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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한국법 두고 몸싸움···그 뒤엔 벌금 300만원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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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역 12번 출구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코리아넷]

대림역 12번 출구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코리아넷]

#1. 지난 11일 오전 12시40분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노상에서 39세 중국동포 A씨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식칼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향해 팔 안쪽에 숨겨 뒀던 식칼을 이용해 경찰관의 복부와 좌측 팔 뒤쪽을 찔렀다. H2 비자(방문취업)를 받고 입국해 일용직노동자로 일해 온 A씨는 12일 구속됐다.
#2. 지난 3월 20일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세대주택 4층에서 도박 단속을 나온 경찰을 피하려다 불법체류 신분인 중국인 여성 B씨가 추락 사망했다. 함께 도박을 하던 다른 사람들도 중상을 입었다. 수사 기관은 사망한 B씨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으며, 중상을 입은 다른 사람들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불법을 저지른 중국동포가 경찰을 피하기 위해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히거나 도망가다 중상·사망까지 이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법체류 신분이 들통날까봐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을 피하다 화를 입는 경우도 많다. 단속에 나섰던 한 경찰관은 “중국동포 관련 신고를 받으면 경찰도 조심하게 된다”며 “개개인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벌금 300만원 이상이면 강제출국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체류 중국동포 수는 약 68만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통계청 및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전체 국내 체류인 중 약 33%가 중국동포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체류 외국인 범죄자 검거 건수는 총 3만4932명이며, 그중 국적이 중국인 사람은 1만8626명이다.

지금도 중국동포의 범죄를 두고 “법보다 주먹을 가깝게 여기는 성향 탓”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강제출국되기 때문에 범죄가 들통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예민하다는 분석이다. 이들에게는 집행유예도 의미가 없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도 강제출국된다. 성범죄나 마약,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을 경우에는 벌금 300만원 이하라도 강제출국될 수 있다.

대림동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황모씨는 “물론 죄를 짓고 살면 안 되겠지만, 20년 이상 살아왔던 곳에서 갑자기 쫓겨나 중국으로 가게 되면 먹고 살 게 없어 죽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날벼락이다”라고 말했다. 재판을 받기보다는, 어떻게든 도망가서 잡히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꼭 범죄에 연루되지 않더라도 억울하게 강제출국되는 중국동포들도 있다. 가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그렇다. 최근 한 중국동포 여성은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남편이 수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남편을 유책배우자로 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사건을 대리해준다고 했던 불상의 한 협회는 소송만 제기하고 제대로 된 업무를 하지 않았다. 결국 이혼은 됐지만 중국동포 여성에게 유책성이 인정됐고, 강제 출국됐다.

"국내법 테두리서 문제 해결하려 해"

여전히 많은 중국동포들은 국내법보다 ‘중국동포 커뮤니티법’을 믿는다. 당연히 그 점을 악용한 법률 사기 행각도 있고, 이들을 믿고 있다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중국동포들은 문제가 생겨도 조사를 받거나 국내법의 보호를 받으려 하기보다 수면 아래, 커뮤니티 내에서 처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림동에 법률사무소(로펌)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며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경제력과 범죄 및 억울한 사연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로펌들이 대림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림동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대림에 따르면 5년 전만 해도 1~2개에 달하던 로펌이 현재 약 7~8곳으로 확대됐다. 대림역을 기준으로 약 1km 반경에 위치한 로펌만 따지면 10곳이 넘는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대림에서 안준학 변호사가 조선동포 관련 사건을 상담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대림]

1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대림에서 안준학 변호사가 조선동포 관련 사건을 상담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대림]

이들 로펌은 중국동포 피해자를 구제하고, 피고인이 된 중국동포라 할지라도 억울하게 ‘벌금 300만원’ 선을 넘지 않도록 법률 대리 업무를 집중한다. 선거법 전문 변호사가 선출직 공무원을 대리하며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변론을 펼치는 것과 같은 목적이다. 강제출국되더라도 '인도적 사유'가 있는 피고인의 경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음주운전이 적발돼 수십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한국에 부인과 미성년 자녀들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인도적 사유'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내에 부양가족이 남아있을 경우 중범죄가 아닌 이상 입국금지조치가 해제될 수도 있다.

로펌 문을 두드리는 중국동포 수도 점차 느는 추세다. 안준학(대림) 변호사는 “한 달에 평균 약 8~10건의 외국인 사건이 들어온다”며 “형사사건은 주로 보이스피싱과 폭행, 마약 연루 사건들이고 피해자보다는 피고인 자격의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혼 등 가사 사건, 출입국 업무 관련한 사건들이 접수된다. 대림의 방경현 국장(행정사)은 “중국동포 커뮤니티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법 자체를 불신하는 인식도 많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고, 사건이 생기면 로펌에 찾아와 상담하는 중국동포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로펌들도 중국동포 피고인을 대리하는 것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편견'을 인지하고 있다. 안 변호사는 “이들도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고, 억울하게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중국동포들도 한국법을 준수하고, 한국법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기 시작하면 편견이나 혐오 양상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방 행정사는 "최근 '대림동 여경'으로 논란이 된 피의자들도 중국동포인데, 공권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절대 안 되며 엄벌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을 따르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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