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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디테일의 클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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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감독 봉준호는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린다. 배우의 대사와 행동, 소품과 배경 등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 영화적 요소에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의 섬세함과 치밀함을 칭송하는 말이다. 정작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능력이 탁월하다 보니 별명이 됐다.

칸 수상 이후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관객들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 그 뒤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있는 느낌…그런 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느낌’이고 ‘방식’이다. 잡고 싶은 범인을 못 잡는데도 재미와 감동이 남는 범죄스릴러(살인의 추억·2003년), 우리 바로 곁 한강을 무대로 부조리와 휴머니즘을 버무린 괴수영화(괴물·2006년)를 그런 디테일로 묘사했다. 역대 작품 중 가장 열등한 생명체(기생충)로 최고의 상을 거머쥔 것도 혹시 봉 감독이 감춰놓은 장치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어쨌든 그의 천재성은 칸을 매료시켰다.

기립박수가 쏟아진 봉 감독의 디테일과는 정반대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곳이 한국의 정치다. 여기서는 디테일이 주로 ‘악마’로 불린다. 남북문제, 민생 경제, 규제 개혁, 국회 정상화 등 현안 곳곳에서 리더십은 벽에 부딪히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하는 식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3월 임시국회 개회사에서 “국민은 ‘악마는 디테일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있다’고 생각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지만 여전히 국회는 공전하고 있다. 여야 모두 봉 감독의 수상을 기뻐한다니, 이참에 ‘월드클래스 디테일’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꼈으면 한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