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밀착마크]오신환 "민주, 野 손 내밀기 주저···뭣이 중한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드르륵, 드르륵’
인터뷰 중에도 수차례 걸려 오는 진동 모드의 전화벨 소리에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며 전화기를 들춰봤다. 23일 오전 8시 이날의 첫 일정인 원내대책회의의 사전회의를 하러 갈 때도 몇 발짝 지날 때마다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멈춰 서곤 했다.

오 원내대표는 한때 배우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1기 출신으로 대학로 유명 극단인 ‘연우무대’에서 활동하면서 배우로선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예종 동기 장동건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동안 허름한 신림동 쪽방에서 기약 없는 캐스팅을 기다리는 단역 배우로 30대 중반까지 보냈다.
그랬던 그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극한 대립을 풀어낼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면서 여의도에서 가장 ‘핫한’ 인사가 됐다.

“그때는 한예종에만 들어가면 세상을 다 얻은 줄 알았더니, 지금 정치판에 와서 이게 무슨 일인지…”
단역배우 시절 에피소드를 말하던 그는 다시 울리기 시작한 전화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국회 정상화는 물론 바른미래당의 내분 해결까지…. 정치인생에서 가장 비중 있는 역(役)을 맡게 된 오 원내대표를 23일 밀착마크했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렸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손학규 대표를 향해 "같은 당 동지들을 수구보수로 내몰며 패권주의라고 비난한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당의 큰 어른으로서 용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왼쪽)과 하태경 최고위원(왼쪽 두 번째)이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렸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손학규 대표를 향해 "같은 당 동지들을 수구보수로 내몰며 패권주의라고 비난한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당의 큰 어른으로서 용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왼쪽)과 하태경 최고위원(왼쪽 두 번째)이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배우 시절의 오신환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어서 집안 몰래 휴학을 했다. 오디션을 보고 들어간 곳이 극단 ‘연우무대’다. 그곳에서 단역도 하고, 조명 오퍼레이터도 하면서 만난 사람이 강호 형(배우 송강호)이다. 당시 부산에서 온 송강호는 지낼 곳이 없어 신림동에 있는 내 방에서 3개월 동안 먹고 자고를 같이하기도 했다.
배우에서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 시절, 농활(농촌 봉사활동)에 가면 우루과이라운드와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내용을 연극으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선보이곤 했다. 지하철에서 게릴라 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와 사람을 알게 됐다. 막연히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으면,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간 김성식 의원을 대신해 한나라당 관악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던 분으로부터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정치 입문 권유를 받았다. 2006년 배우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지방선거에 출마해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구성상 그의 결정에 따라 4당이 합의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의 운명이 달라지게 되면서 여야 모두 그의 입을 주목했다. 하지만 4월 25일 그가 4당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김관영 전 원내대표는 그를 강제로 ‘교체 아웃’시켰다. 그 후폭풍은 결국 김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이어졌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전 원내대표(오른쪽)와 오신환 전 사무총장이 3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추진 관련 긴급 의원총회가 끝난 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김관영 전 원내대표(오른쪽)와 오신환 전 사무총장이 3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추진 관련 긴급 의원총회가 끝난 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패스트트랙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지 않았다면 사보임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정치는 할 수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된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나의 기본 소신인데, 만약 김 전 원내대표가 합의해 온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안에 당 의원 3분의 2가 찬성한다면, 소신과 다르더라도 당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김 전 원내대표도 사보임은 하지 않겠다고 해서 공식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오히려 ‘사보임을 해달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사보임한 것은 정말 유감이다. 사보임 된 이후 국민들은 나를 공수처도 반대, 검찰 개혁도 반대, 선거제도 개편에도 반대하는 반개혁 세력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검찰 개혁을 주장했던 장본인이다.
당시 선거법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지정도 반대했는데, 이제 원내대표로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실 우리 당이 처음 주장했던 안보다 대표성과 비례성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명분상으로도 많이 퇴색된 안이다. 원내대표로서 국회에서 선거법에 대한 협상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따른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채, 한국당이 장외로 나가자 국회는 혼란 속에 빠져 있다. ‘패스트트랙 사과와 철회’를 요구하는 한국당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주당 사이, 바른미래당은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됐다. 감정의 골까지 깊어진 양당의 대립을 두고 오 원내대표는 “정말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오 원내대표는 20일엔 3당 원내대표의 ‘맥주회동’을 이끌어내면서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트는데 일단 성공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국회 정상화 방안 논의를 위한 '호프 타임' 회동에서 건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신환 바른미래당,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국회 정상화 방안 논의를 위한 '호프 타임' 회동에서 건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중재자지만 야당 입장에서 여권에 아쉬운 게 있다면?
청와대와 민주당이 지금 국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을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는 패스트트랙 강행에 이어 한국당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다. 한국당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텐데, 정부·여당에서 이렇게 공격하면 한국당이 국회로 들어올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국회 정상화와 지지세력 결속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또 장외 투쟁 중에 말실수가 있거나, 극우화된 모습을 노출하면 결속력은 강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확장되지는 않는다.
민주당과 한국당 중재는 어떻게 할 건지?
‘뭣이 중헌디.’ 국회 정상화가 시급한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감 표명’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한국당에게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당에도 국회로 들어오기를 계속 촉구하겠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 국회에 돌아와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국회 밖에서 뭐 하는지 누가 알까? 한국당 지지지만 알아준다.
앞으로 양당 사이에서 바른미래당의 역할은?
거대 양당을 단순히 가운데에서 모으려고 하기보다는,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바른미래당이 되겠다. 두 당 모두 바른미래당의 제안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결국 바른미래당의 안이 모두의 방향이 되도록 끌어내는 식이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최고위원의 요청으로 24일 국회에서 임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손학규 대표(왼쪽)와 오신환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바른미래당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최고위원의 요청으로 24일 국회에서 임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손학규 대표(왼쪽)와 오신환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바른미래당은 최근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공개석상에서도 연일 고성과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 원내대표는 손학규 대표의 퇴진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사퇴 압박이 더 강력해졌고, 분위기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22일엔 하태경 최고위원이 손 대표를 면전에 두고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손 대표는 퇴진을 거부하고 하고 있는데?
손 대표는 오랜 정치 경험이 있다. 따라서 지금 당의 상황을 매우 무겁게 느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손 대표를 물리력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 싸움이 됐든 극적으로 타협하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김관영 의원(전 원내대표)이 사퇴 결단을 내렸듯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공개석상에서 손 대표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이유는?
손 대표가 단독으로 당을 운영하려는 모습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다섯 명의 최고위원(오신환·김수민·하태경·이준석·권은희)이 손 대표의 뜻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 손 대표 혼자 고립된 상황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주승용·문병호)이야 손 대표의 코드에 맞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손 대표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 이를 감정적인 충돌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3차 원내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23일 "쟁점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유한국당만 불리하다"며 한국당의 국회 등원을 촉구했다.[뉴스1]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3차 원내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23일 "쟁점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유한국당만 불리하다"며 한국당의 국회 등원을 촉구했다.[뉴스1]

공개회의에서 손 대표 면전에 쏟아졌던 최고위원들의 공격적 발언들은 같은 당의 정치 대선배에게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과한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일각에선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과의 ‘보수 연대’를 공격한다. 정말 계획이 없나?
바른미래당은 이미 화합ㆍ자강ㆍ개혁으로 결의해 국민의 심판을 받기로 했다. 그 기저에는 약간의 내려놓는 마음들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인으로서 가진 가치나 비전을 훌렁 버릴 의원은 바른미래당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 밖에서는 자꾸 보수 통합이니, 제3지대에서의 민주평화당과의 연대니 하며 당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그러니 당이 내홍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