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승태부터?···도주우려로 굳게 닫힌 구치감 셔터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구치감 앞뒤 철제 덧문이 내려진 채 수감자 호송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법무부는 도주 우려 등 경비 강화 차원에서 철제 덧문을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구치감 앞뒤 철제 덧문이 내려진 채 수감자 호송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법무부는 도주 우려 등 경비 강화 차원에서 철제 덧문을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31일 오전 서울종합법원청사 구치감에서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법원 청사 서관 옆쪽으로는 구속된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을 때 구치소 등에서 호송차를 타고 와 승하차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내리면 바로 법원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온다. 피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바로 법정으로 이동할 수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진 촬영 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속된 피고인을 취재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장소인 셈이다.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구치감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수정 기자

3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구치감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수정 기자

그런데 이날 오전 이곳에 셔터가 내려졌다. 오전 10시 재판에 출석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을 취재하려 했던 취재진은 양 전 원장의 모습을 담지 못했다. 기자들이 문의하자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구치감 셔터는 법원이 아닌 법무부의 관리 소관”이라고 알렸다. 법원은 “법무부로부터 공식 공문은 받지 못했지만 곧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오후가 되자 서울구치소장 명의로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 제357조 제13호와 관련해 수용자 인권 보호 및 도주방지 등 계호력 확보를 위한 물적 계호 필요성이 증가해 2019년 5월 31일부터 법원 출정 수용자 승하차 출입 시 출입차단시설(셔터)을 사용하니 협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이 서울고등법원에 왔다고 법원은 알렸다.

법무부가 보낸 공문 내용을 풀이하면 앞으로 수용자가 호송차에서 내리고 탈 때는 구치감 셔터를 내려 이들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5월 초 중순경 직접 이런 지시를 내려 수용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지시를 직접 내리게 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법무부가 근거로 내세운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은 법무부 훈령이지만 일부 내용은 비공개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침 제357조 제13호는 “수용자들이 재판이나 조사를 받으러 구치감에 갈 때 호송차 승하차 시 계호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으니 차단 시설 등으로 계호를 강화하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 조항이 최근에 생기거나 개정된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지켜야 할 지침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울중앙지법 구치감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아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월 하순쯤 전국 구치감 시설에서 호송차 승하차 시 셔터를 내리는지 등 실태를 조사했고, 셔터 시설이 마련된 전국 37개 구치감 시설에서 잘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도 지침을 준수하라고 공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양 전 원장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구치감 셔터를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 우연이냐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 정책적 차원에서 인권 보호라기보다는 조치 시점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다른 이유로 내세운 도주 우려도 사실상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구치감 셔터를 열어놓고 수용자들이 호송차에서 타고 내렸던 서울중앙지법 구치감에서 최근 3년 동안 도주를 시도하거나 도주에 성공한 수용자는 한명도 없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