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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최고회의’ 연 민주당…당에서도 “‘위시풀 싱킹' 경계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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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4·27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3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를 견학하는 도중 북한군이 내부를 감시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4·27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3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를 견학하는 도중 북한군이 내부를 감시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3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4ㆍ27 판문점 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북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이겠다는 취지였다.

판문점 남측 지역은 지난 1일부터 민간에 개방됐다. 이 대표는 “저도 여기 처음 와보는데 감회가 참 새롭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시작된 한반도 평화는 70년 분단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3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T2 회담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3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T2 회담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회의에 앞서 당 지도부는 4ㆍ27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 집’과 양 정상이 산책하며 독대한 ‘도보 다리’, 기념식수를 한 장소 등을 둘러봤다. 이 대표는 방명록에 “한반도 평화를 기원합니다”라고 적었고, 양 정상이 나란히 앉았던 벤치에도 앉아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알려진 북한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는 ‘반당적’, ‘반혁명적’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노동신문은 “앞에서는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딴 꿈을 꾸는 동상이몽은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저버린 반당적, 반혁명적 행위”라며 “이런 자들은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에 ‘반당·반혁명’, ‘준엄한 심판’ 등 숙청을 암시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곧바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북·미 2차 회담 실패, 이른바 ‘하노이 노딜(No Deal)’에 관여한 주요 인사들의 숙청설이 제기됐다. 한국인에게 친근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근신설도 뒤따랐다.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눴던 판문점 도보다리. 17일 촬영.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눴던 판문점 도보다리. 17일 촬영.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민주당의 이날 행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2년 전 북한 병사가 우리 쪽으로 귀순을 시도하다가 총격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 JSA인데, 아무런 경각심 없이 탁상회의를 열겠다고 하니 여당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의 안보관이다.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당사를 JSA로 옮기라”는 논평을 냈다. 육군 장성 출신인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군부대가 정당 회의 장소냐”며 “국군 장병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동은 하지 말자”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당은 “당사를 옮겨 남북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날이 온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당사를 옮기겠다. 한국당은 공연한 시비 걸기를 그만두고 조건 없는 국회 복귀부터 결정하라”(이해식 대변인)고 받아치는 등 겉으론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여권이 북한의 내부 사정을 예의주시하며 좀 더 신중한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수도권 의원은 “정치나 외교는 ‘위시풀 싱킹(wishful thingkingㆍ희망적 사고)를 배제하고 냉정하게 봐야 한다. 북한의 속성상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그냥 넘어갈 리 없다는 건 예견됐고, 현재 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은 사실 굉장히 심각하다. 당 지도부도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신중한 행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도 “여야 대치로 국회가 일을 못 하고 있는데 판문점 회의 같은 이벤트는 국민에게는 좀 한가해 보일 수도 있지 않겠냐”며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건 맞지만, 선언적으로 구호만 외치거나 우리만 너무 앞서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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