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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추모객 노란물결…“그가 꿈꾸던 세상 갈길 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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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봉하마을에 노란 물결이 일렁였다. 도로 주변에는 노란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렸고, 거기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와 같은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시민들 대부분은 노란색 선캡을 썼다. 많은 이가 가슴에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색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노란 국화가 세워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은 그 노란 빛을 받으며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엄수됐다.

문희상·이낙연·이해찬·정동영 등 #범여권 당·정·청 인사들 총집결 #문 대통령 추도사 이 총리가 대독 #“노 전 대통령, 외로운 산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①, 권양숙 여사②, 이해찬 민주당 대표④, 노건호씨④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①, 권양숙 여사②, 이해찬 민주당 대표④, 노건호씨④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5면 추도식

5면 추도식

추도식의 주제는 ‘새로운 노무현’이었다. 애도와 추모를 넘어 개개인이 곧 ‘새로운 노무현’으로서 그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자는 의미를 담았다는 게 노무현재단의 설명이다. 이날 추도식엔 권양숙 여사 등 유족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정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 추도식에서 “퇴임 후에 오겠다”고 한 약속에 따라 참석하지 않았지만, 부인 김정숙 여사가 권 여사의 옆을 지켰다. 정부 측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모친상 때문에, 김경수 경남지사는 항소심 재판 일정으로 불참했다.

추모객 몰려 봉하마을 입구부터 정체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마친 뒤 울먹거리며 단상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마친 뒤 울먹거리며 단상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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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전 대통령은 사회자인 유정아 전 KBS 아나운서의 환영 인사와 함께 참석자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부시 전 대통령에 이어 단상에 오른 문희상 국회의장은 “완성하지 못했던 세 가지 국정 목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이제 노무현의 그 꿈을 향해 다시 전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존경했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며 울먹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추도사를 읽은 이낙연 총리는 “(노 전) 대통령님이 꿈꾸던 세상을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저희는 그 길을 가겠다. 대통령님을 방해하던 잘못된 기성 질서도 남아 있다. 그래도 저희는 멈추거나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는 생전에 자신을 연결된 산맥이 없이 홀로 서 있어 외로운 ‘봉화산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셨지만, 결코 외로운 산이 아니다. 대통령님 뒤에는 산맥이 이어졌고, 국내외에 수많은 봉화산이 솟았다”고 말했다.

가수 정태춘씨는 기타를 치며 ‘떠나가는 배’와 ‘92년 장마, 종로’를 추모곡으로 불렀다.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을 지낸 유정아 전 아나운서는 “‘떠나가는 배’는 10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너럭바위 아래에서 잠드시던 날에도 불러주신 곡이라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상록수’를 부르며 노란 나비 1004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유 전 교장은 “내년 추도식부터는 어두운 옷을 벗고 밝은 옷을 입고 만나겠다”며 추도식을 마쳤다.

추도식이 끝난 뒤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인 너럭바위 앞에서 묵념했다.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긴 줄을 만들었다. 너럭바위는 넓고 평평한 큰 돌을 뜻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언을 남긴 데 따라 봉분 겸 비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위 위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새겨져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은 201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묘역에 너럭바위를 얹어놨는데, 그건 아이들도 올라가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한국당 대표단에 “왜 왔냐” 항의

노무현재단 측은 추도식 참석자가 2만여 명(오후 5시 기준)이라고 밝혔다. 당초 예상치였던 7000명보다 세 배 가까운 추모객이 몰렸다. 인파가 몰리면서 봉하마을 입구 차로는 극심한 차량 정체를 빚었다. 행사장에 마련된 3000석의 의자는 추도식 시작 2시간 전부터 만석이 됐다. 자리를 잡지 못한 추모객은 주변 산등성이와 인도에 앉아 추도식을 지켜봤다. 일부 추모객이 한국당 대표단으로 온 조경태·신보라 의원 등을 향해 “왜 왔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연차휴가를 쓰고 추도식에 참석했다는 직장인 김미정(38)씨는 “세상 살기가 힘들다 보니 노 전 대통령을 그리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며 “봉하마을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져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온 김정관(40)씨는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대통령도 있었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김해=이은지·이우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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