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중 고래싸움 샹그릴라서 시작됐다…한국 자칫 새우등

중앙일보

입력 2019.05.31 13:51

업데이트 2019.05.31 18:02

31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한 아시아 최대 다자안보회의인 제18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의 최대 관심사는 미·중 대결 구도에서의 한·일의 행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미·중의 치열한 외교전 속 한·일의 입장이 주목받고 있다. 한·미·일 북핵 협상 실무진이 머리를 맞대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한·일이 초계기 갈등으로 악화된 감정을 풀 여지가 있을지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31일 개막 아시아안보회의 관전 포인트
중, 회의 앞두고 전쟁 앞둔 경고 표현 사용

미국,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중국에 선공

이번 행사는 내일(6월 1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미 국무부는 “섀너핸 대행의 이날 연설 제목이 ‘인도-태평양 안보에 대한 미국의 비전’”이라며 “이 지역에서의 구체적이면서 진화된 전략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섀너핸 대행은 인도·태평양을 최우선 활동 지역으로 꼽고 이에 따른 군사력 재배치를 설명함으로써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대해 압박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중국이 반발하는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한·일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할 가능성이 크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지난 4월 오전(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장 관 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지난 4월 오전(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장 관 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중국, 전쟁 앞두고 썼던 최후통첩 표현 동원 

중국 역시 이런 상황에 대비해 8년 만에 샹그릴라 대화에 국방부장(장관)을 파견한다.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은 2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다.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에 맞서 중국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가시' 전략을 노골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1일 예정된 가운데 미·중 양자 회담도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샹그릴라 대화가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반중(反中) 성토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뒤늦게 국방부장의 참가를 결정한 중국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은 샹그릴라 대화를 앞두고 최후통첩성 표현까지 동원했다. 중국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29일 게재한 “미국은 중국의 반격 능력을 저평가 말라”는 칼럼에서 중국 외교 레토릭 중 최고 수위인 “경고하지 않았다 말하지 말라(勿謂言之不預·물위언지불예)”라는 표현을 썼다.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인민일보는 이 구절을 단 두 차례 사용했다. 1962년 9월 22일 “인도 당국에 말한다. 경고하지 않았다 말하지 말라”고 적었고,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 당국은 반중의 길에 이미 너무 멀리 왔다. 경고하지 않았다 말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은 사설을 게재한 지 한 달 뒤 인도와 베트남을 침공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1967년 중·소 분쟁 당시 중국에 주재하는 소련 대표를 향해 같은 구절을 사용했다. 이후 중국은 국경에서 소련과 국지전을 벌였다. 이번엔 미국을 향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함에 따라 '남중국해 일전' 가능성을 경고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대결 구도에서 선택지를 받아든 한·일의 입장을 비교하는 것도 볼 만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미국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일본은 미국 측에 한 발 더 가깝게 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 기존과 같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남중국해를 놓고 미·중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5년 이 지역의 항행 자유를 주장하면서 미국 편에 섰지만, 2017년엔 ‘평화·안정을 위한 당사국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비군사화’를 언급하는 수준의 중간 전략을 구사했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5차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중국 국방부장 웨이펑허(魏鳳和) 상장과 가진 국방장관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방부]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5차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중국 국방부장 웨이펑허(魏鳳和) 상장과 가진 국방장관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방부]

한·미·일 북핵 관계자 합류로 판 커졌다

한국과 미국, 일본 북핵수석대표가 연쇄 회동을 벌인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3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만난다. 이어 다음날인 1일 오전에는 한·일 북핵수석대표 협의, 오후에는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이뤄진다. 군 당국자는 “이번 북핵 관계자의 만남은 갑작스럽게 편성돼 샹그릴라 대화의 부대 행사 격으로 진행된다”며 “국방 수장들이 모이는 샹그릴라 대화에 주요국의 외교 고위급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핵수석대표 회동을 놓고 북한과 대화 동력을 살리는 시점이 왔다는 데 3국이 뜻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제재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대북 인도적 지원에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문을 걸어 닫은 북한을 어떻게 대화 테이블로 이끌지가 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1일 ‘한반도 안보와 다음 단계’를 주제로 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연설도 관심을 모은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급변한 한반도 정세를 어느 수준으로 평가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국방부는 “(정 장관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한 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당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양자회담 놓곤 신경전

군 당국은 이번 행사에서 한·미·일 3자 회담, 한·중 양자회담 일정을 갖고, 행사가 끝난 뒤 한국에서 한·미 회담을 열기로 했지만 한·일 간 만남은 여전히 조율 중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초계기 갈등’의 여파 때문이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은 지난해 10월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를 끝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에서 초계기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일본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에서 초계기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관계자는 “지난 9일 한·미·일 안보회의(DTT) 등에서 갈등이 봉합돼야 한다는 큰 틀에 대해 양국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정식 회담 대신 스탠딩 토크 형식으로 양국 장관이 만나는 방안도 거론된다. 주 일본 한국 대사관의 국방 무관을 지낸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양국 장관이 만난다면 안보 문제와 정치·역사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로 나아가는 건지, 아니면 다음 달 열리는 오사카 G20 정상회의 전 양국 정상의 만남을 위해 여건을 마련하는 수준인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이근평 기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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