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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일갈 "요즘 세상 왜 욕지거리만 넘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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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훈은 지난 1일 ‘ 백두대간 인문캠프’ 에서 현 세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경북도청]

김훈은 지난 1일 ‘ 백두대간 인문캠프’ 에서 현 세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경북도청]

소설가 김훈(71) 작가가 한국사회의 현 세태에 대해 “남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로 날이 지고 새는 사회가 됐다”는 설명이다.

안동 하회마을 인문학캠프 특강 #“타인의 고통 이해하는 능력 잃어”

지난 1일 김훈 작가는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 특강을 위해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강연에 앞서 하회마을을 둘러본 그는 “이곳에 오면 집과 길, 자연이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스듬하게 서로를 응시한다. 모든 존재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약간씩 비껴가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했다.

평소 안동을 자주 찾는다는 그는 전작 『자전거 여행』에서도 하회 마을을 극찬한 바 있다. 김 작가는 책에 “인간의 삶은 감추어야 하고 또 드러나야 한다. 하회의 집들은 감추어진 삶과 드러나는 삶의 꿈을 동시에 구현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런 전통을 전혀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비판했다.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연민, 남의 고통을 동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상실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사람들이 혀를 너무 빨리 놀린다. 그 혀가 생각을 경유해서 놀리는 게 아니다. 나한테 침 뱉으면 너한테 가래침 뱉는 격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우리가 사는 곳은 천박한 잔재주의 세계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 곳을 오래 바라보는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새가 알을 품듯, 선비들이 몇 개월 동안 틀어박혀 하나의 사유에 집중하듯, 몇달이고 기다리고 조용히 기다리는 성실을 완전히 상실했다. 과거 그러한 전통들이 깊이 있는 사유와 창작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래된 전통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안동은 엄청난 스토리가 있는데 ‘텔링(telling)’을 하지 못한다. ‘텔러(teller)’를 길러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하회탈춤에 대해서는 “인간이 계급을 떠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우수한 놀이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하회 탈춤에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인 사회 양극화의 주제도 담고,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내용도 넣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공개 대담에서 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가 스토리텔링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김 작가는 “도지사는 정책만 세우고 재능있는 젊은이를 발굴해야 한다”며 “우리 같은 세대가 하면 망친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얘기하도록 하면 저절로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그는 “나의 현재 고민은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며 “또한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잘 물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나는 죽으면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남들이 기억해줬으면 한다. 글 잘 쓰고 나발이고 필요 없고, ‘그 사람 참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청과 안동시청 등이 후원해 열린 이 날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세 안동시장, 김성조 경북관광공사 사장과 전국에서 온 김훈 작가 팬과 주민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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