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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징용문제, 정당 추천 현인모임으로 풀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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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호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대법원이 일본기업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지 6개월이 지났다. 당시 정부는 판결을 면밀히 검토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아직까지 대응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종래 정부 입장은 한일 간의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와 다른 판결이 나오고 여론도 이를 지지하니 정부의 대처가 어려울 것이다.

정부, 여론의식 신중모드 #상황은 더 꼬여 가는 중 #정당 추천 민간 모임에 #해법 건의를 의뢰하여 #부담 덜고 중지를 모아야 #6월 G20 전에 조치 필요

이러는 동안 판결의 후속절차는 속속 진행되고 있다. 관련된 일본기업의 국내자산이 압류되었다. 자산의 매각절차도 시작됐다. 일본은 한국의 입장을 채근하면서, 자산매각이 이루어지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일본이 대항조치를 취하고, 우리 여론이 악화되면 한일관계는 악순환에 휘말릴 수 있다. 지금도 정부가 곤란한 처지에 있는데 일이 더 꼬여 들어가면 어찌되겠는가. 그런 상황은 국익은 물론 정부에게도 하등 좋을 것이 없다. 한일 간에 보복조치가 이어지면 타격이 우리에게 더 크다는 점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니 이대로 두는 것은 정책옵션이 될 수 없다.

상황타개에는 두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로 이 사안을 다룰 중심 주체가 잘 기능해야하고 둘째로 좋은 해법이 나와야 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해법이 있으면 중심 주체가 힘을 얻을 것이고, 해법이 여의치 않으면 중심 주체가 동력을 얻기 어렵다. 지금 중심 주체는 정부 안에 있다. 그러나 딱히 마땅한 해법이 없다보니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우리 사회 전반의 지혜를 모아 타개책을 모색하는 접근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각 정당이 추천하는 민간 현인모임을 구성하여 해법을 건의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즉, 먼저 정부가 각 정당에게 강제징용 문제 대처를 위한 현인모임 구성에 협조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협조요청의 대전제는 정부가 현인모임의 건의를 존중하여 최종방안을 정한다는 것이다.  현인모임은 소규모의 전문성과 통찰력을 겸비한 분들로 구성되는 것이 좋다. 소규모로 해야 책임성이 부각되고 진지한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전문성과 통찰력이 있어야 좋은 해법이 도출 될 것이다. 이를테면 여당이 4~5인, 제1야당 3~4인, 여타 정당이 1~2인을 추천하도록 하는 식이다.

모임은 민간인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운영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각 정당은 논의에 간여하지 않아야 한다. 개인자격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해야 한다. 또 모임은 수개월 한시적으로 가동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기간 중 관련 당사자들의 추가 움직임은 자제가 요망된다. 강제할 수는 없으나 국익을 위하여 모두가 기다려 주어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현인모임이 해법을 건의하면 정부는 이를 존중하는 대응방안을 내놓고, 일본과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 방안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결정의 부담이 분산된다. 강제징용이라는 난제를 다룰 중심 주체를 한시적으로 현인모임에 맡김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더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각 정당에 추천을 의뢰하여 정치적 부담을 좀 더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임의 논의에는 정당이 개입하지 않도록 하여, 각 정당의 정치적 부담에도 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와 각 정당, 현인 모임 구성원 모두가 책임과 역할을 나누어 맡는 의미가 있다. 물론 마지막 결정은 정부의 몫이므로 최종책임은 정부가 진다.

둘째, 이 과정을 통해 징용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중지를 모을 수 있다. 각 정당을 개입시킴으로써 초당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그럼으로써 최종결정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일이 용이해질 수 있다. 셋째, 일단 상황의 추가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수개월의 시간을 벌어 타개책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실현 가능성은 있을 것인가. 우선 정당들의 호응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강제징용 문제를 방치하면 한일관계가 끝없이 악화되리라는 우려는 여야 할 것 없이 공유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당들이 긍정적으로 고려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문제는 정부의 수용태세일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대로 가면 악재가  누적되어 출구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일본의 대응도 갈수록 험해질 것이다. 일본은 오사카 G20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도 꺼리는 분위기이다. 이대로 가면 정부가 한일관계 악화를 방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 때 여론이 정부에 호의적일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 일단 상황악화를 막고, 각 정치 세력과 함께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6월 G20 이전에 우리 쪽에서 문제해결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고, 이를 기초로 일본과 접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더 지체하지 않아야 한다.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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