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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에어컨 더 틀수록 전기료 할인폭 커진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앞으로 여름철에 에어컨을 하루 1시간 이상 트는 4인 가족은 예전보다 전기요금 부담을 덜 전망이다. 정부가 전기를 많이 쓸수록 할증이 되는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할 예정이라서다.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는 3일 누진제와 관련해 3가지 개편안을 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누진제 개편논의를 위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전문가 토론회에서다. TF 관계자는 "여름철 냉방기기 사용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완화와 요금 불확실성 제거에 중점을 두고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국민 10명 중 4명의 여름철 전기사용이 3구간(400㎾h 초과)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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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은 누진체계를 유지하되 여름철(7~8월)에만 별도로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안이다. 2안은 여름철만 누진 3단계를 폐지하는 '누진제 축소안'이다. 3안은 연중 단일 요금제로 바꾸는 '누진제 폐지안'이다.

현행 누진제는 전력 사용량이 200㎾h 이하인 1구간에 1㎾h당 93.3원을 적용한다. 2구간(201∼400㎾h)에는 187.9원을, 3구간(400㎾h 초과)에는 280.6원을 부과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도시거주 4인 가족의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350㎾h다. 이들이 소비전력 1.8㎾인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1시간 추가로 사용할 때마다 전력 사용량은 54㎾h씩 늘어난다. 2시간 추가 사용시 458㎾h, 4시간 추가 사용시에는 566㎾h가 되는 식이다.

1안은 지난해의 한시 할인 방식을 매년 적용하는 것으로 할인대상은 지난해와 같으면서, 대다수 국민에 지난해와 같은 혜택이 돌아간다. 1안을 선택할 경우 여름철에 1629만 가구가 월 1만142원의 전기료 할인적용을 받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평년에는 2536억원, 폭염에는 2847억원 규모의 전기료를 깎아줘야 한다는 점이다. 한전의 비용부담이 누적돼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비용부담이 상시화되는 셈이다.

한전 측은 난색을 표했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개편안으로 국민의 전기료 부담은 줄지만 한전 영업이익에는 마이너스다”면서 “이사회에서는 추가 비용부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회적 배려계층은 요금제로 할인해줄 게 아니라 정부의 복지 재정·에너지 바우처 등으로 지원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2안은 여름철 요금이 가장 높은 3단계를 없애는 안이다. 가구당 평균 할인금액이 가장 크다. 2안을 선택할 경우 가구당 할인금액은 월 1만7864원으로 1안(월 1만142원)이나 3안(월 9951원)보다 할인 폭이 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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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력소비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때(400㎾h 이상 사용)에 혜택이 부여되는 한계점이 있다. 2안을 택하면 사용량이 250㎾h인 가정은 할인 혜택이 없지만, 450㎾h를 쓰는 가정은 현행 8만8190원에서 7만6430원으로 요금이 줄면서 1만1760원의 감면 혜택을 받는다.

누진제 자체를 폐지하는 3안은 누진제 존폐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를 많이 쓰는 여름에는 혜택을 보지만, 전기를 상대적으로 덜 쓰는 계절에는 되려 전기요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TF는 3안을 채택할 경우 1416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가구당 월평균 4335원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누진제를 폐지하면 사용량이 적은 가구는 요금이 오르고 사용량이 많은 가구는 요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3안에서는 사용량 상위 1%에 해당하는 600㎾h를 쓴 가구는 현재 13만6040원에서 8만7430원으로 요금이 준다. 반면 200㎾h를 쓴 가구는 1만7690원에서 2만5800원으로 요금이 오른다. 100㎾h를 쓴 가구는 현행 7090원에서 1만1530원(인상률 38.5%)으로 요금이 오른다.

3가지 안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1안처럼 가면 모두 조금씩 전기요금 할인을 받지만 한전의 비용부담은 커진다. 2안으로 가면 400㎾h 이상 사용가구만 요금할인이 된다. 3안에선 전기를 많이 쓰면 요금할인을 받고 적게 쓰면 오히려 요금을 더 내게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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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사용량이 적다고 해서 반드시 빈곤하지 않다는 게 TF의 분석이다. 전기 사용이 적은 가구에 월 최고 4000원 전기료를 깎아 주는 '필수 사용 공제' 제도가 있지만 1인 가구가 늘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고소득 1인 가구도 혜택받고 있다. 연봉 2억원이 넘는 김종갑 한전 사장도 "나도 혜택을 받는다"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수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저소득 등으로 사회적 배려를 받아야 할 계층이 173만 가구인데 이를 제외하면 1단계 중에서 82%는 사회적 배려 계층이 아닌데도 혜택을 받는다"면서 "이게 타당한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필수사용공제’ 폐지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가정별 사용량에 따라 요금감면은 제각각이다. 사용량이 250㎾h인 가정의 경우 현행 요금이 3만3710원인데 1안에선 2만7540원으로 줄어 6170원 할인 혜택을 받는다. 2안은 할인 혜택이 없다. 3안에서는 3만7490원이 돼 지금보다 3780원을 더 내야 한다.

전기사용량이 많은 가정은 1·2·3안 모두에서 할인을 받는다. 3안에서 할인 폭이 가장 크다. 사용량이 600㎾h인 가정의 경우 현행 전기요금은 13만6040원인데 1안에선 12만20원으로 요금이 11.8% 싸진다. 2안에선 10만8490원으로 20.3% 할인, 3안에선 8만7430원으로 35.7% 할인된다.

TF는 소비자 단체· 학계 및 국책연구기관·한전·정부 등 12인으로 구성됐다. 개편안을 확정 짓기 위해 TF는 4일부터 한전 홈페이지에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기로 했다. 오는 11일 오전 10시~12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공청회 참석희망자는 4일 오후 1시부터 한전 홈페이지에서 접수(선착순 200명)하면 된다. 누진제 TF는 토론회·공청회·온라인게시판 등 의견수렴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권고안을 한전에 제시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1일 공청회 이후 한전은 전기요금 공급약관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정부에 인가요청을 할 것이다"면서 "정부는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내로 누진제 개편을 완료하고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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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용 누진제: 1974년 에너지 절약과 저소득층 보호 목적으로 주택용 누진제가 도입됐다. 유가와 전력 수급 여건 등에 따라 총 9차례 개편됐다. 2017년에는 평년 기온을 기록해 논란이 잠시 사그라들었지만 지난해 111년만의 폭염으로 전기요금 증가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면서 개편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여름철 한시적으로 요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총 3611억원이 소요됐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력사용은 봄과 가을에 비해 여름철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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