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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없는 동네 찾아서···엄마는 집도 옮겨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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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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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게임이) 생각 나요. 안 하면 죽어요. 수업시간에도 (게임) 화면이 계속 어른거려요.”

게임중독 경험 10대 얘기 들어보니 #가족 폰 훔쳐 쓰고, 공기계까지 연결 #치료 프로그램 다녀와서야 나아져 #“질병 논란보다 예방책 마련이 먼저”

서울 노원구 중학교 2학년 김성훈(14·가명)군은 게임을 못하면 불안했다. 친구와 PC방에 가거나 혼자 가서 매일 7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집에 오면 엄마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새벽까지 몰래 게임을 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면서 부족한 잠을 채웠다. 중 1이 돼서는 자주 학원을 빼먹고 PC방으로 갔다. 학원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엄마에게 연락이 가지 않게 조치했다.

그러다 학원에 있어야 할 시간에 PC방에서 나오다 엄마에게 걸리면서 들통 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난생 처음 PC방이란 데에 가서 슈팅게임을 처음 접했다가 푹 빠졌다. 김군은 “게임이 없으면 우울해졌고, 게임에 집중할 땐 밥도 걸렀다”라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게임에 손이 저절로 갔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모(55)씨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 핸드폰이 없어졌다”며 “한참을 찾다 보니 아들 침대 이불 밑에서 찾았다. (김군의) 누나들이 쓰다만 스마트폰 공기계도 찾아내서 인터넷을 연결해 게임을 하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아들을 혼자 두면 계속 게임을 할까 봐 함부로 외출도 못 했다. 스마트폰을 찾아서 엄마와 누나 방을 뒤지는 것도 걱정됐다.

처음에는 좋게 타일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회초리를 들었다. 김씨의 말이다. “회초리를 든다고 게임을 안 할까요? 저도 그럴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회초리를 맞아도 또 (게임을)해요. 그때 생각했죠. 이건 마약이랑 다를 게 없어요.”

결국 김씨는 PC방이 거의 없는 옆 동네로 이사했다. 교육열이 높은 동네라 게임을 안 할까 내심 기대했지만 김군은 아예 그전에 살던 동네 PC방을 찾아갔다.

김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심리검사에서 충동조절장애 의심 판정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상담을 권유했다. 어머니는 아이 걱정에 스마트폰, 게임 중독 관련 학부모 대상 연수에 참여했다. 김씨는 또 아들에게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며 게임중독 치료 프로그램 연수를 권유했다. 김군도 동의했다. 지난 2월 말 약 열흘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연수를 다녀온 뒤 김군은 어머니 허락을 받고서 게임을 한다.

PC방 내부.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중앙포토]

PC방 내부.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중앙포토]

김씨는 “(게임중독을) 늦게 발견하면 감당 못한다. 주변에는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며 “우리 아이는 빨리 발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해 부모에게는 낙인이고, 질병이 아니라 해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마음고생을 한다. 질병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이기보다 예방책을 먼저 세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장모(14)군은 초등학교 6학년 초에 인기 온라인 게임에 빠졌다. 매일 5~6시간 게임을 했다. “게임 시간을 줄이려고 여러 번 노력했는데, 그때마다 일주일을 못 버텼어요” 장군은 게임에서 목표를 이루거나 상대 팀과 대결에서 이기면 짜릿했다. 어머니가 인터넷을 끊자 장군은 PC방을 찾았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정모(14)양은 교우관계가 나빠져 게임에 빠졌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친구를 못 사귀고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친구를 사귀었다. 매일 4시간 넘게 스마트폰 ‘좀비’ 게임을 하며 위안을 얻었다. 어머니는 딸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걸 1년이 지나도록 몰랐다가 상담치료 중에 알았다.

김군처럼 게임중독 청소년들은 부모와 함께 상담치료에 나선다. 홍현주 경기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위기지원팀장은 “게임에 중독됐다며 상담받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 머니 등을 사려고 부모 지갑에 손을 대다 센터를 찾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상담은 가족·친구 관계 파악에서 시작한다. 병원 치료가 필요하면 연계해서 약물치료나 심리검사도 진행한다. 홍 팀장은 “게임중독으로 우울·기분조절 등의 장애를 겪거나 자살·자해의 위험도가 높은 경우도 있다”라며 “병원진단과 약 처방 등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지원한다”라고 밝혔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의 뇌파 변화가 알코올 중독과 비슷하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를 진행한 최정석 서울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부자극 처리 과정을 보면 알코올중독과 게임중독이 비슷한 뇌파 변화를 보이며, 이는 집중력·판단력 저하와 연관된 지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게임에 중독된 이의 뇌파에선 충동성과 관련한 뇌파 이상(베타파 감소)이 관찰된다”라며 “게임중독 뇌파를 분석하면 게임 관련 이미지 등의 자극에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게임 갈망과 중단의 어려움이 나타난다”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최 교수는 “게임을 한다고 모두가 중독되는 건 아니지만, 예방과 치료가 분명 필요하며, 이미 사람들이 게임중독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중독과 관련한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이 나온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게임중독 문제에서도 예방이나 사후관리체계가 없다”며 “관련 정부 부처들이 질병 여부를 규정하기에 앞서 게임중독 예방·치료 인프라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 교수는 “게임중독 문제는 이미 발생한 문제고, 사회적·개인적 낙인효과를 최소화할 방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게임중독이 문제인 건 게임 내용보다 빈도·정도”라며 “질병으로 ‘중독’을 규정할 땐 마약·알코올중독처럼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게임의 위험성과 우려가 커졌는데 이걸 단순히 업계 및 부처 간 이해 다툼으로 보고 논의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논의 주체나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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