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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방’에서 그림처럼 셀카…2030, 전시·공연 주인공 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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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19면

진화하는 문화 콘텐트

문화 콘텐트가 진화하고 있다. SNS에 매일 자신의 일상을 포스팅을 하는 2030세대의 취향에 맞춰 문화예술도 수용자가 수동적인 소비를 넘어 적극적으로 체험을 해보고 입소문을 내도록 기획되는 추세다. 가상의 공간인 SNS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실제 공간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남보다 먼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진화다.

SNS 맞춤형 문화 콘텐트 등장 #보는 게 아니라 참여해야 제맛 #미술관·공연장에서도 촬영 허용 #입소문 덕에 대중화·마케팅 효과

실제 공간 체험에 로망 품는 디지털 세대

'반 고흐를 만나다' 전시는 관객이 반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컨셉트다.

'반 고흐를 만나다' 전시는 관객이 반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컨셉트다.

네덜란드 반고흐 뮤지움이 직접 제작해 전세계를 투어 중인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전은 관람객이 직접 전시물의 일부가 되는 ‘인터랙티브 아트’다. 관람객은 전시를 구경하기보다 사진 찍느라 바쁘다. 고흐의 그림과 똑같이 꾸며 놓은 ‘반 고흐의 방’의 침대에는 연인들이 걸터앉아 이리저리 셀카 각을 잡고 있다. 촬영은커녕 조용히 눈으로만 봐야 하는 일반 전시와 달리, 오감으로 체험하고 입소문을 내도록 세팅됐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연이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연이다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얌전히 앉아 액자형 무대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공연의 일부가 되기를 즐긴다.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공연 중인 ‘푸에르자 부르타’는 보는 것을 넘어 직접 느끼도록 하는 ‘인터랙티브 퍼포먼스’다. 촬영도 자유롭게 허용된다. 벽과 천장 등 모든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배우가 관객의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고, 관객은 공연의 콘텐트인 물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배우 파트리시오 사우크는 “공연의 일부인 관객이 매일 달라지기에 항상 새로운 경험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것이 관객에게 달린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푸에르자 부르타’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연이다. [사진 각 제작사]

‘푸에르자 부르타’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연이다. [사진 각 제작사]

이 공연은 2013년 국내 초연 당시엔 잠잠했지만 지난해 대박이 났다. 공연 기간 인스타그램 관련 태그 게시글이 22만개가 넘게 달린 ‘입소문의 힘’으로 5만 5000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다. 지난 4월 말 곧바로 재공연에 돌입할 수 있었던 이유도 5년 사이 팽창한 SNS 문화 덕분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도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지난해 ‘푸에르자 부르타’의 인기에 대해 “SNS라는 가상공간에 길들여진 밀레니얼 세대가 오감이 동원되는 실제 공간에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전세계 공연계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장소특정형’ 공연도 ‘실제 공간에 대한 기대’에 기반한다. 현재 뉴욕에서 가장 핫한 공연이라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5층짜리 호텔로 꾸민 빌딩에서 가면을 쓴 관객이 100개 객실을 돌아다니며 무언극에 동참하는 컨셉트다. 모든 관객이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2003년 영국에서 초연됐지만 별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2011년 뉴욕에서 입소문을 타고 대박이 났고, 지금도 뉴욕 필수 관광코스로 꼽히며 연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날로그 체험+디지털 자랑’ 문화의 ‘끝판왕’은 야외 페스티벌이다. 요즘 2030세대에게 4월부터 9월까지의 기간은 ‘뮤직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뮤페’ 관련 SNS 포스팅도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두드러진 특징은 ‘도심형’이란 점이다. 차를 잘 사지 않는 2030세대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오갈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캠핑장 숙박까지 하며 즐기던 록페스티벌은 이제 줄어드는 추세고, 도심을 무대로 열리는 EDM(Electronic Dance Music) 페스티벌이 대세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록페’의 하나인 지산록페스티벌은 지난해 열리지 않았고, 원조 재즈 페스티벌인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축소 개최됐다.

도심서 열리는 EDM 페스티벌이 대세

국내 EDM 페스티벌의 원조인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은 지난해 8만 관객을 모았다.

국내 EDM 페스티벌의 원조인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은 지난해 8만 관객을 모았다.

반면 EDM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는 과천 서울랜드나 인천 문학구장을 벗어나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다. 2007년 시작된 국내 EDM 페스티벌의 원조 ‘서울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은 지난해 8만 명을 동원했다. 2012년 시작된 세계적인 라이선스 축제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은 관람객이 첫 해 5만 명에서 지난해 18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2016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스펙트럼 댄스뮤직 페스티벌’은 검증된 해외 라이선스가 아닌 신생 국내 제작 페스티벌이지만, EXO-CBX(엑소 첸벡시)가 출연하는 등 SM 고유의 브랜드 파워를 내세우며 지난해 6만 관객을 모았다.

관객들은 콘텐트의 소비자를 넘어 스스로 튀는 콘텐트를 생산하기 위해 애쓴다.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게 아니라 신나게 노는 모습을 남기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오가 좀 지나 특이한 코스튬을 입고 살짝 취한 상태로 입장한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공연을 골라 보며 밤늦게까지 소풍 온 듯 즐긴다.

EDM 매니어라는 30대 여성 김모씨는 “‘야외 나이트’랄까, 방방 뛰며 흔들러 간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 최모씨는 “DJ의 역량에 따라 수만 관중이 한꺼번에 뛰게 만들면 장관이 연출된다. 폭죽과 조명이 함께 터지는 클라이맥스를 포착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EXO 팬이라 지난해 스펙트럼 페스티벌에 처음 가봤다는 회사원 조모씨는 “관객들 패션이 ‘관종(남들의 관심에만 신경 쓰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특이했다. 더운 날씨였는데도 호랑이나 공룡 코스튬을 입거나 반대로 과다한 노출 패션으로 공연은 보지 않고 셀카만 찍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 방송을 촬영하는 유튜버들도 많이 목격했다”고 했다.

콘텐트 소비 넘어 생산하는 관객 문화

지난해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한 한 관객의 인스타그램

지난해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한 한 관객의 인스타그램

전문가들만의 축제로 여겨져 왔던 무용 페스티벌도 ‘참여형’을 표방하는 추세다. 16일 개막한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인 국제현대무용제(MODAFE)는 25일 하루 동안 마로니에 공원에서 관객 참여 행사인 ‘모스(M.O.S=MODAFE Off Stage)’를 펼쳤다. 프로무용단의 개성적인 춤스타일을 시민이 직접 체험하거나 시민들끼리 벌이는 댄스경연 같은 프로그램을 내세웠다.

모스를 기획한 홍혜전 집행위원은 “과거엔 페스티벌이 극장 안에서만 이뤄졌지만 지난해부터 현대무용 대중화를 위해서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대규모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데 많은 무용인들이 공감했다”면서 “마로니에 공원에서 데이트하던 젊은이들도 행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예상보다 판이 커졌고 행사 후 SNS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고 올해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정호 공연평론가는 “난해하다고 인식되던 현대무용도 SNS 덕에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공연계에서 뉴 미디어를 잘 활용해 콘텐트 개발에 나선다면 대중과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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