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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장애물 넘어 한계를 넘어,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파쿠르'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김가영·신유림·장희우 학생기자.

왼쪽부터 김가영·신유림·장희우 학생기자.

묘기를 부리듯 울타리를 뛰어넘고, 높은 벽을 맨손으로 오르고, 건물에서 점프해 사뿐히 착지한 뒤 달려나갑니다. 영화에 나올 법한 화려하고 멋진 장면인데요.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영상 속 주인공들은 액션배우도 스턴트맨도 아닙니다. 바로 ‘파쿠르(Parkour)’라는 움직임의 예술을 하는 이들이죠. 장소에 상관없이, 아무런 장비나 도구 없이 맨몸으로 즐기는 파쿠르. 편한 운동복과 운동화만 있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밖으로 나가 파쿠르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글=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사진=임익순·송휘성(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가영(용인 신봉초 5)·신유림(경기도 어정중 1)·장희우(경기도 위례푸른초 5) 학생기자, 자료=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9명의 청소년이 시작한 파쿠르
파쿠르는 ‘길’ ‘코스’ ‘여정’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파쿠르(parcours)’에서 유래했습니다. 도시 혹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복해내는 움직임 훈련이에요. 1980년대 프랑스의 ‘에브리’라는 지역에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에브리는 거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였고, 무슬림·힌두교도·흑인·아시아인 등 다양한 종교·인종·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길거리 싸움이나 화재, 기물 파손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범죄도 끊이지 않았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함께 계단 밑으로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춤거렸지만 자신감이 붙자 힘차게 뛸 수 있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함께 계단 밑으로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춤거렸지만 자신감이 붙자 힘차게 뛸 수 있었다.

여기에 사는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친구·이웃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져야 했죠. 생존을 위해 길거리에서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9명의 친구들은 ‘여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여기서 저기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저기까지 맨손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도전들을 계속해서 시도해 나갔죠. 이들은 불의에 맞서고 다른 사람을 돕는 도심 속 영웅을 꿈꾸며 수련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야마카시(Yamakasi)’라는 이름의 팀을 결성했어요. 야마카시는 콩고 링갈라어로 ‘강인한 영혼, 강인한 육체’을 의미하죠. 2001년에는 프랑스 영화 '야마카시'가 개봉하면서 이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지금의 파쿠르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명이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유튜브에도 파쿠르 관련 영상이 많죠. 특히 영국에서는 파쿠르를 교과목으로 지정해 수업시간에 가르치고 있어요. 스포츠잉글랜드(SportEngland)에 따르면 영국에서 주 1회 이상 파쿠르 활동을 하는 인구는 약 10만 명에 달합니다. 또, 덴마크에는 파쿠르 공원이 200여 개 설치돼 있고 미국은 파쿠르 체육관 수가 130여 개에 이른다고 하네요.

최근 파쿠르는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하는 양상도 보이는데요. 지난해 12월, 전 세계 기계체조 단체를 관할하는 국제체조연맹(FIG)은 파쿠르를 8번째 기계체조 종목으로 결정했어요. 올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세계도시경기대회(World Urban Games)도 파쿠르와 함께 프리스타일 롤러스케이트, 3대3 농구, BMX 프리스타일, 프리스타일 플라잉디스크, 브레이크 댄스 등을 정식 종목으로 선정했죠. 하지만 경쟁과 비교를 지양하고 이타주의(행동의 목적을 다른 사람의 행복에 두는 것)를 추구하는 파쿠르가 점수·표준화·경쟁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린 파쿠르

매주 토요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 참가자들이 점프와 장애물 넘기 등을 연습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다.

매주 토요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 참가자들이 점프와 장애물 넘기 등을 연습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운동으로 자리 잡은 파쿠르.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지난 18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한 건물 앞 공터에선 10여 명이 둥글게 서서 몸을 풀고 있었죠. 매주 토요일 열리는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모임이에요. 나이에 상관없이 파쿠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죠. 한국에서는 최초로 국제 공인 파쿠르 지도자 자격을 얻은 김지호 코치(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대표)가 수업을 리드했습니다.

준비운동으로 몸을 충분히 풀어준 뒤 본격적인 동작 연습에 들어갔어요. 공터에 마련된 갖가지 장애물들을 손과 발을 이용해 넘어가는 ‘볼트’ 동작들을 배워보기로 했죠. 먼저 ‘스텝 볼트’ 시범을 보인 김 코치를 따라 참가자들은 장애물의 높이를 점점 높여가며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그 다음 ‘옆돌기 볼트’ ‘사이드 볼트(투핸드 볼트)’ ‘스피드 볼트(원핸드 볼트)’를 차례로 익혀 나갔죠.

이날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에 두 번째로 참가한다는 이지이(아시아퍼시픽 국제외국인학교 7)양은 장애물 바로 앞까지 달려왔지만 겁을 먹는 바람에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다시 동작을 정확하게 연습한 뒤 다시 장애물을 향해 달렸죠. 드디어 뛰어넘기 성공! 이양은 “장애물을 못 넘다가 넘으니 엄청 뿌듯하고 재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 모습.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 모습.

이제는 점프 동작을 연습할 차례. 참가자들은 둥글게 큰 원으로 선 뒤 다 같이 동시에 점프해서 조그만 원을 만드는 연습을 했어요. 그저 재미있는 놀이 같지만, 작은 원을 만들기 위해 원하는 지점에 착지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이어 작은 나무상자 위로 사뿐히 뛰어서 발 앞쪽으로 모서리 부분에 착지하는 연습을 했죠. 또 여러 개의 나무상자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폴짝폴짝 뛰어 마지막 상자에 착지하는 동작을 반복하기도 했어요. 그다음 단계로는 허리까지 오는 높은 장애물 위에서 다음 장애물 위로 펄쩍펄쩍 점프하는 훈련을 했고요.

참가자 중 몸집이 제일 작았던 박서진(서울 신구초 2)양은 아직 키가 작아 언니·오빠들처럼 멀리 점프하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어요. 박양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힘들고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도 재밌었다”고 말했죠. 한편, 파쿠르 경험이 많은 듯 익숙하게 동작을 연마하던 두 친구 강희재(경기도 신흥중 1)·한창우(경기도 생연중 1)군은 “유튜브에서 우연히 김 코치님의 영상을 보고 동네에서 파쿠르 연습을 하곤 했다”고 귀띔했어요.

지난 3월부터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은 다음 달 15일까지 계속됩니다. 이후 김 코치의 유럽 파쿠르 축제 참여로 약 한 달간 쉬었다가 9월부터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요. 매주 15~20명이 참가하는데 이 중 80% 정도는 초·중학생입니다. 파쿠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도 수업을 들을 수 있죠. ‘모험을 즐기되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 책임지며 활동하자.’ 파쿠르의 정신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마무리운동과 함께 이날 수업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파쿠르의 재미에 푹 빠진 참가자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의 파쿠르 맛보기

 신유림 학생기자가 장애물을 뛰어넘는 스텝 볼트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신유림 학생기자가 장애물을 뛰어넘는 스텝 볼트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김가영·신유림·장희우 학생기자가 파쿠르를 배워보기 위해 서울혁신파크 파쿠르놀이터에서 김 코치를 만났습니다. 학교 축구 동아리 선수로 뛰고 있는 가영이, 농구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유림이, 체육 과목을 좋아하는 희우지만, 파쿠르는 처음입니다.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준비운동에 들어갔어요. “손 위에 사과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의 사과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 봅시다.” 김 코치의 말에 세 학생기자들은 열심히 팔을 꺾어가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죠.

김가영 학생기자가 점프 연습을 하는 모습. 철봉 위로 점프해 균형을 잡는다.

김가영 학생기자가 점프 연습을 하는 모습. 철봉 위로 점프해 균형을 잡는다.

이번에는 둘씩 마주 보고 한 사람이 손을 천천히 움직이면 다른 사람은 상대의 손을 요리조리 피하는 놀이를 했어요. 그다음에는 서로 닿을 듯 말 듯 손을 마주한 뒤 한 사람이 손을 움직이는 대로 상대방은 자석에 이끌리듯 따라가는 연습을 했죠. 이어, 손 대신 손과 발로 같은 동작을 연습했고요. 제법 어려운 연습도 했죠. 네발걷기 자세에서 한 손만 땅에서 떨어뜨린 뒤 앞서 했던 규칙대로 동작을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사람은 발을 재빨리 움직여 피하고 다른 사람은 상대방의 발등을 세 번 터치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게임으로 준비운동을 마쳤습니다.

놀이처럼 재밌는 준비운동에 학생기자들의 얼굴은 웃음꽃으로 환해졌죠. 이제 파쿠르의 기초 동작을 배울 준비가 된 것 같네요. 김 코치는 “기술 이름을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지각하면 학교 담을 넘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듯이 누구든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 파쿠르”라고 설명했습니다.

땅바닥이 용암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손을 맞잡아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놀이. 협동심이 중요하다.

땅바닥이 용암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손을 맞잡아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놀이. 협동심이 중요하다.

1.시트턴

장애물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다음 다리를 들어 올려서 넘어갑니다. 왼쪽·오른쪽 방향을 바꿔가며 연습하세요.

2.스텝 볼트

장애물 위에 한 손과 한쪽 발을 짚으면서 넘어갑니다. 발은 앞쪽으로 딛고 무릎은 눕혀지지 않게 세워주세요. 마찬가지로 왼발과 오른발을 바꿔가며 연습합니다.

3.언더바

낮은 철봉을 두 손을 잡은 뒤 밑으로 통과합니다. 1~3번을 연속 동작으로 이어서 연습해 보세요.

4.레일워크

철봉 위에서 걷는 동작입니다. 발이 철봉과 수평이 되게끔 일자로 딛고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마음이 떨리면 몸도 흔들리거든요.

5.점프

작은 나무상자 위로 양발 동시에 점프해서 올라섭니다. 팔을 힘차게 휘두르면 더 멀리 점프할 수 있어요. 제자리 점프를 연습한 뒤에는 도약(점프 지점까지 달려서 추진력을 얻는 것) 후 점프하기, 낮은 철봉 위로 점프한 뒤 균형 잡기도 해보세요. 멀리 뛰는 것보다 안전하게 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무릎·엉덩이·상체의 위치에 따라 균형의 중심이 이동한다는 점을 유의하세요.

6.스윙

철봉에 매달려서 반동을 이용해 이동합니다. 다리를 뒤로 찼다가 앞으로 뻗으면 추진력이 생겨요.


<김지호 코치 미니 인터뷰>  
김지호 코치는 2004년 영화 '야마카시'를 통해 처음으로 파쿠르를 알게 됐다고 해요. 영화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 혼자서 파쿠르를 연습했죠. 이후 본격적인 파쿠르 수련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2013년에는 한국에 처음으로 파쿠르 교육을 들여왔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 코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어요.

(신유림) 파쿠르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나요.
(김지호)저는 원래 학교·학원·집만 오가는 우울한 학생이었어요. 교육열이 높은 동네라 체육시간에조차 서로 경쟁해야 했죠. 그런 삶 속에서 나 자신은 없었어요. 내가 원해서 하는 게 단 하나도 없었죠. 그러다 고1 때 영화 '야마카시'를 보고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밖으로 나가 학교 구령대 앞에 섰지만 무서워서 선뜻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동작을 성공했을 때 심장이 뛰는 걸 느꼈어요.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았죠. 암흑 속 한 줄기 빛 같았어요. 누가 뭐라 해도, 수련이 어려워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에 행복해요. 파쿠르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유림)안전장치 없이 파쿠르를 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지호) 여러분은 태어나서 처음 걸을 때 기계나 보조 장치가 필요했나요? 그렇지 않았죠. 사람이 태어나면 네발걷기에 이어 걷고 뛰고 달리고 구르고 매달리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익혀요.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엘리베이터나 자동차 등 이동수단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움직임을 잃어버렸죠. 파쿠르는 자연적인 움직임을 회복시키는 활동입니다.

김지호(맨 오른쪽) 코치는 ’나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파쿠르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호(맨 오른쪽) 코치는 ’나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파쿠르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김가영)힘들고 위험한 운동인 것 같은데,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김지호)매순간이요. 지금도 파쿠르를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껴요. 흔히 파쿠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사실 위험을 가지고 있어요. 야생에 사는 동물들을 생각해보면 자연은 본래 위험이 가득하죠. 하지만 위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데인저(danger)예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자연의 위험 같은 것이죠. 또 다른 하나는 리스크(risk)예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위험을 뜻하죠. 암벽등반을 할 때 로프를 달아 낙상사고를 예방하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 안전교육을 받는 것이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겁니다. 파쿠르는 위험 감수(risk taking) 활동이에요. ‘위험’은 피할수록 위험하죠.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의 안전 규제는 날이 갈수록 촘촘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내 안전사고는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나의 안전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연습은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죠.

(장희우) 파쿠르를 해선 안 되는 곳이 있나요.
(김지호)공공장소나 사유지에서 파쿠르를 하면 도둑으로 오해를 받거나 욕을 들으면서 내쫓길 수 있어요. 길거리 행인들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고요. 파쿠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고, 도둑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니까요. 저도 예전에 파쿠르 연습을 하려고 높은 벽을 타고 올라간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경찰서 뒷벽이었어요. 경찰에게 잡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느라 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파쿠르는 ‘놀이하는 아이’가 되는 길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죠.

(장희우) 대중들에게는 어떻게 전파되고 있나요.
(김지호)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를 통해 파쿠르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미디어에 비치는 파쿠르는 빌딩 사이를 뛰어넘거나 아주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등 자극적이고 위험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죠. 이는 극히 일부분이에요. 파쿠르는 예술이기도 하고 무술이기도 하고 스포츠이기도 하죠. 또 최근에는 파쿠르를 학원에 가서 돈 주고 배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떤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죠. 어린이·청소년들이 놀이터에서 뛰놀던 기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쉬워요. 파쿠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연대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김가영)파쿠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김지호) 도(道)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길이라는 뜻이죠. 길은 무한하고 자유로워요. 내가 그려나가는 무늬라고 할 수 있죠. 파쿠르의 어원도 길·코스·여정이라는 뜻의 단어거든요.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다’라는 정신이죠.


파쿠르하는 청소년들을 만나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파쿠르를 즐기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자발적인 청소년 파쿠르 모임인 ‘모험 움직임 지대’를 만났는데요. 이들은 주 1회 정기적으로 만나 파쿠르를 배우고 연습합니다. 지난 19일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숭실대학교에 모였어요. 모임 장소는 매번 바뀌는데요.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카페에서 ‘모험 움직임 지대’를 검색해 가입하면 공지사항을 받아볼 수 있죠. 청소년 모임을 표방하지만 나이 제한은 없습니다.

현재 이 모임을 리드하는 이민규(16)군은 김지호 코치의 수업을 들은 뒤 파쿠르의 매력에 빠졌다고 해요. 학교 밖 청소년인 이군은 파쿠르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우선 동호회 형식의 모임부터 시작했죠. “김 코치님의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 중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모임이 커지면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유럽에는 꼭 체대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움직임을 배울 수 있는 학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게 안타까웠죠. 움직임으로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가 생겼으면 해요. 나아가 파쿠르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살면 좋겠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청소년들의 파쿠르 모임 ‘모험 움직임 지대’를 만났다. 왼쪽부터 이민규군, 신유림·김가영·장희우 학생기자, 유재형·한동우·김수환군.

소중 학생기자단이 청소년들의 파쿠르 모임 ‘모험 움직임 지대’를 만났다. 왼쪽부터 이민규군, 신유림·김가영·장희우 학생기자, 유재형·한동우·김수환군.

김수환(경기도 군자중 3)군은 초6 때 유튜브를 통해 파쿠르를 알게 된 후 비 오는 날 빼고는 매일 연습을 했다고 해요. 그러던 중 파쿠르를 하는 모임이 있으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모험 움직임 지대’에 합류하게 됐죠. 김군은 “모임에 나오면서 잘못된 자세를 고칠 수 있었다”면서 “원래 컴퓨터게임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파쿠르가 더 재미있다”고 말했어요. 한동우(경기도 광명중 3)군도 초5 때부터 동네에서 파쿠르를 연습하곤 했는데요. 한군은 “합기도를 배웠던 터라 파쿠르 연습이 조금은 수월했던 것 같다”며 “모임에 나와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니 더 재미있다”고 덧붙였죠.

수원에서부터 파쿠르를 하러 오는 유재형(경기도 영일초 5)군도 유튜브에서 처음 파쿠르를 접했습니다. ‘부모님이 파쿠르 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지’ 묻자 “아빠는 찬성하는 입장이고 모임 장소에도 데려다주시는데 엄마는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운동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씀하신다”고 귀띔했어요.

 벽을 타고 높이 점프하는 시범을 보이는 ‘모험 움직임 지대’ 참가자들.

벽을 타고 높이 점프하는 시범을 보이는 ‘모험 움직임 지대’ 참가자들.

파쿠르를 하면서 다치지는 않을까요. 이군은 “살갗이 까지고 살짝 베이는 정도의 부상은 종종 발생하지만 뼈가 부러지는 정도의 심한 부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어요. “참가자 중에 무리하게 연습을 하다가 인대가 늘어난 경우는 한 번 있었어요. 대부분 부상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무리한 동작을 시도할 때 일어납니다. 사실 파쿠르는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생각보다 위험한 운동은 아니에요. 야구·축구 같은 스포츠보다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적죠. 파쿠르의 철학 중 하나가 ‘지속적인 움직임’이에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죠.”

이군은 파쿠르를 할 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상태를 잘 체크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동작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동작을 하다 보면 다치기 십상이라는 얘기죠. 유군은 “숙련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숙련해야 하고, 숙련하더라도 자신감이 없으면 동작을 완성할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김군은 “신발이 미끄럽지 않은지, 발 앞꿈치가 잘 구부러지는 신발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팁을 전했습니다.

네 발로 걷는 연습도 파쿠르 동작을 익히기 위한 기초 훈련 중 하나다. 등 위에 신발을 올려놓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면서 네발걷기를 한다.

네 발로 걷는 연습도 파쿠르 동작을 익히기 위한 기초 훈련 중 하나다. 등 위에 신발을 올려놓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면서 네발걷기를 한다.

난간 위에서 줄지어 네 발로 걸어 올라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난간 위에서 줄지어 네 발로 걸어 올라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파쿠르를 한 후 변화된 것이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한목소리로 ‘자신감’을 꼽았죠. 운동을 통해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얻게 됐다고 해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나에게 파쿠르란?’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의 또 다른 길이요. 수련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인생에서 같이 가는 친구 같은 거죠. 유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도 해요.”(이민규) “자기표현이요. 동네에서 파쿠르를 하면 사람들이 쳐다볼 때가 많아요. 파쿠르를 아는 사람도 아직 많지 않고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당당하게 파쿠르를 하는 모습은 저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식인 것 같아요.”(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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