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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홀런드 교수 "'큰 정치' 하려면 '링컨의 용기'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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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장충동에서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의 교회사 석학인 데이비드 홀런드(46)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종교학과 미국학도 가르치고 있다. 종교학을 연구하는 홀런드 교수에게 현대 사회에 불고 있는 ‘탈종교화’에 대해 물었다.

젊은이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장로교의 제임스 화이트 목사가 ‘더 라이즈 오브 더 넌스(The Rise of the Nones)’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여기서 ‘넌스(Nones)’는 특정 종교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표시할 때 무종교인은 ‘None’이라고 적힌 칸에 마크를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넌스(Nones)’라고 부른다. 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하버드대 신학대의 데이비드 홀런드 교수는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보다 교회 자신의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지적했다. 강정현 기자

하버드대 신학대의 데이비드 홀런드 교수는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보다 교회 자신의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지적했다. 강정현 기자

  이유가 뭐라고 보나.
 “화이트 목사의 결론은 명확하다. 교회가 자신의 본질인 영적인 사명을 추구하지 않고, 교회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더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거기에 실망하고 떨어져 나가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영적인 일(Spiritual thing)에 관심이 없나.  
 “그렇지 않다. ‘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진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란 슬로건이 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적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영적인 관심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기관이 정치적 권력이나 물질적 부(富)를 더 추구할 때가 있다. 왜 그런가.
 “어떤 종교가 처음 생겨날 때는 자신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제도가 생기면서 점점 관료화된다. 자신들의 조직 자체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결국 권력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종교는 선지자(Prophet)에서 시작해 사제(Priest)로 끝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홀런드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교회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교회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교회 자신을 보호하고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홀런드 교수는 "모세 율법의 본질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홀런드 교수는 "모세 율법의 본질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이어서 홀런드 교수는 모세의 율법을 예로 들었다.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졌다. 모세 율법의 본질이 뭔가. 사람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게 본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질을 망각하고 율법 자체에만 얽매였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만 따졌다. 종교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이것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가진 목적, 더 높은 방향이 무엇인지, 더 높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일깨워주는 일이다. 종교는 제도적인 틀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젊은 세대는 종교의 규칙이나 율법을 부담스러워 한다.
 “규칙이나 율법이 왜 부담스럽겠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이다. 규칙과 규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너머를 봐야 한다. 그럼 달라진다. 사람이 율법만 지킬 때는 어떤가. 답답하다. 하나님을 향할 때는 어떤가. 평안하다. 율법은 ‘답답함’이 아니라 ‘평안함’을 위해 존재한다.”
  종교의 규칙이나 율법도 ‘본질적 자유’를 위한 도구다. 그런데 ‘본질적 자유’는 없고, 규칙과 율법만 강조하는 종교 단체도 꽤 있지 않나.
 “그건 그들이 ‘본질적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규칙과 율법만 남는다. 하늘을 나는 연을 보라. 거기에는 실이 달려 있다. 연에 달려 있는 실을 어떻게 봐야 하냐. 어떤 사람은 연을 자꾸 아래로 끌어내리는 장애물로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연이 자유롭게 날도록 도와주는 도구로 본다. 실제 실이 없으면 어찌 되겠나. 우리는 연을 날릴 수가 없다. 연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데이비드 홀런드 교수는 "종교는 자신의 첫번째 목적을 짚어봐야 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그리스도로 혹은 불교라면 붓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데이비드 홀런드 교수는 "종교는 자신의 첫번째 목적을 짚어봐야 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그리스도로 혹은 불교라면 붓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실은 연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연이 실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율법은 ‘본질적 자유’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율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하늘을 나는 연이 목적이지, 실 자체가 목적이 아니듯이 말이다.”

 홀런드 교수는 교회사를 전공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동시에 보스턴에서 4500명의 회중을 이끄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의 스테이크(교구) 회장이기도 하다. 그에게 ‘교회 세습’ 문제를 물었다.

  한국에서는 최근 초대형 교회(명성교회)의 세습 문제로 시끄러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다. 해당 교회는 “세습이 왜 문제냐?”는 입장이다. “이건 우리 교회 내부의 문제다. 왜 외부에서 남의 교회 일에 간섭을 하느냐. 교회 성도들 상당수가 좋다고 하는데, 그게 왜 문제인가. 미국에서도 교회를 세습하는 사례가 있지 않나”라고 반박한다. 교회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어찌 보나.
 “미국의 철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리더의 자제가 반드시 리더의 자질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단지 누구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설령 승계 과정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세습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 철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훌륭한 리더의 자제가 반드시 리더의 자질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미국 철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훌륭한 리더의 자제가 반드시 리더의 자질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홀런드 교수는 “이런 문제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종교를 떠나게 하는 중요한 이유”라며 “교회가 정치적 권력과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넌스(Nones)’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교회에도 정치적 권력이나 물질적 부에 대한 갈구가 있나.
“미국도 한국과 똑같은 문제가 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가 ‘한국 대형교회와 미국 대형교회의 유사점’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을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특정 정당을 지지할 때다. 이럴 경우 결국 정치적 분쟁이 일어나고, 나라는 분열된다. 종교가 그것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열을 더 조장하게 된다. 젊은 세대는 이런 걸 굉장히 싫어한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거쳤다. 그 와중에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둘 사이에는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 정치인들도 똑같다. 
“가장 먼저 상대방도 인간이라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영어에 ‘디휴머나이제이션(Dehumanization)’이란 용어가 있다. ‘비인간화’란 뜻이다. 상대편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거나 정치적 분쟁을 일으키는 일에 골몰한 나머지 상대방도 ‘인간’임을 망각하는 거다. 인간적 존중과 대우도 덩달아 상실된다. 설령 상대방이 나와 정치적 견해와 지향이 다르다 할지라도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적 대우와 존중도 잊어선 안 된다.”
상대편이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 나도 인간 대접을 받게 되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예수가 일종의 정치를 한 거라면, 굉장히 ‘큰 정치’를 한 셈이다. 자신의 정치적 울타리 안에 원수도 들어가 있지 않나. 만약 한국의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인간으로 먼저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작은 정치’‘편협한 정치’를 하는 거다. 정치적 갈등은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것, 불일치를 보이는 것에서부터 계속 갈라져 이어진다. 만약 예수가 지금 정치를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어떤 공통점이 있는가’‘어떤 것에 서로 동의하는가’를 먼저 찾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링컨 대톨령은 남북전쟁으로 상처 입은 미국을 향해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던졌다. [중앙포토]

링컨 대톨령은 남북전쟁으로 상처 입은 미국을 향해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던졌다. [중앙포토]

미국 역사에서 ‘큰 정치’를 한 인물이 있나.
“내가 존경하는 역사적 영웅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미국도 한국처럼 내전을 겪었다. 남북전쟁은 아주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기였다. 링컨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한 직후에 암살당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서로 받은 상처를 메워주고 닦아주고, 이걸 통해서 치유하고 화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암살당했다. 당시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링컨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는가를 보여주는 일화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지 닷새 후인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쯤 포드 극장에서 남부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지 닷새 후인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쯤 포드 극장에서 남부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했다.

링컨은 그걸 몰랐나.
“링컨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설을 했다. 그는 용서를 간청하고 화해를 부르짖었다. 링컨은 ‘치유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의 지지자들조차 ‘너무 빨리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아니냐’‘너무 빨리 용서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다. 결국 암살을 당했지만, 링컨은 용기가 있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나.  
“‘큰 정치’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욕먹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하는 건 작고 편협한 정치다. 그런 사람은 ‘큰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진리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링컨도 그랬다. 자신을 보호하는 대신 미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종교 지도자도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다. ‘큰 정치’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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