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철거 시작된 '100년 유곽' 자갈마당…역사 뒤안길로

중앙일보

입력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서 건물 철거가 이뤄지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서 건물 철거가 이뤄지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 도원동. 대구 최대 성매매 집결지인 이른바 ‘자갈마당’이 있는 곳이다. 안전모를 쓴 작업 인부가 10부터 카운트를 셌다. 카운트가 끝나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굴삭기가 굉음을 내며 바로 앞 1층 건물을 사정없이 부수기 시작했다. 건물에 내걸려 있던 ‘사업승인 완료, 철거공사 시작’ 현수막도 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파묻혔다.

4일 철거작업 본격 시작…굴삭기 동원해 건물 허물어 #내부 철거 이뤄진 집창촌 건물들…나뒹구는 옛 물건 #시행사 도원개발 "종사자들에 400만원씩 자활지원금" #아직 이주 거부하는 이들도…"제대로 보상 못 받았어"

‘100년 유곽’ 자갈마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자갈마당 부지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도원개발은 이날 자갈마당 내 ‘60호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도원개발은 지난달 31일 대구시로부터 ‘도원동 주상복합 신축공사’ 사업계획 승인을 얻었다. 지난 1월 10일 신청을 접수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도원개발 측은 대구시에 자갈마당을 포함한 주변 1만9080여㎡에 사업승인을 신청했다. 5개 동으로 된 아파트 886가구(오피스텔 256호 별도)를 짓기 위해서다. 지하 6층 지상 49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다. 대구시는 이 사업에 대해 지난 2~3월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조건부 건축심의 의결을 했다. 이번에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굴삭기가 철거 작업을 하는 양옆으론 이미 내부를 비운 집창촌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일부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일부는 현관에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버려진 옷걸이와 화장품, 가방, 신발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형광등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찢어진 벽지가 바닥을 향해 드리워져 폐허처럼 보였다. 오랜 기간 방치돼 곰팡내가 가득했다.

자갈마당은 재개발이 결정되기 전까지 성매매 여성 130여 명이 이곳에서 일했다. 도원개발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약 90명의 성매매 여성 등 관련 종사자들에게 400만원씩의 자활지원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했다. 일종의 이주 비용이다.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내 건물 안 풍경. 내부 철거가 이뤄진 모습이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내 건물 안 풍경. 내부 철거가 이뤄진 모습이다. 대구=김정석기자

자갈마당은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이후 점점 위축됐다. 대구시와 경찰이 폐쇄회로TV(CCTV)를 자갈마당 출입로 4곳에 달고 가로등 270여 개를 달아 불을 환히 밝혔다. 성매수자들의 발길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00년 넘게 이어온 자갈마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갈마당을 폐쇄하기 위해 지자체가 10년 이상 노력했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부 업소가 영업을 계속할 정도였다. 그러다 이번에 도원개발이 재개발에 뛰어들면서 “이번엔 정말 자갈마당이 폐쇄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결과 지금까지 누적됐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기도 했다. 자갈마당 관련자 20여 명으로 구성된 ‘자갈마당 이주대책위원회(이하 이주대책위)’가 지난달 14일 “비리 경찰관들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한다”는 진정서를 대구경찰청에 제출한 일이 대표적이다. 진정서엔 대구지역 전·현직 경찰관 10명의 실명과 부서·계급·비리 내용 등이 기재돼 있었다. 대구경찰청은 거론이 된 경찰관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풍경. 철거가 이뤄진 모습이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풍경. 철거가 이뤄진 모습이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서 내부 철거가 이뤄지면서 나온 매트리스가 바깥에 쌓여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에서 내부 철거가 이뤄지면서 나온 매트리스가 바깥에 쌓여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음에도 여전히 이주하지 않은 이들도 갈등의 씨앗이 될 조짐이다. 이들은 도원개발 측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업주 박모(78·여)씨는 “자갈마당에서 40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말을 잘 듣는 사람들만 보상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정재훈 이주대책위원장은 “도원개발이 지급한 지원비는 아무런 협의 없이 마음대로 정한 금액이다. 우리들이 한 푼이 급하다는 걸 알고 이용한 것”이라며 “보상을 받지 못한 업주가 5~6명, 종사자가 30~40명이다. 이곳에 살던 이들을 갑자기 나가라고 한다면 최소한의 생계유지 비용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풍경. 철거가 이뤄진 건물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풍경. 철거가 이뤄진 건물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에서 내부 철거가 이뤄진 한 건물 현관이 잠겨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에서 내부 철거가 이뤄진 한 건물 현관이 잠겨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한편, 홍성철 작가의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자갈마당의 시작은 1908년 일제강점기 직전 일본인들이 만든 야에가키초(八重垣町) 유곽이다. 조선 후기 대구가 서문시장을 필두로 거대 상권을 이루면서 유곽이 생겼다. 자갈마당은 해방 전까지 성업하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떠나고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47년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실상 당국의 묵인 속에 자갈마당의 운영은 계속됐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