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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커피족 즐겁게? 카공족 편하게?…카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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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스커피 종로본점에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설치한 1인석 모습.

할리스커피 종로본점에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설치한 1인석 모습.

‘와이파이가 없다니…콘센트도 0개’ ‘모르는 사람과 합석할 정도로 테이블도 부족해요’ ‘의자가 너무 딱딱해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블로그 등에 올라온 블루보틀 이용 후기 일부다. 블루보틀은 미국 커피전문점으로 지난달 3일 서울 성수동에 처음 매장을 열고 국내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커피업계 ‘애플’로 불리며 개장 전부터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이젠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고 있다. 매장 내 불친절한 시설을 두고 누리꾼들이 ‘카페에 오래 머무는 소비자, 특히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차단하려는 의도 아니냐’며 입방아를 찧고 있는 것이다. 이에 블루보틀코리아 관계자는 “미국 현지 카페들은 콘센트나 와이파이 같은 시설 대신 커피 품질과 친절한 서비스에 더 신경 쓴다”며 “이 방침을 한국에서도 지켜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업계와 소비자들의 찬반양론이 뜨겁다. 반대편에선 ‘다른 커피점처럼 결국 카공족에게 백기투항하게 될 것’ ‘얼마 못 가 친카공족 매장으로 리모델링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찬성편은 ‘카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며 지지했다. 이런 탓에 인터넷 커뮤니티엔 카공족과 비카공족 사이의 불미스러운 다툼을 전하는 글도 쉽게 볼 수 있다.

업체들도 극과 극의 행보를 보인다. 이용자들의 뒷담화에도 꿋꿋이 버텼던 커피빈코리아는 2017년 초 국내 전 지역 매장에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카공족을 적극 끌어안은 곳도 있다. 할리스 종로 본점은 2016년에 매장의 일부 층을 독서실처럼 리모델링했다. 테이블을 모두 칸막이·콘센트를 설치한 1인석으로 꾸몄다.

반면 카공족에게 그동안 친화 정책을 썼던 스타벅스는 등을 돌렸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4월 문 연 스타벅스 노량진점은 콘센트를 의도적으로 줄인 것 아니냐는 원망을 받고 있다. 매장이 100석 규모인데 콘센트는 달랑 네 개뿐이어서 “고시촌에 들어선 카페인데 공부를 할 수 없게 해놨다”며 고시생들의 원성을 샀다. 스타벅스 노량진점은 이후 콘센트를 추가 설치했지만 이마저도 과부족이라는 평이다.

그렇다면 카공족은 왜 카페에서 공부하려는 것일까. 현장에서 만나본 대학생들은 마음 편히 공부할 장소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대생은 도서관 좌석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용 규율도 엄격해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노트북 사용이 허가된 PC존은 한정적인데다 도서관에 음료 반입을 일부 제한하는 학칙까지 정해져 학생들이 카페로 내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공족 말고도 스타트업 기업을 비롯해 셀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취업준비생·예비창업자·재택근무자 등도 카페를 업무·회의 공간으로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임대료가 비싸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한 사업가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고 거래처 직원들도 카페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해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카페들은 이들의 요구에 맞춰 주느라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과거엔 만남·휴식의 공간이었으나 이젠 도서관·사무실 역할까지 원치 않은 1인 4역을 떠맡게 됐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카페는 차 한잔도 편히 마시지 못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카페에 거는 기대감을 ‘엄지 척’ 날릴 수 있는 맛있는 커피로만 채울 순 없을까.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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