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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식당은 자랑 안 한다…‘고독한 미식가’에 나왔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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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18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마츠시게 유타카. [뉴시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마츠시게 유타카. [뉴시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일본 TV 프로그램은 아마도 ‘고독한 미식가’가 아닐까. 나를 처음 만났는데도 내가 일본사람인 줄 알자 “고독한 미식가 보고 있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내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일본’이라고 하면 바로 고독한 미식가가 떠오르는가 보다. 전혀 일본어를 못하면서도 “우마이(맛있다)!”라고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郎)의 말투를 흉내 내는 사람도 많이 봤다.

한국서 더 인기 있는 일본 먹방 #주인공 말투 흉내 내기도 유행 #전주 ‘토방’ 찾아 가정식백반 다뤄 #공짜로 주는 갖가지 반찬 인상적 #일본 촬영지 서민적 가게 많지만 #방송 출연 홍보 대신 맛으로 승부

사실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에서는 그렇게까지 인기가 높은 드라마는 아니다. 나도 일본에 있을 때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였는데 한국에 와서 거의 매일같이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걸 보고 팬이 됐다. “한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고 하면 일본 친구들은 “왜?” 하고 하나같이 놀란다.

“한국서 엄청 인기” 에 일본 친구들 “왜?”

고로가 일 때문에 어딘가에 갔다가 그 근처에서 혼자 밥을 먹는 단순한 스토리를 가진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고로가 먹는 곳이 실제로 있는 가게라는 것도 큰 것 같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사람은 714만 명에 이르렀다. 물론 다른 관광 목적도 있겠지만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일본 음식인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는 나도 지난해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독한 미식가에 소개된 가게를 찾아가곤 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고독한 미식가 투어를 하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한국사람들이 꽤 많다.

시즌7에 방영된 전주의‘토방’. [나리카와 아야]

시즌7에 방영된 전주의‘토방’. [나리카와 아야]

최근에 찾아간 곳은 일본이 아닌 한국 전주다. 전주국제영화제 때문에 전주에 간 김에 시즌7에 등장한 ‘토방’이라는 가게를 찾아갔다. 식당 안에는 고로를 연기하는 마츠시게 유타카(松重豊)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날짜를 보니 2018년 5월 10일. 지난해에도 영화제 때문에 그날 전주에 있었는데 마츠시게를 못 봤다니 아쉽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고독한 미식가를 촬영 중인 마츠시게를 본 적이 있다. 오사카 우리 집 근처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집이었다. 늘 TV에서 보던 얼굴인데 집 근처에서 봐서 아는 사람인 줄 착각하고 “곤니찌와(안녕하세요)!”라고 해 버렸다. 그런 일이 자주 있는지 마츠시게도 “곤니찌와!” 하고 웃어 줬다. TV에서 봤던 대로 싹싹한 사람인 것 같다.

전주 토방 이야기로 돌아가자. 마츠시게가 고독한 미식가 촬영 때문에 한국에 왔다는 것은 그 당시 뉴스를 통해 알았다. 어디서 먹었는지가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한 일본 배우가 한국에 와도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겁지 않은데. 한국에서의 대단한 인기에 마츠시게 본인이 가장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토방의 가정식 백반. [나리카와 아야]

토방의 가정식 백반. [나리카와 아야]

고로가 토방에서 먹은 것은 ‘셀프 비빔밥’이라고 소개됐다. 그런데 실제 메뉴는 가정식 백반이었다. 일본에서는 밥에 반찬이나 국물을 섞어 먹는 문화는 별로 없기 때문에 신선했던 모양이다. 자기만의 비빔밥을 만들며 즐기는 모습이 방송됐다.

나는 한국 음식을 사랑하지만 흰밥만큼은 일본이 더 맛있는 것 같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김치가 있고 반찬과 국물을 같이 먹기 때문에 흰밥만 먹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흰밥 맛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은 흰밥 자체의 맛을 추구하는 편이다.

토방에 걸려 있는 기념사진. [나리카와 아야]

토방에 걸려 있는 기념사진. [나리카와 아야]

내가 신문 기자로 2년 동안 근무했던 도야마(富山)는 흰밥이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쌀이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물이 맛있어서였다. 도야마의 수돗물은 국제적인 품질 콩쿠르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그 맛을 인정받고 있다. 맛의 비결은 산이다. 도야마에는 다테야마 연봉(立山連峰)이라는 3000m급 산들이 줄지어 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눈이 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높이 20m나 되는 거대한 눈의 벽은 ‘눈의 대곡(雪の大谷)’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관광지다. 엄청난 양의 눈이 도야마의 수원이다.

쌀과 물이 맛있다는 것은 사케가 맛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해산물도 정말 맛있다. 도야마의 해산물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전국에 전근을 다니는 일본 신문기자들의 평가다. 저렴한 회전스시도 도쿄나 오사카의 고급 스시집보다 훨씬 맛있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일본 음식 이야기를 하는 데 도야마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음식 대표선수는 전주라고 하지만 일본은 도야마다.

당당하게 혼밥 즐기는 모습에 동경심  

한국의 고독한 미식가 팬들은 잘 먹는 고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고로는 혼자서 여러 메뉴를 주문해서 하나씩 음미하며 먹는다. 한글을 못 읽는 고로는 토방에서는 일단 가장 저렴한 메뉴를 시키고 그다음에 추가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가정식 백반만 먹고 끝났다. 잘못 주문한 것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많은 반찬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놀러 오는 친구들도 한국의 다양한 반찬에 감동한다. “이게 다 공짜냐”며 정신없이 먹는 모습은 몇 번 봐도 흐뭇하다. 나도 토방에서 고로와 같이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고 청국장도 같이 섞어서 한국다운 음식 문화를 즐겼다.

그런데 수많은 일본 먹방 프로그램 중에서 고독한 미식가가 특별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 그 답은 ‘고독’에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고로가 전주로 출장 갈 때는 서울에서 직원도 동행했다. 한국에서는 출장을 같이 갈 경우 밥을 따로 먹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독한 미식가는 혼자 먹는 것이 콘셉트인 드라마인 만큼 고로는 전주에서도 혼자 셀프 비빔밥을 즐겼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혼밥’이라고 혼자 밥을 먹는 문화가 정착된 듯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혼자 밖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약간 어색하다는 사람도 있다. 일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혼자 밥을 먹는 일본사람도 한국에서는 주변 시선 때문에 불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즐기는 고로의 모습에 동경심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같이 먹고 싶어도 쉽게 말을 못 꺼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같이 먹는 한국 음식문화를 좋아하지만 혼자 먹어도 편한 일본이 그리울 때도 있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1에 나왔던 도쿄의 돈가스집 미야코야. [나리카와 아야]

‘고독한 미식가’ 시즌1에 나왔던 도쿄의 돈가스집 미야코야. [나리카와 아야]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가게는 대부분 도쿄에 있다. 요즘 도쿄에 갈 때마다 찾아다니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맛있었던 가게는 시즌1에 나왔던 돈가스집 미야코야(みやこや)다. 사기노미야(鷺ノ宮)역 근처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보니까 손님은 대부분 근처에 사는 사람 같았다.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가게는 그런 서민적인 가게가 많다. 그래서 관광지가 아닌 일본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문한 건 굴튀김(カキフラ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굴전은 많이 먹지만 굴튀김은 먹어 본 적이 없다. 한국말로 튀김이라고 하는 음식은 일본에서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음식이다. 하나는 프라이(フライ), 하나는 덴뿌라(天ぷら)다. 여기서 먹은 굴튀김은 프라이다. 일본에선 빵가루를 묻혀서 튀기는 프라이는 양식이고, 밀가루를 묻혀서 튀기는 덴뿌라는 일식으로 전혀 다른 요리다. 그래서 일본사람은 한국에서 돈가스가 일식으로 분류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일본에서는 양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야코야에서 맛볼 수 있는 굴튀김. [나리카와 아야]

미야코야에서 맛볼 수 있는 굴튀김. [나리카와 아야]

하여튼 일본에서는 굴튀김을 자주 먹는다. 바삭한 튀김 옷 안에 즙이 많은 굴. 한국에서도 인기 있을 만한데 왜 안 팔까.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고 행복했다. 고로가 여기서 먹은 건 돈가스와 치킨가스가 같이 나오는 믹스가스 정식. 거기다가 돼지고기를 마늘 소스로 구운 로스마늘구이를 추가로 시켜 먹었다. 정말 잘 먹는다.

고독한 미식가에 나온 가게들을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방송에 나왔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 가게가 많았다. 사인 정도는 있어도 따로 눈에 들어오는 건 없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방송 출연을 하면 큰 간판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어필하는 경우가 많다. 방송에 나왔으니까 맛있겠지 하고 가는 건 맞는데 그것을 주장하지 않는 가게가 더 맛으로 승부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일본적인 감각인 것일까. 나처럼 고독한 미식가 투어를 하는 한국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끼면서 다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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