 임금 수준이 낮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르노삼성차가 지난해 근로자에게 지출한 임금성 급여 항목은 1인당 평균 8724만원이었다(복리후생·사회보장비 포함). 여기에 노사가 지난달 16일 도출한 잠정합의안은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1770만원의 일시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르노삼성차는 임금성 항목으로 1인당 1억원 이상을 지출하게 된다(1억494만원). 물론 이는 근로자 실수령액과 괴리가 있지만 개인소득 통계가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여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생산직 근로자 사이에 잠정합의안에 대해 대체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생산직 근로자(1662명)의 52.2%가 잠정합의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영업직군(442명)의 65.6%(290명)가 반대하면서 가결에 필요한 찬성표(1071표)가 불과 48표가 부족했다.

집행부의 과격한 투쟁 방식도 거부감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번 임단협에 돌입하기 전까지 르노삼성차는 국내 완성차 노사관계의 모범으로 꼽혔다. 실제로 이번 협상 과정에서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모두 65차례(266시간) 부분 파업했다. 르노삼성차는 이로 인해 약 2800억원 수준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다. 또 노조가 전면파업을 선언한 것도 2000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근로자는 또한 지난해 르노삼성차 임단협에 부산공장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는 르노삼성차가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한 이후 후속 물량 배정을 논의하겠다고 공표했다.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47.1%·2018년)을 차지하는 닛산자동차의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위탁생산 계약은 오는 9월 끝난다. 여기에 부산공장에 배정할 예정이던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XM3)도 르노자동차 스페인 공장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2018년 임단협을 시작했지만 1년째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올해 누적 판매량(2만8492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3만3800대)보다 14.4% 감소했고, 올해 수출 실적(3만8216대)은 전년 동기(7만297대)의 절반 수준(54.4%)으로 쪼그라들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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