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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멈추자, 공사장 일용직 일당 끊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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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스분석]주요 아파트·초고층빌딩 공사 '올스톱'

4일 오전 7시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전경. 대형 타워크레인 점거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김민중 기자.

4일 오전 7시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전경. 대형 타워크레인 점거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김민중 기자.

"하루 이틀 이러면 어떻게든 만회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도 공사판의 분진을 뒤집어쓰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근로자다. 이어지는 그의 독백. "1~2주만 공사를 안 해도 입주 지연을 피할 수 없는데…(내 집을) 기다릴 그분들의 희망과 기대는 어떡하지…."

서울 아파트·빌딩 현장 가보니 #노조원, 크레인 점거 고공 농성 #건설사 “5일만 멈춰도 3억 손해” #일용직 “혹시나” 나왔다 발길 돌려 #“파업할 때까지 국토부는 뭐했나”

4일 오전 7시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건설사 공무팀장은 한숨부터 쉬었다. 전날 저녁부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크레인 노조가 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대형 타워크레인 83%를 세웠다. 가동 중인 3000대 중 2500대(경찰 추산 1600대가량)다. 웬만한 현장의 크레인은 전부 멈춘 셈이다.

수색동 현장에선 대형 타워크레인 3대가 서 있었다. 사람은 타고 있었다. 노조 조합원이다. 점거한 채 농성 중이다. 한 크레인에선 건설자재가 아닌 도시락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농성 중인 노조원의 식사다.

타워크레인이 반드시 필요한 골조·마감 공사가 한창이어서 현장은 바짝 긴장한 분위기였다. 건설사 직원들은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고 한다.

출근한 일용직 발길 돌려…하루 벌어 생계 유지하는 근로자 일당 날아가

회사는 전날 일용직 건설근로자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전달했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버거운 일용직 입장에선 '혹여나'하는 마음에 일터로 나왔다. 회사는 출근한 건설 근로자와 아침 체조를 했다. 그러나 아파트 내부 공사를 맡은 사람 이외엔 업무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한동안 기다리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일용직의 일당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이런 상황이 1주일(영업일 5일)만 지속하면 손해액이 3억원에 이른다는 게 현장의 계산이다. 손해액은 골조·마감 협력업체에 돌아간다. 노동계가 그렇게 권익향상을 외치던 협력업체 직원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입주 지연되면 연쇄 피해 우려…공사 선후 바꿔 부실공사 우려도

여기에다 입주일(2020년 6월)을 연기할 가능성이 커져 연쇄 피해가 우려된다. 그렇다고 파업이 끝난 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서두르면 부실공사가 우려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4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초고층 빌딩 건설 현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 4월 말 골조 공사를 마치고 마감 공사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타워크레인 7대가 전부 점거됐다. 노조 담당은 5대지만, 비노조 몫인 2대도 농성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크레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작업만 골라 앞당겨 하고 있다"며 "점거 농성이 장기화하면 물적 피해와 공기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공사의 선후가 바뀌면 부실해질 수 있다. 여기에다 농성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노조의 파업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건설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소형 타워크레인 퇴출" vs "AI 활용하는 세계적인 추세 외면"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위험한 소형(무인) 타워크레인을 폐기해달라"고 주장한다. 노조가 점거한 대형 타워크레인에도 '시한폭탄 소형 타워크레인 즉각 폐기!'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 소형 타워크레인은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결국 건설 노동자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못 쓰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형 타워크레인은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된다. 드론과 원리가 같다. 대형 타워크레인 면허가 없는 사람도 20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소형 타워크레인을 조종할 수 있다. 노조는 "미숙련자가 크레인을 조종하면 전도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드론 사고를 보면 짐작이 간다. 정치권과 정부, 시민단체, 전문가도 동의한다. 지난 3월 국회에서 개최된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은가' 제목의 토론회(이용호 무소속 의원 주최)에서도 대부분 공감했다.

4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뉴스1]

4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뉴스1]

노조와 정부의 엇갈리는 지점은 문제 해결 방식이다. 노조는 "소형 타워크레인 사용을 금지하라"며 아예 없앨 것을 요구한다. 국토부는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시장개입이고,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건설현장의 무인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독일 등 선진국에선 건설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김재준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국내·외에서 건설 현장의 자동화를 통한 인력과 사고 절감 노력은 점점 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원희 한국노총 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홍보국장은 "국정감사나 토론회 등에서 수도 없이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제기했지만, 국토부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문제를 해결할 전문성도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오희택 경실련 시민안전감시위원장은 "국토부는 대화할 의지부터 없어 보인다"며 "지난 3월 토론회에서 노·사·정 대화 기구를 만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오해라는 입장이다. "2017년 11월부터 소형 타워크레인을 포함한 타워크레인 전반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박정수 국토부 건설산업과장은 "노·사·정 대화 기구는 노조가 협조를 안 해 못 만들고 있었던 것"이라며 "협조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호 의원 "국토부가 대화기구는 갈등 유발한다며 거부했다"

협상 과정을 지켜본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이용호(무소속) 의원의 얘기는 다르다. 이 의원은 "국토부가 도대체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이 노조 탓하며 대화 기구 못 만든 책임을 얘기할 때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화기구 구성은 갈등만 유발할 수 있다며 거부한 게 국토부"라며 "사태가 이렇게 번질 때까지 국토부가 뭘 했는지 따져볼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앞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소속 조합원들의 고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앞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소속 조합원들의 고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점거 파업 나선 진짜 이유는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정부와 업계에서는 "두 노조가 투쟁에 나선 실질적인 목적은 따로 있다"고 본다. 타워크레인 소형화·무인화에 따라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노조도 "일자리 감소 우려가 있다"고 인정한다.

최근 타워크레인 노조뿐 아니라 건설 전반에서 "일자리를 달라"는 노조의 집회는 빈번하다.

주택경기 급랭으로 건설 일자리 크게 준 것도 연쇄 파업의 원인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간 건설현장에서의 노조 집회·시위 건수는 2014년 857건이던 게 지난해 2486건으로 늘었다.

현 정부 들어 강력한 주택시장 규제 정책 등으로 건설 경기가 급랭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도 노조의 투쟁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규제가 이데올로기화 하면 시장과 노사관계를 한꺼번에 뒤흔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건설현장의 파업은 또 다른 일용직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정부·기업과 노조의 싸움이라기보다 노조와 실질 근로자의 생계가 충돌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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