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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영욕의 K2전차, 국산 엔진 달고 다시 야전 누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차 양산에 들어가는 K2전차에는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로 이루어진 파워팩이 탑재된다. 사진은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사업장에서 품질점검을 기다리고 있는 K2전차. [사진 현대로템]

2차 양산에 들어가는 K2전차에는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로 이루어진 파워팩이 탑재된다. 사진은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사업장에서 품질점검을 기다리고 있는 K2전차. [사진 현대로템]

"얼마나 어렵게 이어온 사업인데...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지난 21일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만난 박봉신 방산품질관리팀 반장은 K2 흑표전차 생산 재개를 앞둔 소감을 묻자 "K2전차는 다른 차보다 검사할 항목이 더 많아 곧 있으면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K2전차 2차 양산 출고식'을 6일 앞둔 시점이었다. K2전차 생산 중단으로 줄어든 일감이 생산 재개로 다시 늘어난다는 소식에 박 반장은 K2전차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전투중량 56t, 120mm 55구경장 주포에 전차장 대공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수심 4.1m까지 잠수할 수 있는 3.5세대 전차. 현대로템이 체계사업자로 참여하고 두산인프라코어가 개발한 엔진이 얹혀진 K2 흑표 전차의 간략한 제원이다. 박 반장이 속한 현대로템 창원공장의 방산품질관리팀은 생산이 완료된 K2전차가 제 기능을 수행하는지 테스트하는 최종 수문장 역할을 한다.

9초 이내에 시속 32km에 도달하는지, 최고속도인 시속 70km까지 전차의 기동 성능을 끌어올려도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하는지 시험한다. 도하 시험장에선 잠수도하장치의 이상 유무를, 급제동 시험장에선 궤도의 성능을 점검하며 1480여개에 이르는 차체 부품과 1100여개에 달하는 포탑 부품의 이상 유무를 시험한다.

박 반장은 "다시 생산될 K2전차 성능점검을 위해 직원들과 남다른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사업장 직원이 품질점검 대기 중인 K2전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현대로템]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사업장 직원이 품질점검 대기 중인 K2전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현대로템]

27일 현대로템과 방위사업청은 'K2전차 2차 양산 출고식'을 열었다. 인도식에 앞서 방문한 현대로템 방산사업장의 K2전차 생산라인에는 K2전차가 없었다. 생산이 일시정지된 K2전차 대신 K1 전차의 오버홀(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야전을 누빌 새 전차 생산에 여념이 없어야 할 생산라인이 '정비라인'처럼 쓰인 셈이다.

K2전차는 바로 이곳, 5620㎡ 넓이의 라인에서 만들어진다. 첫 번째 현수(바퀴부착) 공정을 지나 여덟 번째 궤도설치 과정까지 일렬로 늘어선 라인을 차례로 지나면 포탑만 빠진 차체가 완성된다. 차체가 첫 번째 현수 생산라인을 지날 때, 건너편에선 포탑 철판에 '차폐라이너' 설치가 이뤄지는 것으로 포탑 생산이 시작된다. 핵무기의 중성자 침투를 막기 위한 부품을 붙이는 작업이다. 약 150m 길이의 양쪽 라인에서 완성된 차체와 포탑은 메이팅(부착) 과정을 거처 56t 전차로 태어난다.

전 세계 최신 전차 전력을 의미하는 3.5세대 전차 중에서도 K2전차의 성능은 독보적이다. RPG-7 등 대전차 화기가 발사한 탄을 자동으로 감지해 유도 범위를 벗어나도록 하는 회피기동 기술이 적용됐다. 현대로템은 능동형 방어체계도 개발을 완료한 상태로 곧 실전에 추가할 예정이다. 능동형 방어체계는 K2전차 외부에서 날아오는 대전차 화기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전차가 스스로 대응탄을 발사해 요격하는 기술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동성능도 전차 선진국의 최신형 전차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 지형에 맞게 개발돼 시속 40km 빠른 속도에서도 31%에 달하는 급격한 경사를 넘을 수 있다. 혹서와 혹한기에서도 전차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K2전차의 무기다. 지난해 가을 중동의 사막 국가에서 한국의 K2전차를 포함해 수출 경쟁을 벌이는 3개국의 전차가 실전에 준하는 전차성능 시험을 치렀는데, 경쟁국의 전차가 기동 중 멈춰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국가는 수출 협상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K2전차가 수출 협상 우위를 점했다는 후문이다.

100% 수작업으로 한 달에 약 5대씩 만들어지는 이런 명품 K2전차는 전 세계 수출 시장에서 가격경쟁력도 우수하다. 120억~150억원으로 추정되는 독일의 레오파드2와 비교해 최대 30% 정도 싼 가격에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전차 전력을 필요로하는 중동국가 등에서 K2전차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이유다.

영욕의 K2전차, 애증의 개발사

* 1995년 - XK2전차 개발 시작
* 2003년 - 파워팩 국산화 결정(엔진 두산, 변속기 S&T)
* 2008년 - 터키 전차 개발사업서 기술 수출 계약을 성공
* 2009년 - 엔진 결함이 발생
* 2010년 - 8월 변속기 결함 발생
* 2011년 - 두산의 파워팩 개발비용 횡령 의혹
* 2012년 8월 - 인천지검, 두산 횡령 의혹 무혐의
* 2012년 9월 - 파워팩 3차 시험 평가에서 엔진 실린더 파손
* 2014년 10월 - 파워팩 작전요구성능(ROC) 완화
* 2015년 11월 - 두산, 7년여 만에 K2전차 파워팩에 들어갈 엔진 개발 성공
* 2018년 2월 - 국산 엔진+외산 변속기를 장착한 파워팩으로 양산 결정
* 2019년 2월 - 독일 변속기 장착된 혼합 파워팩 주행시험 테스트 통과
* 2019년 5월 - 27일 혼합 파워팩 탑재된 K2 2차 양산분 첫 인도

명품 최신예 전차라는 타이틀과 달리 K2전차는 현대로템과 한국군 전차 역사의 애증의 산물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노후화한 전차 전력을 개선할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됐지만 파워팩 국산화 과정이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이다. 파워팩은 크게 엔진과 변속기로 이뤄지는 전차의 심장이다. 엔진 개발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변속기 개발은 S&T중공업이 맡았지만 시험과정에서 거듭된 엔진 결함과 변속기 파손이 발생하며 결국 1차 양산분은 외산 파워팩을 달고 2014~2015년 군에 인도됐다.

2차 양산분 사업에서도 국산화 노력은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7년여 만에 국산 엔진 개발에 성공했으나 변속기 국산화는 끝내 실패했다. 2차 양산분 K2전차에 국산 엔진과 독일산 변속기가 혼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파워팩 없는 껍데기 상태의 K2 57대가 현대로템 창원공장에서 파워팩 완성의 날만을 기다리며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독일 랭크사의 변속기 수입이 오는 11월부터 이뤄질 예정이고,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K2전차 생산라인이 다시 가동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현대로템은 K2전차 2차 양산 정상화를 앞두고 외부의 시선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전차 전력화를 원하는 중동의 오만 등과 수출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력이 제고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2차 양산 정상화 이후 3차 양산 사업이 조기 추진될 경우 2차 양산 사업 중단으로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재고 부담을 안고 있던 119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개선과 1만 4000여명 임직원의 일자리 안정화도 청신호가 켜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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