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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반발 크면 혁신 스톱…공허한 ‘혁신적 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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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19’ 개막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금융혁신을 향한 경주에서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를 이끌고 함께 걸을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뉴시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19’ 개막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금융혁신을 향한 경주에서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를 이끌고 함께 걸을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뉴시스]

“언사가 이기적이고 무례하다.”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

정부, 혁신·포용 균형 말하지만 #무게중심은 사실상 포용에 둬 #모든 혁신은 낙오·소외 불가피 #구호·설전보다 생산적 토론을

22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설전을 벌였다. 장관급 관료와 벤처업계 대표 기업인의 맞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싸움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금융위원장이 나섰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타다’를 둘러싼 택시업계 갈등의 담당 부처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위는 이 정부에서 가장 ‘혁신’의 선두에 서 있던 부처였다. 핀테크로 불리는 ‘혁신금융’을 앞세워 디지털 혁신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그런 금융위의 수장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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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그 답은 최종구 위원장이 23일 ‘코리아 핀테크 위크’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일부 찾을 수 있었다.

“정부는 혁신과 포용의 균형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사회 발전은 혁신에서 시작되지만 사회 구성원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비로소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귀결됩니다.”

그는 ‘혁신과 포용의 균형’을 이야기했지만 방점은 분명 포용에 뒀다. 기술혁신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을 포용하고 가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혁신이냐, 포용이냐’라는 논쟁적 화두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입장이 포용 쪽에 치우쳐 있다고 좌표를 찍어준 셈이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신년사에서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힌 ‘혁신적 포용국가’의 개념은 좀 더 구체화됐다. 애초 이 용어는 혁신성장과 포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정도로 이해됐다. 지금 보니 결국 정부의 목적은 포용에 있고 혁신은 그 수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택시업계의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타다 서비스는 정부 입장에선 썩 ‘좋은 혁신’은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는 타다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기술혁신이 사회적 충격과 소외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포용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어떤 공유경제도, 어떤 핀테크도 환영받기 어렵다. 그걸 정부도 모를 리 없다. 그럼 과연 혁신으로 낙오되는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해 왔나.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실제로는 혁신성장 깃발을 들고 뛰다가 이제 와서 ‘잠깐 스톱’을 외친 수준 아닌가. 최종구 위원장과 이재웅 대표의 설전이 아쉬운 점도 그 부분이다. 둘 다 ‘혁신으로 피해 보는 이들을 보듬어야 한다’면서 한쪽에선 정부 책임이라고, 다른 한쪽에선 혁신기업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날선 말싸움만 있지 어떻게 힘을 합쳐 잘해 볼까에 대한 고민은 찾을 수 없다.

최종구 위원장은 23일 인터뷰에서 혁신과 포용의 균형을 얘기하며 토머스 프리드먼의 『늦어서 고마워』를 인용했다. 그 책의 결론은 ‘혁신의 시대’ 낙오자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모두 다 함께 노력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정부·기업·지역사회·정치권·근로자까지, 그야말로 전 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낭만적인 구호도, 거친 설전도 공허하다.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과 협의, 그걸 보고 싶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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