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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원격진료 ‘5G 전용차로’ 주자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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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6차로로 확 넓어진 경부고속도로에 버스전용차로, 트럭전용차로, 오토바이전용차로를 만들면 전체 이용객에게 이익일까, 손해일까.

이통사·학계 “5G산업 선점 위해 #데이터 안정적 전송 하게 해줘야” #시민단체·중기 “대기업에 특혜”

이와 유사한 논란이 이동통신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5세대(G) 통신망에서 특정 데이터를 별도로 빠르게 보내는 문제를 놓고 이통사와 정부·시민단체 사이에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5G 네트워크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LTE보다 스무배 가량 빠르다. 고속도로로 치면 차로가 넓어져 차로 운용에 여유가 생긴 것과 유사하다. 이통 업계는 이들 차로를 세분해 자율주행·의료정보·가상현실(VR) 같은 데이터를 각각의 ‘전용 차로’로 보내자고 주장한다.

네트워크를 나눠 쓰는 이런 기술을 통신 용어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네트워크를 잘게 쪼개 쓴다는 의미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5G 시대의 핵심산업 중에 자율주행·원격진료·산업용 로봇 등은 통신에 끊김(지연) 현상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비해 홀로그램 공연,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의 서비스엔 빠른 통신 속도가 중요하다. 전용 차로를 만들 수 있으면 각각의 용도에 최적화된 맞춤형 통신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용 데이터는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전송이 필요하니, 전용차로를 만들면 관련 산업 진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학계에서도 필요성은 인정한다. 홍대식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4G는 스마트폰으로 주고 받는 정도의 데이터 속도가 보장되면 됐지만, 5G 시대엔 다양한 속성을 가진 기기들 간(Machine-to-machine)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필요하므로 전송 속도의 안정적 보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는 “5G 관련 산업을 선점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5G 통신이 시급하게 필요한 산업과 기업에 통신 자원을 우선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스타트업들은 반대 입장이다. 몇 개 차로를 전용차로에 내주면 일반 차(데이터)들은 남은 차로만 쓸 수밖에 없으니 속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업들은 주로 대기업이므로 혜택이 차별적으로 돌아간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네트워크를 차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대기업이나 수도권 등 인구 밀집 지역에만 망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통신망은 교통·가스·전기 등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는 공공자산이기 때문에 공익적 측면에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계는 전용차로를 내주면 상대적으로 높은 망 사용료를 내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5G 망에 전용차로를 구축할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구성한 민관협의체 ‘5G 통신정책 협의회’가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협의회는 지난 24일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서비스 개발 추이를 보면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김정렬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기획과장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은 구체적인 서비스 모델이 아직 없고, 일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대안이 부족하다”며 “하반기에 논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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