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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화웨이 ‘약한 고리’ 정조준…스마트폰 판매 반토막 예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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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호 04면

미·중 통신전쟁 

미국이 ‘중국제조2025’의 정보기술(IT) 분야 핵심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이라는 화웨이의 양대 제품에 족쇄를 채운 것이다. 한국 등에서 부품을 들여다 조립·가공한 뒤 재수출하는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질 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약한 고리’를 정조준한 셈이다.

트럼프, 화웨이 글로벌 공급망 봉쇄 #영 ARM, 일 파나소닉도 거래 중단 #시진핑,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 검토 #1조1200억달러 미 국채 매각도 거론 #금융시장 불안 등 자충수 가능성 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거래제한기업으로 지정하면서 구글·퀄컴·인텔·ARM 등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잇따라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화웨이가 지난해 미국내 70여개 업체로부터 260억달러(31조원)어치의 부품을 사갔다고 집계했다. 영국 ARM과 미국 퀄컴·구글의 이탈은 특히 화웨이에 뼈아픈 부분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구글이 화웨이에 대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G메일·구글지도·유튜브·플레이스토어 등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제재가 계속된다면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 2억580만대에서 올해 1억5600만대, 내년 1억1960만대로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웨이, 연 매출 120조원 글로벌 기업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로이터는 이날 “ARM도 화웨이와의 모든 거래를 중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프로세서는 물론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기린 프로세서 역시 영국 ARM의 칩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ARM 라이센스가 없으면 프로세서·통신장비·서버 등을 개발하기 어렵다. 독일 인피니온과 일본 파나소닉도 미국에서 만드는 일부 제품의 거래를 중단했다. 통신업계도 ‘탈화웨이’ 대열에 합류했다. 일본 NTT도코모, 소프트뱅크와 대만 칭화텔레콤, 영국 보다폰은 화웨이 신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통신장비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가 통신장비를 이용해 기밀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는 이유다.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핵심 동맹국인 ‘파이브 아이즈(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가운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를 수용했다. 일본과 대만 역시 동참했다. 영국은 이용자 정보 등 핵심 정보를 담당하는 코어네트워크를 제외한 기지국 장비에 화웨이 제품 사용을 허용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의 요구에 소극적이지만 미·중 갈등이 길어질 경우 압박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화웨이는 인민해방군 출신인 런정페이(任正非·74) 회장이 1987년 설립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화웨이 제품을 사는 것이 중국을 위하는 길”이라는 애국 마케팅을 펼쳤다. 화웨이라는 회사 이름이 ‘중국(華)을 위한다(爲)’는 뜻으로 알려진 이유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화웨이 측은 ‘중국의 가능성’ 또는 ‘뛰어난 성취’를 의미한다고 말을 바꿨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5일 베이징 연구소를 방문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5G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5일 베이징 연구소를 방문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5G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연 매출 12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화웨이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화웨이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런 회장 지분 1% 남짓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원들이 갖고 있다. 퇴사할 경우 주식을 팔 수 없고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 이사진을 누가 어떻게 뽑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미국이 주장하는 이유다.

중국도 대응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일 대미 무역협상의 총책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江西)성의 희토류 생산업체를 시찰했다. 희토류를 협상 카드로 삼을 수 있다는 압박이다. 또 지난 3월 말 현재 1조12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 보유분을 내다파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희토류는 미국이 셰일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고,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은 위안화 강세와 외환보유액 축소에 따른 금융불안 등으로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여론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CNN 등에서는 농산물 수입제한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대두·돼지고기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규모는 연 200억 달러 안팎으로 크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인 중서부 농업지대의 민심을 흔들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실적 악화에 따른 제재 완화도 기대한다. 반도체만 해도 중국의 수입물량 중 미국산이 절반 이상이다. 실제로 관세폭탄이 오갈 때마다 애플과 퀄컴 등의 주가가 급락했다. 우수근 중국 산둥대 객좌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상처가 심하겠지만 중국은 자신이 최대의 피해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 1000억달러 대중 IT 수출 위기

미·중 통신전쟁은 단기적으로 한국에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미국은 화웨이의 동남아 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삼성 등에 5G 장비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지난해 통신장비 시장에서 점유율이 5%였던 삼성전자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유럽과 남미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5G 및 반도체 시장에서는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제재가 확대되면 한국도 유탄을 피해갈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의 후속조치에서 어디까지 거래중단 대상으로 올릴지,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까지 도입할지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닌 국가의 기업들이 중국과 거래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행되면 중국에는 재앙이다. 당장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삼성전기·LG이노텍의 전자 부품, 삼성·LG디스플레이의 액정(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등을 중국에 팔 수 없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화웨이에 수출한 규모는 51억달러(6조원) 정도다. 반면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액은 1121억달러로 전체 대중 수출액(1421억달러)의 80%에 달한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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