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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명문대생이 택시회사로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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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이른바 SKY대학을 나와서 택시회사 운전기사로 취직한다고 하면? 대학 때 어지간히 공부를 안 했거나 졸업조차 못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게 틀림없다. 혹은 “택시회사 사장 아들이세요?”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반면 도쿄에선 택시를 타면 종종 20대 젊은 운전기사를 만나게 된다.

일본 택시업계 2위인 KM택시엔 지난해 146명의 대졸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2012년 처음으로 10명을 채용한 이래 최근엔 매년 100명 이상 꾸준히 신입사원이 들어온다. 이보다 늦게 대졸 채용을 시작한 택시업계 1위 니혼코쓰(日本交通)에도 지난해 157명이 입사했다. 이 가운데엔 와세다, 게이오, 호세이 등 유명 사립대는 물론이고 도쿄대 졸업생도 있다.

이들이 유명 대기업도 아닌 택시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우선 근무조건이 나쁘지 않다. KM택시의 경우, 격일제 근무로 월 11~12일(1일 15시간) 근무하고, 입사 첫해 월평균 27만엔(약 294만원)을 받는다. 2017년 후생노동성이 조사한 대졸 초임(평균 20만6000엔)보다 대우가 좋다.

그러나 회사 채용홈페이지에서 눈에 띄 건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신입사원들의 입사 이유다. AI(인공지능)이 도입되고 우버(Uber) 같은 공유자동차 서비스가 진출한 상황에서 택시업계의 미래를 바꿔보겠다는 당찬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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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인재들을 먼저 찾아 나선 건 택시회사였다. 운전기사의 평균연령은 59.4세(2017년 국토교통성)로 점차 고령화가 진행되는 데다, 우버 같은 신기술이 확산되면서 택시업계는 위기를 느꼈다. “젊은 사람이 없으면 미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인재모시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회사는 취업박람회에 출동해 “맘껏 꿈을 펼쳐달라”고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막다른 직업’이라 생각했던 학생들도 “신입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곳이라면 해볼 만하겠다”라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회사는 대기업 못지않은 연수프로그램으로 사원들을 격려했다.

업계도 연구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택시회사 공동으로 AI 개발회사를 설립하고, 자동운전기술을 개발하는 벤처회사와도 손을 잡았다. 덕분에 신입사원의 3년 내 이직률(KM택시)은 20% 이하다.

일본은 한국과 더불어 우버가 진출하지 못한 국가다. 기존 택시업계의 목소리가 강하다. 다만 일본 택시업계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에서 더 빨리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절박감에서 살길을 찾다 보니, 젊은이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회사가 됐다. 스스로 바꾸려고 애쓰는 모습, 한국의 택시업계에서도 보고 싶은 풍경이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