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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약속 어긴 국토부, 타워크레인 파업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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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일 대전시 유성구의 대전사이언스콤플렉스 신축 현장. [뉴스1]

5일 대전시 유성구의 대전사이언스콤플렉스 신축 현장. [뉴스1]

의아한 일이다. 두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이 전국의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2500대를 무기한 점거한 게 엊그제다. 이틀 만에 내려왔다. '위험하고 일자리를 줄이는 소형(무인) 타워크레인을 철폐하라'는 게 핵심 요구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로선 큰 소득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파업을 접었다. 어째서일까. 답은 3개월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3개월 전 국토부, 크레인 안전 다룰 대화 기구 약속

지난 3월 국회에서 두 노총과 시민단체, 국토교통부, 전문가(교수·변호사)가 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무인 타워크레인을 중심으로 안전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국토부는 "노·사·정 대화 기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안전 정책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국토부 "노사갈등만 유발한다"며 대화체 구성 약속 파기 

그러나 대화 기구 설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이용호(무소속) 의원은 "국토부가 약속해놓고 '노·사·정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며 입장을 뒤집었다"고 말했다. 대화체 구성을 기다리던 두 노총은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건설현장에서 서로 으르렁대던 두 노총이 손을 잡은 건 이례적이었다. 두 노조는 요구사항도 바꿨다. '안전 제도 강화'에서 '무인 타워크레인 철폐'로 강경해졌다.

국토부는 그 사이 민·관 대화 기구를 만들어 2차례 운영했다. 하지만 당초 약속한 노·사·정 대화 기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용호 의원실 관계자는 "타워크레인 점거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국토부는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비판 일자 국토부 "노조가 협조 안 해서 못 만들었다"

국토부는 지난 4일 "대화 기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노조가 협조를 안 해 못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화 기구를 만들고 끌어가는 주체는 정부다. 국토부가 강한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태 심각해지자 순식간에 대화 기구 출범시켜

비록 이틀이었지만 전국 건설 현장이 이처럼 일시에 마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태의 심각성에 놀랐는지 국토부는 5일 노·사·정에 민간까지 포함한 대화 기구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대화 기구가 만들어지자 파업은 곧장 끝났다.

정부가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내치는 건 옳다. 그러나 대화 기구 설립 요청은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설령 노조의 파업 이면에 '일자리 지키기'가 있다고 해도 그 또한 '일자리 정부'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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