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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 통화록 유출 파문…美, 한국 외교관 안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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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주미대사관

워싱턴 주미대사관

"3급 비밀 한미 정상 통화록을 직원 여러 명이 돌려봤다"는 감찰 결과에 주미대사관 통화록 유출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미 동맹외교에 파문이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6월 방한 조율이 급한 데 미국 정부가 한국 외교관과 접촉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방한 조율 급한데 한국 외교관 접촉 기피, #동맹의 상징 24시간 상시 공조 시스템은 무너져" #청와대 합동 감찰 이어 다음주 감사원 정기 감사 #"'친전' 외교전문은 없어, 외교관 열람 일상 업무"

한·미 양측에 정통한 소식통은 23일 중앙일보에 "백악관과 국무부 등 미 정부 주요 카운터파트들이 한국 외교관들과의 통화와 면담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며 "한국 스스로 통화록 유출을 발표하면서 주미대사관은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24시간 상시 공조' 체재가 이번 통화록 유출 사건으로 무너진 셈이다. 동맹외교의 첨병인 주미대사관 외교관이 미국 측 파트너의 신뢰를 잃은 결과다.

북핵 협상 때도 보안을 강조하던 미국 정부로선 동맹국 외교관이 자국 대통령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는 데 신뢰 관계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한미 간 정상적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당장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 및 의제 조율부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도 언론 등에 기밀이 유출된 사례는 많지만 정부가 나서 인정하는 건 드물다. 그건 유출을 인정하면 국제 정보교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한미 두 정상은 7일(현지시간) 35분가량 통화를 했고 이 내용은 조윤제 주미대사에게 공유됐다. 외교부 본부에서 암호화된 외교통신시스템을 통해 3급 비밀 전문으로 보내준 것이다. 해당 전문의 수신자는 주미대사로 지정됐다. 합동 감찰반은 해당 전문(출력 문서)을 열람한 외교관들이 업무 관련성이 있는 열람권자인지 대통령령 보안관리규정 위반 여부를 따졌다고 한다. 유출자인 외교관 K씨(3급)가 미 의회 담당인데 왜 열람대상이 됐느냐 등이다. K씨는 8일 해당 전문을 열람한 뒤 고교 선배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과 두 차례 카카오톡 통화로 이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상 통화를 포함해 비밀 외교전문을 대사관 외교관들이 열람하는 것 자체를 따지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통신시스템에 정통한 소식통은 "본부 발신 전문은 수신자를 공관 책임자인 대사로 지정하는 것이지 친전(親展)의 의미와는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결·위임규정에 따라 업무 관련 외교관들이 전문을 송·수신, 열람하는 것은 일상적 업무"라고 덧붙였다.

주미대사관은 외교부 합동 감찰에 이어 내주부터 2주간 감사원 정기 감사를 받는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보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미대사관 측은 "현재 본부에서 감찰 중인 사항과 관련해 대사관은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히기를 거절했다. 유출자인 K씨는 지난주 감찰이 시작되자 업무에서 배제됐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이와 관련, 직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준비 등 맡은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주미대사관 보안 문제가 부각될수록 미 정부 주요 부처는 물론 조야 각 분야와 접촉이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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