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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나이에…” 은퇴자들의 금기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34)

빙속 여제 이상화가 지난 10일 은퇴를 발표했다. 이상화는 16일 공식 은퇴식을 열고 선수 화려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은 2018년 2월 20일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시상식에서 인사하는 이상화.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빙속 여제 이상화가 지난 10일 은퇴를 발표했다. 이상화는 16일 공식 은퇴식을 열고 선수 화려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은 2018년 2월 20일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시상식에서 인사하는 이상화.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빙상 경기 이상화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16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14년 만이다. 그의 나이 올해 만 30세다. 여느 분야 같으면 한창 일할 나이이지만 운동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다. 언제가 전성기였냐는 물음에 그는 2013~2014년 시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3년 월드컵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2연패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후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그는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다. 그의 전성기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라고 할 수 있다.

손흥민 전성기는 앞으로 3년까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도 전성기에 오른 선수다. 17살 때 청소년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그 이듬해 유럽축구팀에 입단했다. 현재 그가 소속된 토트넘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수많은 축구선수가 꿈꾸는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의 전성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축구선수의 전성기를 분석한 미국 래드포드 대학의 세이프 덴디르 교수는 앞으로 3년까지라고 전망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 축구선수의 전성기를 분석한 미국 래드포드 대학의 세이프 덴디르 교수는 앞으로 3년까지라고 전망한다. [중앙포토]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 축구선수의 전성기를 분석한 미국 래드포드 대학의 세이프 덴디르 교수는 앞으로 3년까지라고 전망한다. [중앙포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운동선수와 달리 학자의 전성기는 나이가 들어야 찾아온다.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된 김형석 교수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이 60부터 75세까지가 전성기였다고 회고한다. 그의 대담기사를 읽은 친구 한 명이 ‘그럼 내가 지금 인생의 전성기를 사는 건가’라며 반문한다.

그건 오해다. 김형석 교수가 얘기한 전성기는 100세까지 장수한 사람의 경우이고, 그것을 우리나라 평균적인 사람의 경우로 따져보면 나이 48세부터 60세까지가 전성기이지 싶다. 그러나 사람마다 성취도가 달라 일률적으로 어느 기간을 전성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전성기가 뒤늦게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미 청동 조각이 2800만 달러에 낙찰됐다. 여류 조각가 작품 중 가장 높은 경매 낙찰가다. 바로 프랑스 출생의 미국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표작이다. 그는 일흔이 될 때까지 대중에게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예술가였다. 그러나 칠순 무렵부터 죽기 직전까지 창작열을 불태우며, 생의 마지막 30년간을 최고의 전성기로 보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그는 일흔이 될 때까지 대중에게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예술가였다. [중앙포토]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그는 일흔이 될 때까지 대중에게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예술가였다. [중앙포토]

그랜마 모제스도 그런 사람이다. 뉴욕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7살의 나이에 결혼한다.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5명의 아이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67세가 되던 해에는 남편까지 여의면서 가족의 생계를 맡게 된다. 모제스는 자수를 놓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어느 날 동생이 그에게 몇 자루의 붓을 선물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모제스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모제스는 미술교육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78세가 되던 해 그를 눈여겨본 동네 사람이 자신의 가게에 그의 그림 몇 점을 전시했다. 우연히 뉴욕에서 온 미술애호가가 그림을 보고 반해 전부 매입했다. 80세에 처음 전시회를 열었는데 언론에 소개되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 후 모제스는 101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16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전성기 두 번 맞은 박항서 감독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년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영입된 그는 베트남 축구팀을 동아시아 국가의 축구 강팀으로 만들어냈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년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영입된 그는 베트남 축구팀을 동아시아 국가의 축구 강팀으로 만들어냈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전성기를 두 번 맞는 사람도 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이 그런 경우다. 그는 프로축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일찍이 코치로 전향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히딩크 감독 밑에서 국가대표 축구팀 수석코치를 맡았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놓았다.

2017년에는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영입됐다. 그 후 베트남 축구팀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축구 강팀으로 거듭난다. 베트남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는다. 그로 인해 베트남 사람의 한국 이미지도 우호적으로 개선됐다. 여러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을 때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일을 한 것이다.

누구나 전성기가 있다. 은퇴하면 대부분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내키지 않은 일을 했다면 은퇴 이후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다. 어렵게 찾아온 이 기회를 “내가 이 나이에…”하며 그냥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펼쳐보자.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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