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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pick]불황에도 4조원 팔린 ‘이것’...로또 명당은 정말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제가 어려워도 잘 팔리는 것이 있다. 바로 '복권(福券)'이다. 매주 토요일 당첨발표를 기다리며 복권을 사는 이들에게 복권 한 장은 한 주를 버티게 해주는 활력소이기도 하다. 정부 입장에서 복권은 '조용한 효자'다.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고 공공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희생 없는 조세'이기 때문이다.

국내 복권(로또·인쇄복권 등) 총 판매액은 지난해 4조3702억원을 기록했다. 2002년 1조원을 돌파한 복권 판매액은 2008년 2조3836억원을 넘기며 꾸준히 증가세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특히 복권의 대부분인 온라인 복권('로또 6/45') 판매액은 지난해 3조9606억원으로 최고치 기록을 세웠다. 통계청 인구 추계(5164만명)로 환산하면 지난해 1인당 7만6800원을 '로또'에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세계 복권시장은 2004년 1780억 달러에서 2010년 2300억 달러, 2017년 2694억 달러(약 322조원)로 각각 성장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복권방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복권방의 모습. [연합뉴스]

복권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정리해봤다. 첫째, 불황일수록 잘 팔린다는 속설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해외에서는 실업률과 복권 구매의 연관성을 연구한 사례가 있다. 인디애나 대학의 존 마이크 셀(John Mikesell) 교수는 지난 1983년~1991년 복권구매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실업률이 4~5% 증가할 때, 분기별 복권매출액이 4.25% 증가한다는 연구결과(1994년)를 내놨다. 실업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복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이 늘었다는 해석이다.

반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복권 판매는 성장률과 같은 경제변수보다 신상품 출시 등 복권 자체 특성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불황이라 잘 팔린다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재부에 따르면 1983년 올림픽복권이 출시된 뒤에는 154%, 1990년 엑스포복권과 체육복권이 나왔을 때는 71.5%, 1993년 기술복권 출시 당시에는 복권 매출이 35.3%로 늘었다. 특히 2002년 12월 로또 복권이 처음 나온 직후인 2003년에는 복권 매출이 무려 332% 급증했다. 2006년에는 급기야 복권 판매액의 95%를 로또가 차지하면서 정기발행 복권의 효시인 '주택복권'발행이 중단됐다.

둘째, 확률이 낮은데도 왜 사람들은 복권을 살까.

미국의 '복권할아버지'가 사들인 복권들 [중앙포토, Selin Bozkaya]

미국의 '복권할아버지'가 사들인 복권들 [중앙포토, Selin Bozkaya]

복권 당첨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통상 벼락 맞을 확률을 428만9651분의 1로 보는데 로또 확률은 이보다 낮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1부터 45까지의 숫자 중에 6개 숫자를 모두 맞혀야 한다. 이를 계산하면 1등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자신이 당첨될 거라 느끼는 주관적 확률은 실제 확률보다 높았다.

로또를 사는 심리를 분석한 경제학자도 있다. 행동경제학의 대부이자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확률 가중함수'이론으로 복권 구매심리를 분석했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인 확률이 객관적 확률의 크기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밝혀냈다. 사람들은 어떤 확률이 작을 때에 오히려 이것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복권 구매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복권이 없으면 복권에 당첨될 수 없고, 복권을 사야 당첨 가능성이 생긴다." 

즉, 당첨만 되면 보상이 크기 때문에 낮은 확률은 이미 안중에 없다. 카너먼 교수는 이 연구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게다가 복권은 경마·경륜·카지노 등 다른 상품보다는 접근성이 좋고 구매비용도 낮다. 그래서 복권 산업이 성행하는 것이다.

한편, 반대의 경향도 있다. 확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사람들은 이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했다. 예컨대 암·뇌졸중·당뇨병 등 사망 확률이 높은 것은 실제보다 낮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설마 나는 그 병에 안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셋째, 1등을 많이 배출한 곳, '로또 명당'은 진짜 있을까.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로또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은 구매자가 몰리면서 로또를 많이 사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는 진짜 명당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상자 안에 제비가 100개가 있고 1개만이 '당첨'된다고 하자. A는 4개, B는 6개, C는 30개, D는 60개의 제비를 뽑을 수 있다면 당첨 확률이 가장 높은 건 당연히 D다. 100개 중에서 60개나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별 제비뽑기의 당첨확률은 변함없이 100분의 1이다.

여기서 A~D는 로또 판매점, 개별 제비의 개수는 로또를 산 사람들이다. 즉, 1등 당첨자가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난 D는 사람이 몰리며 복권 판매량(당첨기회)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별 당첨확률은 100분의 1임을 기억해야 한다. 명당에서 산다고 내가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란 뜻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로또 추첨은 매번 독립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즉, 이번 회차의 번호가 다음 회차의 로또 번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져 10번 연속 6이 나와도 다음에 6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6분의 1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에 '그동안 7이 안 나왔으니 이제 7이 나올 때가 됐다'와 같은 생각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쇄 복권 판매점 수는 2만2841곳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온라인복권(로또) 판매점은 2004년 9845곳에 달하다가 지난해 기준 7211곳으로 줄었다. 24일 기재부는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온라인복권(로또) 판매점을 추가 모집하기로 의결했다. 장애인·국가유공자 등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30조에서 정한 우선계약대상자를 중심(70%)으로 하되,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 지원을 강화·확대하기 위해 차상위계층까지 참여(30%)를 허용하기로 했다.

넷째, 외국인은 당첨금을 못 받는다?

로또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구매할 수 있다. 24일 동행복권에 따르면 외국인이 복권에 당첨되었을 경우, 거주자·비거주자 해당 여부에 따라서 원천징수가 결정된다. 거주자라면 내국인과 같은 세율이 적용된다. 비거주자라면 비거주자의 거주지국과의 조세조약에 의해 결정된다. 당첨금을 받을 때는 외국인 등록증·여권 등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오면 된다.

복권: 국가가 특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되던 데서 유래했다. BC 100년경, 중국의 진나라에서 만리장성 건립 등 국방비를 쓰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됐다. BC 63~AD 14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의 복구 자금 마련을 위해서 복권 판매 및 경품 추첨 행사를 진행했다. '로또(lotto, 행운이란 뜻)'의 유래는 이탈리아다. 530년 플로렌스에서 번호추첨식 복권이 판매된 뒤 고유명사로 사용됐다. 우리나라도 과거 복권 추첨과 비슷한 ‘산통계’를 운영했다. 계원의 이름을 적은 알을 통에 넣고 돌리다가 나오는 알로 당첨을 결정했다.

우리나라 공식 복권의 첫 신호탄은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발행한 올림픽후원권이다.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등 당첨금 100만 원을 내걸고 장당 100원에 140만 장을 발행했다. 이 복권 발행으로 모은 경비 8만 달러로 우리나라 선수단은 이듬해 런던올림픽에 참가했다.

일회성이 아닌 정기 발행된 최초의 복권은 1969년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한 주택복권이다. 첫 발행 당시 1등 당첨금은 300만 원이었는데, 당시 서울의 집 한 채 값이 대략 200만 원이었으니 1등에 당첨된다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983년에는 1억 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 당시 주택복권은 보너스상으로 승용차와 같은 현물을 주기도 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서울 종로구의 한 복권방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복권방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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