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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PC방 살인사건' 판결은 정말 엉터리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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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홍지유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홍지유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강서구 PC방 살인 판결을 두고 “법이 썩었다”고 한탄하는 분들이 많다. 지난 4일 서울남부지법이 피고인 김성수에 대해선 징역 30년을 선고했는데 피고인 동생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한 데 대해서다. 잔인한 살인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일벌백계를 원하는데 법원이 엄정한 판단을 피해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정말 판결이 엉터리였을까. 판결문에 따르면 법영상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폭행 공범은 보통 피해자에게 헤드록을 걸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재판부 또한 “CCTV 영상에서 동생의 몸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피해자를 잡아당기는 힘이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피고인이 김성수를 도울 생각이었다면 엉거주춤하게 서서 피해자의 허리춤을 잡아당기는 동작이 아닌 더 적극적인 폭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CCTV엔 동생이 김성수의 팔을 잡고 말리는 모습이 나온다. 팔로 김성수의 가슴팍을 밀치며 피해자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듯한 행동도 한다. 그렇다면 동생은 폭행을 도우려다가 돌연 심경에 변화가 생겨 폭행을 말린 것인가? 재판부는 이런 가정은 “작위적”, 즉 주관적이며 충분한 근거가 없는 추론이라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폭행을 말리는 것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으나, 폭행을 도왔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본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해 기소된 김성수씨가 지난 1월 29일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해 기소된 김성수씨가 지난 1월 29일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애매한 상황, 즉 ‘합리적인 의심이 완전히 해소될 만큼 충분히 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피고인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판결하는 것이 형법의 원칙이다. 명백한 증거가 없이 의심과 정황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경우 법치가 흔들린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근대 민주주의 국가는 증거 재판주의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고안해 냈다. 이런 브레이크가 있어 우리는 대통령이나 왕이라도 힘없는 사람에게 자의적으로 벌을 내릴 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론도 예외가 아니다. 여론만으로 법정에서의 증거 재판주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법치주의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유독 ‘단정할 수 없다’는 문장을 여러 번 썼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리를 잡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중심을 잃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싸움을 말리는 행동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공동 폭행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드러난 증거로 판단해야 하는데 유죄로 단정하기엔 부족했다는 점을 재차 설명한 것이다.

물론 1심 판결은 최종 판단이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도 있고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건 명백한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단죄해야 한다는 법의 원칙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처럼, 누구에게건 가장 엄밀한 방식으로 적용돼야 한다.

홍지유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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