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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대통령의 파격 "나 대신 자녀사진 걸고 결정할 때 보라"

중앙일보

입력

행사장에서 참가자의 셀피 촬영에 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가운데) [EPA=연합뉴스]

행사장에서 참가자의 셀피 촬영에 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가운데) [EPA=연합뉴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민과 거리를 좁히는 파격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상 아니다" #"국민 웃겨왔는데, 5년간 안 울게 뭐든 할 것" #노타이에 셔츠 입고 정치권 향해 비속어도 #TV업계 동료들 요직에…정치 실험에 이목 #

 취임식장까지 걸어가더니 방송업계에서 함께 일하던 이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행사장에 가서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방송 카메라가 녹화하는 중에 비속어까지 써가며 자신의 주장을 폈다. 내각과 의원들에게 대통령 사진 대신 자녀의 사진을 걸어놓고 결정을 할 때면 그들의 눈을 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 참석하면서 자택에서 의회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도중에 환영하는 시민의 휴대전화를 직접 들고 셀피를 찍어주기도 했다.

취임식 날 걸어서 이동하며 지지자들과 어울리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EPA=연합뉴스]

취임식 날 걸어서 이동하며 지지자들과 어울리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EPA=연합뉴스]

 취임사에서 그는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2014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을 멈추는 일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의지를 강조하려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 썼다. 그는 이날 의회 해산도 전격 발표했다. 부패 의혹에 휘청이던 의회의 문을 닫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고 선언하자 외부에서 모니터로 연설을 보던 시민들 사이에 환호가 터졌다.

 젤렌스키는 2015년부터 방영된 TV 드라마에서 대통령역을 맡은 코미디언 출신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인들과 반대 이미지를 선보이다 실제 대통령이 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는 취임사에서 “일생동안 국민을 웃게 하려고 모든 것을 했는데, 단지 직업이 아니라 내 임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임기 5년 동안 국민이 울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젤렌스키는 또 의원과 내각을 향해 “대통령은 상징도 아니고 우상도 아니니 내 사진이나 초상화를 걸어놓을 필요가 없다"며 “그 자리에 자녀의 사진을 놓은 뒤 모든 결정을 하기 전에 그들의 눈을 보라"고 주문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드라마에서 대통령역을 맡다 실제 대통령에 오른 젤렌스키의 취임식 모습 [EPA=연합뉴스]

코미디언 출신으로 드라마에서 대통령역을 맡다 실제 대통령에 오른 젤렌스키의 취임식 모습 [EPA=연합뉴스]

 23일 정보통신 전시회와 포럼이 열린 행사장을 찾은 젤렌스키는 양복을 입지 않았다. 넥타이도 매지 않고 팔을 걷어붙였다. 연단에 오른 그는 “여러분들이 매일 굉장한 것을 창조해내지만, 관료와 정치인은 절대 이런 것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협소한 정치권에 혁신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보자"고 말하면서는 흔히 쓰는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의회 해산 등에 대해 정치권에서 반발이 나오는 가운데 취재 기자들이 관련 질문을 던지자 젤렌스키는 “정치로부터 잠시 휴식할 시간을 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BBC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정부 구성을 발표하면서 TV 업계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들에게 몇몇 직책을 맡겼다. 대통령실 부실장을 맡은 세르히 트로피모프는 젤렌스키가 속했던 스튜디오의 프로듀서 출신이다. 대본 작가와 스튜디오 공동 설립자 등도 정부에 자리를 잡거나 보좌관으로 기용됐다.

노타이에 셔츠 소매를 걷고 연단에 선 젤렌스키 대통령. 그는 비속어도 거리낌 없이 썼다. [EPA=연합뉴스]

노타이에 셔츠 소매를 걷고 연단에 선 젤렌스키 대통령. 그는 비속어도 거리낌 없이 썼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보안서비스 기관의 2인자 자리에도 TV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그의 신당 창당을 주도한 오랜 친구를 앉혔다. 방송업계 종사자 외에 우크라이나 부호를 위해 일한 적이 있고 젤렌스키의 선거운동에서 역할을 한 변호사 안드리 보단이 요직을 맡았다. 하지만 보단은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시절 관직을 맡아 향후 정부 내 직위를 담당하지 못하게 하는 법에 저촉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BBC는 전했다.

 드라마에서 해본 정치가 전부인 젤렌스키는 실제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까. 유럽에서 기성 정당에 대한 지지가 하락 중이어서 파격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유독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티백 [EPA=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티백 [EPA=연합뉴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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