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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재판으론 한계…‘2+2 해법’ 외교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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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배상 소송 도맡아 온 최봉태 변호사의 징용공 해법

일본 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임원진이 2015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들을 강제노역시킨 일을 사죄한 뒤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외이사 오카모토 유키오(맨 왼쪽)는 아베 총리의 외교 자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임원진이 2015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들을 강제노역시킨 일을 사죄한 뒤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외이사 오카모토 유키오(맨 왼쪽)는 아베 총리의 외교 자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최봉태(57) 변호사는 지난 20여년간 일본의 식민지배 피해와 관련된 배상 소송을 도맡다시피 해 온 외길 법조인이다. 지난해 강제징용공 소송 확정판결과 2011년 위안부 헌법소원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경력만으로만 보면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는 일이라면 한 치의 타협도 없이 법정투쟁을 계속해 나갈 ‘원리주의자’로 비칠 법하다.

사법 틀 내 해법은 ‘화해’가 유일 #미쓰비시, 중국 피해자와 협상 끝에 #사죄 표명하고 화해한 전례 있어 #‘심세득인’의 교훈 살려 갈등 풀어야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갈등이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만난 최 변호사의 발언은 다소 의외였다. “사실 한국 법원의 판결을 통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어찌 됐건 상대는 일본 기업과 그 뒤에 있는 일본 정부 아닌가. 결국은 정부 간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3권분립을 방패 삼아 이 문제를 방관하다시피 해 온 한국 정부가 빨리 태도를 바꿔 일본이 요구하는 외교적 협의에 당당히 응해야 한다고 했다. 해법은 그 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협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해 확정판결이 내려진 2건 이외에도 비슷한 내용의 소송들이 1심과 2심 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다. 원고 숫자만 해도 926명에 이른다. 사법 거래 의혹을 적폐 청산의 대상에 올린 문재인 정부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에 왈가왈부하고 나선다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최봉태. [뉴스1]

최봉태. [뉴스1]

재판의 틀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대로라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나.
“그렇지 않다. 재판의 틀 속에서도 ‘화해’란 방법이 있다.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가 합의를 해서 소송을 취하하고 분쟁을 매듭짓는 방법이다. 일본 기업이 사죄와 함께 적절한 배상을 하고, 원고가 이를 받아들임과 함께 용서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런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

‘화해’란 단어를 듣는 순간 2016년 미쓰비시 머터리얼(옛 미쓰비시 광산)이 중국인 피해자들과의 협상 끝에 화해에 이른 사례가 떠올랐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던 필자는 중국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이던 캉젠(康健) 변호사를 만나 그 과정을 취재한 적이 있다. 캉 변호사는 미쓰비시의 사죄가 미흡하다며 화해를 거부했지만 80%의 중국 피해자들은 화해를 받아들였다. 최근 보충 취재를 통해 재구성한 미쓰비시와 중국 피해자들의 화해 과정은 이러하다.

중·일 전쟁 기간 중 일본에 끌려간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은 1995년부터 잇달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7년 최고재판소의 확정판결로 배상받을 길이 막혀버렸다. 판결의 논리도 한국 징용공에 대한 것과 대동소이했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채택된 ‘중일공동선명’ 가운데 ‘중국 정부는 일본국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를 포기함을 선언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노동자들은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일본 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상황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일본 기업의 대응과 일본 정부가 보인 태도는 한국에 대한 것과 사뭇 달랐다.

2016년 6월 미쓰비시 머터리얼의 임원이 베이징에 가 중국 피해자 대표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문을 낭독했다. 미쓰비시가 중국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3765명(722명은 사망)의 피해자들에게 각각 10만 위안(약 17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기금을 설립해 일본 국내에 기념비를 세운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이에 앞서 미쓰비시는 2015년 7월 2차 대전 당시의 미군 포로를 강제노역에 동원한 사실도 사죄를 했다.

이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베이징과 로스앤젤레스 두 곳의 사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였다. 엘리트 외교관 출신인 오카모토는 아베 신조 총리의 ‘21세기 구상간담회’ 위원으로 외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미쓰비시 머터리얼의 사외이사란 또 다른 신분을 활용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간의 입장 조율을 했다고 한다.

중국 피해자와 한국 징용공의 사정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유사성이 있는 건 틀림이 없다. 중국 사례는 한·일간의 징용공 문제를 푸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미쓰비시의 사례를 거론하며 다시 최봉태 변호사에게 물었다.

중국과의 전례로 보면 일본 기업들이 한국 피해자들과도 화해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실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한국 피해자들과의 화해 협상에 임했던 적이 있다. 2010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13차례 협상을 했는데 ‘배상’이란 용어 사용 문제 등 몇 가지 쟁점으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른 명목으로 돈을 지불할 수는 있지만, 재판에서 진 것도 아닌데 왜 ‘배상’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신일철주금도 2012년 주주총회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난다면 화해 교섭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시신을 찾지 못한 한국인 징용공 유족 10명과 화해를 함으로써 일본 법원에 제기된 소송을 매듭지은 전례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만나주지도 않고 있지 않나.
“일본 정부의 간섭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은 일본 정부의 ‘지도’에 따른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일본 기업도 화해로 해결하려는 의향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제적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에서의 이미지나 한·일 기업 간 협력관계 등을 고려할 때 화해를 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화해를 통한 자율 구제에 나설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막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한·일 정부 간 협의를 통한 노력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권리가 소멸됐다는 입장이 완강해 보인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례는 다르다. 2017년 중국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니시마쓰(西松) 재판에서 ‘(중·일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며 일본 기업에 대해 자율 구제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도 국회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협의에 응해 논의해 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정부 간 협의에 응한다면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나.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피해자 구제에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된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 정부나 기업에도 징용공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 가령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은 포스코 등 한국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한국 정부와 기업, 일본 정부와 기업이 모두 출연하는 기금이나 재단을 만드는 ‘2+2 방식’이다. 하지만 아베 정부가 이토록 완강하니 일본 기업만 참가하는 ‘2+1 방식’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그것도 힘들다면 우선은 한·일 양측 기업만 참여하는 ‘1+1 방식’으로 피해자 구제를 먼저 하고 나중에 양국 정부의 참여를 열어 놓는 방식도 가능하다.”

최 변호사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3자의 판단으로 우리가 승소한다고 해도 일본이 진정으로 승복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포괄적 화해야말로 진정한 과거 청산으로 가는 길”이라며 ‘정세를 살펴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심세득인(審勢得人)’의 교훈을 한·일 관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일본인들과도 머리를 맞대고 진정으로 논의하면 길이 열린다는 의미였다. 알고 보니 조선왕조실록 숙종 편에 나오는 이 말은 당시 독도 문제 때문에 불거진 일본과의 갈등 해결책이었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