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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장기전 가면 트럼프·시진핑 누가 웃을까

중앙일보

입력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누가 유리할까.  

전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공세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날카로움을 더한다. 시진핑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이렇게 꼽는다. 우선 시진핑의 강점을 보자.

첫째, 국가 장악력이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 기구에 대한 장악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장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연방준비위원회(FRB)와 민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린다.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FRB가 반대하면 못한다.

이에 비해 중국의 주석은 만능이다. 중국공산당(총서기 시진핑)이 국무원(중앙정부)을 틀어쥐고 있다. 거수기 역할을 하는 전인대, 당의 나팔수 언론, 돈줄 금융 등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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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관리만 봐도 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증시 부양을 위해 구두 개입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시진핑은 공산당 산하 국유기업을 동원해 필요할 경우 주식을 사들여 부양하곤 한다. 무역전쟁으로 국내 경기가 요동 쳐도 이를 관리하는데에는 시 주석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둘째, 선전 선동이다.

중국 인민들의 외세에 대한 반감도 시진핑이 구사할 수 있는 무기다.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 인민들은 국가 정책에 따라오게 되어있다.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침략과 수탈을 당한 인민들의 수치심을 자극해 반미 감정을 분출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변 미디어를 통하면 된다. 애국주의라는 무기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 사례는 당국은 뒷짐 지고 빠져있고 앞에선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중국 상하이 애플매장에서 제품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사진 중앙포토]

중국 상하이 애플매장에서 제품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사진 중앙포토]

지금 애플을 쓰지말자는 중국 여론은 거세다. 중국 당국은 강도를 조절해가며 상황을 관리하는듯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당의 '보이지 않는' 선동은 더 거세어질 것이다. 시진핑은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무역전쟁의 장기화를 염두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20일 장시(江西)성 간저우시 위두현(于都縣)의 중국 홍군 대장정 출발지를 찾았다. 1934년 10월 마오쩌둥·저우언라이 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 홍군이 집결해 국민당 정규군의 포위를 뚫고 탈주를 시작한 곳이다. 이른바 대장정의 출발지다.

이런 역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현장을 미·중 무역 협상 중국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교착을 풀만한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 버티면서 미국 쪽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지구전 채비로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역시 언론 매체가 그 뜻을 시시각각 전해준다.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34년 공산당의 대장정 출발지인 장시성 위두현의 대장정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시 주석은 이곳의 희토류 생산시설인 금리영자과학기술회사를 방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해 거래 중단 조처를 하자 대미 항전 의지를 과시한 행보로 해석됐다.[사진 중앙포토]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34년 공산당의 대장정 출발지인 장시성 위두현의 대장정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시 주석은 이곳의 희토류 생산시설인 금리영자과학기술회사를 방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해 거래 중단 조처를 하자 대미 항전 의지를 과시한 행보로 해석됐다.[사진 중앙포토]

여기까지는 중국이 유리한 점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그 피로감이 고스란히 경제에 누적될 수밖에 없다. 개방된 자유민주 국가인 미국이 감당해야 할 변수가 더 많다. 중국의 승리를 점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구멍이 없을까?

첫번째 아킬레스건은 역시 고용이다.  

사회주의 중국은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대신 고용을 보장한다. 전쟁은 실업을 낳는다. 수출전선에서 뛰고 있는 민영기업들이 관세 폭탄을 맞으면서 집중타를 맞았다. 판로가 막힌 기업은 공장 가동을 줄이게 되고 감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 GDP와 고용에서 민영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0%,80%에 달한다. 민영기업의 수출이 떨어지면 고용 시장도 직격탄을 맞는 이유다.

중국 경제를 덮친 경기하강의 그림자는 IT업계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실업률 통계는 굳건하게 예년과 다르지 않게 발표되고 있지만, 검색엔진 바이두에 잡히는 검색어 ‘감원’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인민 사이에 퍼진 실직에 대한 공포를 검색엔진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실업률이 치솟으면 시진핑이 받는 압박감도 덩달아 오른다.

이 때문에 시진핑보다 트럼프가 오히려 더 장기전을 원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 경제에 내상을 입히겠다는 취지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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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미국 트럼프행정부의 매파들은 미·중간 교착이 장기화될수록 미국 기업의 대중 비즈니스 욕구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게 최종 목표”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가 건실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 교착이 길어져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달러다.

전쟁 장기화의 부메랑은 성장 속도 하락이다. 경제에 불확실성이 여전한데 투자 의욕을 불태울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수출은 부진하고 투자가 제동걸리면 6%대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중속 성장이 위태로워진다.

게다가 2001년 WTO 가입 이후 달려왔던 두 자리수 성장률과 초호황은 이제 중국 경제의 체질상 어렵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집중 견제까지 시작됐기 때문에 중속 성장도 녹록치 않은 형편이다.

경제가 덜컹, 하드랜딩한다면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게 바로 달러다. 수출길이 막히면서 고갈되고 있는 달러에 대한 압박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세계 제1위 외환보유국이다. 3조 달러에 달한다. 매년 무역흑자가 40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서비스 수지를 감안한 경상수지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5년 3000억달러에 달했던 중국의 경상수지는 2018년 500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경상수지가 2020년에는 400억달러, 2021년에는 200억달러대로 감소한 뒤 2022년 들어 60억달러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무역흑자는 4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지만 서비스 수지 적자가 커지면서 정작 손에 쥐는 달러는 많지 않은 구조다.

달러는 어디로 샌 것일까. 중국은행(BOC)이 구멍이었다. 중국은행은 한때 다른 모든 중국의 상업은행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달러 자산을 보유했었다. 그러나 2018년말 달러 부채가 달러 자산보다 약 700억달러를 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일대일로 투자로 나가는 자금이 대부분 달러이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홍콩을 통해 달러화 표시 채권을 팔고 조달한 단기자금을 갚지 못한 민영기업들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상업은행들이 디폴트 위기에 빠진 민영 기업들의 주식 또는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이들의 달러 빚을 대신 갚아주면서 달러 자산 감소 속도가 커졌다는 관측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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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시진핑은 눈싸움을 벌이고 있다. 먼저 고개를 돌리면 진다. 공세를 펼치는 트럼프는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고, 시진핑은 진 것처럼 보이면 안되는 싸움이다.

협상 카드가 많은 트럼프는 실익 계산을 업데이트하며 끝내는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시진핑은 명예로운 퇴각로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버티어야 한다.

전쟁의 형국은 수세에 몰린 시진핑이 그의 장점을 얼마나 살려내고, 약점을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저런 요소를 감안할 때 험악한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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