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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수소탱크 폭발했는데 수소차는 안전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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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수소탱크 폭발…수소차는 폭발 안 하나?

강릉 수소탱크 폭발 사고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심각한 수준의 경기 침체를 경험 중인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3대 혁신성장 투자 분야 중 하나가 수소경제라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소탱크 폭발로 수소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수소에너지 전문가에게 수소경제·수소차의 안전성에 대해 문의했다.

23일 강원도 강릉시 공장에서 발생한 수소탱크 폭발 여파로 옆 건물 유리창이 모조리 깨졌다. [뉴스1]

23일 강원도 강릉시 공장에서 발생한 수소탱크 폭발 여파로 옆 건물 유리창이 모조리 깨졌다. [뉴스1]

수소는 안전한 연료인가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수소에너지와 수소폭탄은 전혀 다르다”며 “수소는 가장 안전한 연료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소폭탄(핵융합반응)과 수소탱크 폭발(산화환원반응)은 개념·원리가 다르다. 또 정부는 종합위험도분석에 따라 가솔린·프로판·메탄 보다 수소가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수소의 위험성을 1이라고 볼 때, 가솔린(1.44)·프로판(1.22)·메탄(1.03)이 모두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다. 
프링글스 캔에 수소를 채운 뒤 불씨를 대자 캔이 마치 로켓처럼 치솟는 장면. [유튜브 캡쳐]

프링글스 캔에 수소를 채운 뒤 불씨를 대자 캔이 마치 로켓처럼 치솟는 장면. [유튜브 캡쳐]

하지만 이는 4가지 연료를 항목별로 1~4위로 나눠 15개 항목 순위의 평균을 단순히 합산해 상대점수로 변환한 수치다. 예컨대 인화점이 낮은 순서대로 순위를 부여하고, 가솔린에 1점, 메탄에 2점, 프로판에 3점, 수소에 4점을 부여한다. 정부의 설명에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수소가 안전하다’는 말은 틀렸다”고 반박한다. 대신 “‘수소를 안전하게 관리할 방법은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화학을 전공한 대다수의 전문가도 ‘수소는 위험한 물질’이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워낙 폭발범위가 넓고 폭발규모가 커서다. 공기 중 수소 농도는 많아도(75.6% 이내) 폭발하고, 적어도(4% 이상) 폭발한다. 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액화천연가스(LNG·(5.3~15.0%) 보다 폭발범위가 7배나 넓다. 또 메탄(0.28mJ)·프로판(0.25mJ) 등 다른 연료보다 쉽게 불이 붙고(0.013mJ·최소착화에너지), 불이 붙으면 LNG보다 10배나 큰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다.
강릉에서 사고로 폭발한 수소탱크. [연합뉴스]

강릉에서 사고로 폭발한 수소탱크. [연합뉴스]

이번에 폭발한 수소탱크는 수소차 충전용기와 동일한가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대변인은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실이다. 폭발한 수소탱크는 연구실험시설용 용기다. 강철을 용접해 만들었다. 때문에 용접부위에 이음매가 존재한다. 하지만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수소차·수소충전소 충전용기는 탄소복합섬유로 제작했다. 재질이 강철보다 10배 이상 강력한데다,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대신 찢어지면서 수소가 새어나간다. 수소는 밀도가 낮아 누출하면 대기 중으로 빠르게 퍼진다. 다만 이 수소는 특별한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작은 불씨를 만나면 대규모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수소를 채운 작은 풍선이 점화하면 거대한 불꽃이 발생한다. [유튜브 캡쳐]

수소를 채운 작은 풍선이 점화하면 거대한 불꽃이 발생한다. [유튜브 캡쳐]

그렇다면 안전한 수소탱크를 사용하면 폭발사고를 방지할 수 있나
정확한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 중이다. 다만 산업부가 24일 발표한 보도자료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짚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자료는 수소차·수소충전소 충전용기와 강릉서 폭발한 수소탱크 용기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대해 이덕환 교수는 “정부가 수소폭발의 유형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혹은 이번 사고를 ‘물리적 폭발’로 가정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수소폭발은 물리적 폭발(explosion)과 화학적 폭발(detonation)로 구분한다. 물리적 폭발은 밀폐된 용기가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에 비해 화학적 폭발은 수소의 분해·연소 과정에서 발생한다. 물리적 폭발은 지난 15일 충북 청주 시내버스 타이어 폭발을, 화학적 폭발은 다이너마이트 폭발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수소탱크 폭발사고 현장. [연합뉴스]

수소탱크 폭발사고 현장. [연합뉴스]

물리적 폭발과 화학적 폭발의 차이점은 연쇄반응과 폭발정도다. 물리적 폭발이 근거리에 치명적 피해를 주지만, 원거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반면 화학적 폭발은 연쇄 폭발 반응을 일으켜서 원거리까지 피해가 미친다. 이 교수는 “100여m 떨어진 건물 벽이 무너지거나 창문이 깨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고는 화학적 폭발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발표한 수소탱크 용기의 차이는 ‘물리적 폭발’과 관련한 내용으로, 화학적 폭발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수소탱크 폭발이 ‘화학적 폭발’로 밝혀질 경우, 정부가 엉뚱한 해명을 내놓았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자율주행 수소차.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자율주행 수소차. [청와대사진기자단]

수소차는 안전하다고 봐도 되나
수소탱크도 다르지만, 각종 안전장치도 겹겹이다. 현재 국내서 유일하게 수소차를 시판하는 현대자동차는 실시간 수소 누출을 모니터링 하는 장치(수소누출감지센서)를 수소차 연료 공급 시스템 곳곳에 적용했다. 센서가 수소 누출을 감지하면 수소탱크 밸브를 차단하고, 수소탱크 온도가 상승하면 강제로 수소를 배출한다. 또 수소탱크가 폭발하지 않도록 화염방지물질(내화재)을 적용해 차가 완전히 불타도 수소탱크가 폭발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것처럼, 수소차 역시 누구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몇 겹의 안전장치가 있더라도 100% 안전한 차는 없다”고 지적했다. 신차는 괜찮더라도, 온도·소음 등 최악의 조건에 장기간 차량이 노출되다보면 향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소탱크 폭발사고 현장과 수백미터 떨어진 공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수소탱크 폭발사고 현장과 수백미터 떨어진 공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사고 이후에도 정부가 수소차는 안전하다는 점만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24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강릉 사고 현장에 방문해 “현재 수소 생산·저장·유통·활용은 글로벌 수준의 적합한 안전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연우 산업부 신에너지산업과장도 “이번 사고는 수소차·수소충전소의 안전 문제와는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박현철 한국수소협회 안전자문위원(울산대 교수)은 “수소에너지는 결코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전불감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안전성부터 먼저 확보하고 수소차를 보급해야 수소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데, 정부가 수소차를 보급하려고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의 수소차 넥쏘가 하남 스타필드에 전시되어 있다. 하남 = 문희철 기자.

현대자동차의 수소차 넥쏘가 하남 스타필드에 전시되어 있다. 하남 = 문희철 기자.

수소에너지가 위험하다면 포기해야 하나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감안해서 판단할 문제다. 지금 기술로는 안전성이 다소 미흡한 부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수소를 포기할 문제는 아니다.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더라도 경제성이 뛰어난 기술이 등장한다면 써야한다. 도시가스가 위험하지만 대중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처럼 수소기술도 장기적 기술 개발이 필요한 미완성 기술이다.
다만 에너지원으로서 수소의 효율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덕환 교수는 “‘정부가 마치 수소는 가벼워서 폭발위험이 적고, 에펠탑 무게도 견딘다’는 식으로 엉터리 주장을 펼친다”며 “초고압 수소연료가 화학적 폭발을 일으킬 때 위험성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위험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적절한 기술과 제도를 활용하면 수소는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정부는 수소가 안전하다고 우기지 말고, 안전 제도를 확실히 정착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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