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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바리스타·호텔리어·웨이터…우리는 로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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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서비스맨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날렵한 손목, 버튼을 누르는도도한 손가락, 수건을 싣고 유유히 떠나는 뒤태. 사람이 아닌 로봇 얘기다. 로봇 점원이 진화하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상용화된 로봇은 길을 안내하고 방문객과 기념 촬영 포즈를 취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을 주문받아 만들고 배달까지 해준다. 24시간 일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도 자랑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로봇 직원에게 일자리를 뺏길까 우려하고 있다.

커피 주문 받아 만들기 척척 #호텔 객실로 직접 비품 배달 #푸드코트·레스토랑에서 서빙

바리스타 로봇 ‘비트’가 완성한 커피를 건네고 있다.

바리스타 로봇 ‘비트’가 완성한 커피를 건네고 있다.

서울 행당동의 한 쇼핑몰 지하 1층. 공교롭게도 스타벅스 바로 옆에 로봇카페 ‘비트 바이 달콤커피’가 영업 중이다. 이곳에선 사람이 아닌 로봇이 커피를 주문받아 직접 만든다. 로봇 이름은 ‘비트’. 전용 앱이나 키오스크에서 커피 메뉴를 골라 주문하면 비트가 작동한다. 비트는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얼음을 잔에 담거나 샷을 내리는 일도 척척 진행한다. 비트가 만든 아메리카노 값은 한 잔에 2500원. 지난달 28일 고교 동창과 이곳을 찾은 안주영(48·서울 행당동)씨는 “로봇이 직접 주문 받아 전달까지 할 줄 몰랐다”며 “두 잔을 시켰는데도 여느 카페 한 잔 값(5000원)이어서 가성비에 만족한다”고 언급했다.

서울 신천동의 롯데월드몰 3층, 비트 바이 달콤커피 부스에도 비트가 서 있다. 주중엔 하루 평균 100명, 주말엔 하루 평균 200명이 비트에게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간다.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2000원. 직원(사람)이 만든 아메리카노가 4100원이니 반값에도 못 미친다. 최효진 달콤커피 홍보팀장은 “비트도 카페에서 쓰는 고급 원두를 똑같이 사용한다”며 “입지 조건에 따라 수백원 차이가 날 뿐 저렴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의 손도 빨라졌다. 달콤커피가 KT와 합작해 비트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지난 3월 출시한 ‘비트 2E’는 음료 47종을 1분에 두 잔씩 만들어낸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덕이다. 음성·동작 인식 등 인공지능(AI)을 갖춰 손님에게 인사도 건넨다.

음성·동작 인식해 손님에게 인사도

바리스타 로봇 ‘빌리’가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하고 있다

바리스타 로봇 ‘빌리’가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하고 있다

비트의 친구도 등장했다. 이름은 ‘빌리’다. 카카오IX가 지난달 31일 남산 N서울타워에 개장한 ‘라이언 치즈볼 어드벤처’ 내 로봇카페 ‘커피드메소드’에서 근무한다. 개발사는 로봇·미디어 융·복합 기업인 상화의 자회사 ‘엘버엑스’다. 빌리는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직접 추출해 낸다. 빌리는 머신러닝 기술을 갖춰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 가루를 낸 뒤 가루를 누르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뜨거운 물을 내려 커피 원액을 추출하는 등 커피를 만드는 공정을 로봇이 한다. 10시간에 200잔가량 만들어 낸다. 커피드메소드는 다음달 서울 강남에서 2호점을 열 계획이다.

그렇다면 로봇이 만든 커피가 맛있을까. 기자는 지난달 28일 바리스타 A씨에게 비트와 사람이 K3 원두로 각각 만든 아메리카노·카페라테·그린티라테의 비교 시음을 요청했다. 그는 바리스타를 가르치는 자격증까지 보유한 실력가다. 그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는 어느 것이 로봇이 만든 건지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맛·향이 거의 같다”며 “비트가 만든 아메리카노가 신맛과 고소한 맛이 더 깊다”고 평가했다. 그린티라테는 사람이 만들면 그린티 파우더를 넣지만 비트는 소스(시럽)를 사용한다. 파우더가 녹아 들도록 섞는 로봇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다.

올 하반기 국내 호텔에 도입될 ‘AI 호텔 로봇’ 이 호텔 복도를 지나 객실에 비품을 가져다주고 있다.

올 하반기 국내 호텔에 도입될 ‘AI 호텔 로봇’ 이 호텔 복도를 지나 객실에 비품을 가져다주고 있다.

호텔 객실에 비품을 가져다주는 로봇도 곧 상용화된다. KT가 개발한 AI 호텔 로봇이다. 기가지니 호텔 단말에서 음성이나 터치로 비품을 주문하면 AI 로봇이 객실로 비품을 배달해 준다. 로봇은 호텔 지도에서 스스로 경로를 파악해 객실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사람을 만나면 잠시 멈추고 옆으로 피해간다. KT의 3D 공간 매핑 기술, 자율주행 기술, AI 카메라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신속하고 원활한 정보 전송을 위해 5G도 적용될 예정이다. 이 로봇은 연내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레지던스에서 일하게 된다.

배달의민족(배달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실내 푸드코트 서빙 로봇 ‘딜리’와 레스토랑 서빙 로봇 ‘딜리 플레이트’를 시범 운영했다. 축산 유통기업 육그램과 전통주 기업 월향이 이달 강남N타워에 문 열 레귤러식스 레스토랑에선 블록체인·로봇·AI 기술을 탑재한 로봇이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고 자율주행 로봇이 메뉴를 서빙할 예정이다.

품질 균일하고 인건비·임대료 등 절감

이처럼 로봇이 서비스 산업에서 ‘열일’을 하면서 소비자는 어느 매장에서든 품질이 균일한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개개인의 특정 수요에는 못 미치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병주(한양대 전자공학부 교수) 한국로봇학회장은 “로봇은 현재 주어진 단순 업무에 한해 일하고 있지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딥러닝·강화학습 기술이 접목되면 소비자별 취향을 먼저 파악해 권할 정도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봇이 “지난번엔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했는데 이번에도 추가할까요?”라고 묻는 식이다.

업체 입장에선 로봇이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수가 하던 기존 업무를 24시간 대체할 수 있어 인건비·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매출도 올리는 효자다. 하지만 사람의 일자리를 뺏긴다는 불안한 시각도 있다. 이 학회장은 “그간 물류(미국 아마존), 택배(중국 알리바바·징둥닷컴), 수술·공장 등에서 무인화에 성공한 로봇이 서비스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는 건 세계적 추세”라며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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