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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길현의 이코노믹스

플랫폼 제국이 세계 장악할 때 한국은 우물 안 논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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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재웅·최종구 설전이 드러낸 혁신의 현주소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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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는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승차공유는 이렇게 대세가 됐다. 하지만 한국만큼은 예외다. 정부 규제와 이해관계자 반발에 묶여 공유경제의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어서다. 결국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연일 설전을 벌였다. 이 대표가 먼저 공유경제 혁신을 일으켜야 할 정부가 뒷짐 지고 구경만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쏙 빠지고 최 위원장이 나섰다.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했다.

모바일 혁명이 네트워크 경제 가속 #미·중, 이런 흐름 타고 전력 질주 중 #승자독식 구조 … 후발주자 기회 없어 #한국 낡은 규제 정비해 추격 나서야

우리가 승차공유를 놓고 우물 안에서 다투고,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설립으로 갑론을박하는 사이, 세계는 질주하고 있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 기업이 마치 제국처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산업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GAFA 제국’(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BAT 제국’(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얘기다. 이들 플랫폼 기업의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한 우버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상징한다. 창업 10년 만에 플랫폼을 통해 키운 시장가치가 697억 달러(83조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GM)의 시가총액보다 많고, 104년 된 독일 BMW의 시가총액(55조원)을 훨씬 앞선다.

자동차를 한 대도 생산하거나 소유하지 않아도 이런 평가를 받는 우버처럼 플랫폼 서비스가 전 산업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우버와 경쟁하는 리프트는 물론 위워크를 비롯한 수많은 공유경제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다. 이미 플랫폼 비즈니스로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에 오른 기업이 GAFA와 알리바바·텐센트 등 6개에 달한다. 알리바바·텐센트 외에도 아시아에서도 바이두·라쿠텐(일본)·카카오·쿠팡(한국)처럼 10년 전에는 ‘듣보잡’이었던 플랫폼 기업들이 디지털 경제를 이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1년 후인 2040년에는 S&P500 기업 중 순이익의 절반이 플랫폼 기업에서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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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과 다우존스 벤처소스가 공동 발표한 글로벌 유니콘 클럽(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의 상위 10개 중 7개가 플랫폼 기업이다. 아시아에선 36개 중 31개로 플랫폼 기업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를 보면 더 확연해진다. 미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eMarketer)에 따르면 전 세계 소매 부문의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1년 4조8780억 달러(약 5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2021년 54.5%를 차지할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이커머스 거래액도 2015년 54조원에서 2018년에는 100조원으로 배가량 급신장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성장 동력은 스마트폰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36억 명이 하루에 최소 2시간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구글의 일 인당 평균 검색 횟수는 하루 3~4회에 달한다. 현재 페이스북 가입자는 23억 명, 유튜브 가입자는 18억 명이다. 이런 플랫폼은 잠도 들지 않는다. 지구촌 이용자들이 24시간 네트워크로 몰려드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글로벌 차원의 기업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것이 플랫폼의 매력인 네트워크 효과다.

플랫폼 네트워크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4년 메신저 앱 왓츠앱(WhatsApp)을 190억 달러(약 20조 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종업원 55명, 매출액 1020만 달러(110억 원)에 적자 규모는 1억3800만 달러(1500억 원)에 달했다. 이런 적자기업을 마크 저커버그가 천문학적 돈을 들여 인수한 까닭은 왓츠앱의 성장 가능성이었다. 당시 왓츠앱의 이용자 수는 4억5000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15억 명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저커버그는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결합한 승자독식의 거대한 플랫폼 기업을 일구어냈다. 애플과 구글 역시 무수한 소비자와 개발자를 연결해 지금까지 없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미·중 기업은 모든 역량을 플랫폼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전통적 제조업도 빠르게 플랫폼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플랫폼의 세계로 이동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지닌 창업가를 지원하는 생태계가 플랫폼 강국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GAFA는 생각하고(구글), 느끼며(페이스북), 소비하고(아마존), 본능에 따르는(애플) 플랫폼을 완비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하에 규제 없이 사업을 허용하는 정책을 취해 BAT라는 세계적 플랫폼 기업을 만들어냈다. 어디를 가도 대부분의 결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QR코드 체제에서는 미국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AI)·딥러닝을 활용한 플랫폼 영역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제4차 산업혁명의 원활한 진전을 위해서 규제 개선과 데이터 활용을 핵심정책 과제로 선정해 플랫폼 전략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SVF)를 통해 세계 곳곳의 플랫폼 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오고 있다. 도요타와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 등 민간제조업은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며 우버 등 플랫폼 기업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졸 취업률이 98%일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기를 맞이하는 배경이다.

플랫폼의 본질은 초연결 사회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 GAFA와 우버가 세계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능과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가치의 근원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 기술 덕분에 고객가치 창조의 원천이 바뀌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는 이를 유인하는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플랫폼의 모든 참여자가 제약을 받지 않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함께 투자재원 확대 같은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면 경쟁에서 금방 밀려날 수밖에 없다.

플랫폼 비즈니스 ‘웨이고 블루’ 아직도 걸음마

웨이고 블루

웨이고 블루

한국은 이렇다 할 세계적 플랫폼 기업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달에다 뛰어난 인적자원과 기술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가로막혀 혁신의 기회를 창출하지 못해서다. 국내 규제 때문에 역으로 외국으로 옮겨가는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기업에 과감히 투자할 벤처캐피털 규모도 미약하다. 쿠팡·배달의민족 같은 국내 유망 플랫폼 기업도 자본력을 앞세운 외국기업의 투자에 힘입어 겨우 버티고 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비즈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20일 시작된 플랫폼 택시 서비스 ‘웨이고 블루’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버가 보여주는 네트워크(연결) 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극대화하려면 우선 연결된 참여자 수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거래 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게 된다. 웨이고 블루는 차량 대수가 적고 호출비 3000원을 추가 부담한다. 기대만큼 소비자 잉여를 증가시키지 못하는 이유다.

연결만으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결로 가치를 높이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오래 머물러 있게 하는가에 역점을 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사용자가 몰려드는 상호 가치교환이 가능하게 해져 폭발적으로 시장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나아가 오픈소스 방식을 통해 끝없이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콘텐트의 질적 관리가 필요하다. 성공한 플랫폼 기업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무엇보다 기술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미·중처럼 선순환의 플랫폼 생태계가 조성된다.

◆최길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관심 분야는 기업 생존 전략과 중소기업금융이다. 『e-비즈니스의 이해』 『기업의 성공 비결과 생존방정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