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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부모 안타까운 마음에...28년째 실종 아동 찾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이 서울 청량리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실종아동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욱 기자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이 서울 청량리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실종아동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욱 기자

1991년 6월 ‘청량리 털보 각설이’는 어김없이 품바 공연에 열중했다. 이날 판은 인천 중구 월미도에서 벌어졌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면 관중의 손에는 가요메들리 테이프가 들렸다. 공연을 마치고 망중한에 빠진 각설이의 눈에 저만치서 실종 아동 전단을 나눠주던 부모가 박혔다. 이미 심신이 여윌 때로 여위고 파리해진 모습이었다…. 각설이의 운명이 바뀌는 장면이다.

각설이는 (사)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나주봉(64·사진) 회장 이야기다. 그는 28년째 실종사건 해결에 인생을 걸고 있다. 몇해 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한 적도 있었지만, 그의 수첩엔 실종자 정보들로 빼곡하다. 그동안 650여명 이상의 실종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때론 안타까운 소식도 보호자보다 먼저 접할 때도 있었다. 25일 세계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지난 23일 오후 서울 청량리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 회장을 만났다.

1990년대 청량리 품바 각설이로 활동하던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 관중들에게 실종아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사진 나주봉 회장]

1990년대 청량리 품바 각설이로 활동하던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 관중들에게 실종아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사진 나주봉 회장]

월미도 이야기 좀 자세히 해달라.  
“1991년 월미도서 전단을 나눠주던 이들을 유심히 봤다. 그해 석 달 전 대구 와룡산에서 실종된 ‘개구리 소년’ 부모가 아닌가. 당시 대구 다섯 아이 실종사건으로 떠들썩할 때였다. 그런데 잠시 뒤 전단을 건네받은 한 사람이 자신의 구두 밑(창)에 붙은 껌을 전단으로 떼고는 구겨 버리더라.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처참히 구겨버린 마음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나 역시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윈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 개구리 소년 부모의 슬픈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난 전국을 다닐 때다. 볼거리도 많지 않은 시절이라 품바 공연장에는 늘 사람들이 몰렸다. 공연 중간중간 ‘개구리 소년을 찾을 수 있도록 관심 갖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청량리 털보 각설이는 자신의 1t짜리 트럭에 ‘개구리 소년을 꼭 찾아줍시다’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전국을 누볐다고 한다. 때론 노상에서 실종자 가족에게 줄 지원금을 마련하려 군밤 장사도 했다. 소문이 나자 “우리 아이도 찾아달라”는 간곡한 청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유괴범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9만여개 복사해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이 서울 청량리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과거활동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사)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이 서울 청량리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과거활동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실종자 가족 찾기에 매달린 지 28년째다. 
“2001년 전국의 실종 아동 부모 280여명과 함께 청량리역 광장에 모여 실종 아동법 제정 등을 촉구한 적이 있었다. 정치권의 관심이 대단했다. 이후 2002년 대선 후보 선거공보물 뒷면에 실종 아동의 사진·이름·특징 등이 담겼다. 1998년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실종된 지적장애 아동 이모(당시 17세·공보물에는 4세로 오기)군 등을 그때 찾을 수 있었다. 장애인 보호 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도 이뤄졌다. 실종 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남다른 아픔도 있었을 텐데.
“실종 아동을 변사자 신원 수배 전단에서 봐야 할 때다. 2003년 언어장애가 있던 김모(당시 16세)군이 서울에서 실종됐는데,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평택에서 열차에 치여 숨졌다. 김군의 신원을 확인했을 때 가슴이 무척 아팠다. 또 치매를 앓던 실종 할머님이 자신의 고향에서 2년 뒤 백골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애타게 찾아 헤맸는데….”
지문 사전등록을 한 아동의 경우 실종에서 발견까지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진 사전등록앱 화면 캡처]

지문 사전등록을 한 아동의 경우 실종에서 발견까지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진 사전등록앱 화면 캡처]

화제를 바꿔, 지문 사전등록제 도입을 강조해왔다.
“2009년 9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취임 후 전미찾모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위원장에게 사전등록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만 3세 정도면 지문이 형성된다. 주민등록이 발급되지 않는 아동의 경우 지문을 미리 전산에 입력해놓을 수 있다면, 실종사건을 보다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꾸준히 설득해 결국 2012년부터 시행 중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전등록의 효과는 상당하다. 8세 미만 아동의 경우 인지력이 떨어지다 보니 실종사건이 일어나면 부모를 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평균 81.7시간가량 걸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사전등록을 마친 실종 아동의 경우 평균 46분에 불과했다.

[자료 경찰청]

[자료 경찰청]

실종 아동법을 실종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고령화 사회로 바뀌면서 성인실종 사건 또한 급증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관련법이 없다 보니 대부분 단순 가출로 처리되기 일쑤다. 경찰 수사가 미적대는 사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실종 사각지대다. 법 개정을 통해 연령제한을 삭제해야 한다. 또 경찰청과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는 실종 아동 관련 기관도 통폐합해 운용하면 보다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상 실종수사에 대한 전담인력이 없다 보니 페이퍼(보고서) 작성만 하다 끝나지 않냐.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활동팀을 만들어야 한다.”

실종 아동의 날은 1979년 5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사라진 에단 파츠(당시 6세)가 유괴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1983년에 만들어졌다.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유럽 등 각국의 동참이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실종 아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자는 취지에서다. 현재 20년 이상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종 아동은 모두 449명(4월 말 기준)에 이른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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