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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 하루 12시간 춤추던 예고생, 뉴욕대 입학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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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이하은. 어릴 때부터 무용을 전공한 그는 고교 때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은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사진제공 이하은]

연기자 이하은. 어릴 때부터 무용을 전공한 그는 고교 때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은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사진제공 이하은]

하루 12시간씩 한국 무용 연습을 하던 예고생이 미국의 명문대학인 뉴욕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조기에 졸업했다. 종일 공부만 해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뉴 아이비리그의 대학에 입학한 그 예고생, 여자 신인 연기자 이하은(29)이다.

연기자 이하은의 색다른 진로 탐색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무용 전공 #미국으로 유학가 경제학 공부 #"40년 뒤 김혜자 선생님처럼 되고파"

그는 초등학생 때 어린이 민속무용 및 합창단인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하며 해외 공연을 다닐 정도로 무용에 재능을 나타냈다. 무용으로 선화예중과 선화예고를 다니는 동안에도 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는 돌연 무용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기숙사 불이 꺼진 뒤 화장실에서 밤을 새울 정도로 공부에 전념한 그는 뉴 아이비리그로 주목받는 뉴욕대에 입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무용을 전공했어도, 미국 명문대 졸업장으로도 ‘꽃길’을 걸을 가능성이 컸던 그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40년 뒤 김혜자 씨와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게 이하은의 새로운 꿈이다.

무용만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다섯 살 때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어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무용을 하지 못한 엄마가 저를 이끄셨죠. 리틀엔젤스 단원이 됐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오로지 무용만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한국 무용을 전공했는데 외국에 나가면 정말 많은 박수를 받았어요. 일 년에 한 달 정도씩 미국 뉴욕이나 중국 등지로 해외 공연도 다니고, 국내 지방 공연도 많았어요. 선화예중과 선화예고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이예지는 이하은의 본명이다. 그는 예중,예고 시절 줄곧 장학금을 받았다. [사진제공 이하은]

이예지는 이하은의 본명이다. 그는 예중,예고 시절 줄곧 장학금을 받았다. [사진제공 이하은]

"더 넓은 세계로" 진로 급선회

“대학 진학을 위해, 또 좋은 무용단에 들어가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무용을 해야 한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어요. 리틀엔젤스를 하면서 어려서부터 외국을 다녔던 경험 때문인지, 세계에 한국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1 여름방학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예고 진학을 위해서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밤 10시까지 실기 연습을 했다. 짬짬이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며 학업도 쫓아갔다. 예고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실기는 물론 학업 성적도 좋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묻자 그는 “수학과 화학”이라고 했다.

시애틀 킹스 고교 시절 받은 우등상.그는 미국 고교에서도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제공 이하은]

시애틀 킹스 고교 시절 받은 우등상.그는 미국 고교에서도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제공 이하은]

대상포진에 걸린 유학 초기

“콜로라도 지역의 기숙 학교에 갔어요. 중학교 3학년 과정에 편입했는데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남들은 30분이면 하는 숙제를 밤을 새워 했어요. 취침 시간이 되면 룸메이트를 피해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공부했지요. 겨울 방학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간호사가 나이도 어린 애가 웬 대상포진이냐고 하더라고요."

무용할 때부터 몸에 밴 근성은 그가 학업을 할 때도 빛을 발했다. 그는 이듬해 좀 더 좋은 학업 환경을 찾아 시애틀로 이주했다.

행복했던 시애틀 시절  

“시애틀로 이주한 뒤에는 기숙사가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무용할 때는 좀처럼 TV 볼 기회도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엄마가 빌려온 한국 드라마 비디오에서 ‘황진이’를 봤어요. 하지원 씨가 나온 드라마였는데, 내가 한국 무용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땐 내가 연기자가 될 거란 꿈도 꾸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연기자가 된 계기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하은이 뉴욕대 대학 입학 때 제출했던 포트폴리오. 어려서부터 무용을 한 것이 대학 입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대학은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판단해 합격을 판단한다. [사진제공 이하은]

이하은이 뉴욕대 대학 입학 때 제출했던 포트폴리오. 어려서부터 무용을 한 것이 대학 입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대학은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판단해 합격을 판단한다. [사진제공 이하은]

뉴욕대 진학의 비결

내신을 탄탄하게 관리하고, SAT를 준비하고, AP 과목을 이수하고, 토플 점수를 받는 등 대입 준비 과정은 여느 유학생과 다를 게 없었다. 이하은은 “SAT 점수에 비해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며 “아마도 포트폴리오를 같이 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용했던 이야기,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때 함께 했던 이야기 등을 모두 담아서 대학에 제출했다. 그는 시애틀 고교 시절 한인 2세들에게 한국 무용을 가르친 봉사활동 내용과 추신수 선수 경기 때 함께 공연한 사실 등도 대학에 전달했다.

미국의 대입은 대부분이 학생부 종합전형 같은 형태다. 입학사정관은 그 학생의 잠재력과 미래가치까지 평가해 당락을 결정한다. 무용에서 거뒀던 높은 성과와 학업으로 방향 전환한 뒤 보여준 근성과 투지를 높이 평가한 게 아닐까 싶다.

연기자의 꿈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국회의원실, 로펌 등에서 인턴을 하면서 연기 학원에 다녔어요. 복학한 뒤 다시 휴학했어요. 공부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연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집에서 난리가 났죠. 학업을 마치는 조건으로 승낙받았고, 여름학기까지 활용해 7학기 만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무용을 전공한 그의 친구들은 지금 무용강사, 무용단원이 됐다. 대학 친구들은 기업이나 금융회사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연예계에서 이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 친구들이 부럽지 않냐고 물었다. “진로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게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니에요. 뉴욕대 동기 중에 정말 우수한 친구가 있어요. 졸업 후 글로벌 금융회사에 들어가 홍콩에서 일했죠.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건축을 하겠다며 사표를 냈어요. 그 친구는 지금 건축을 전공하고 있어요. 저도 졸업 후 잠시 취업 준비를 하고 취직이 됐지만 하나도 설레지 않았어요. 지금은 단역으로 한 신을 찍기 위해 온종일 촬영장에서 기다려도 가슴이 설레요.”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출연한 모습. 그는 "연기를 할 때는 한 신을 찍기위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설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이하은]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출연한 모습. 그는 "연기를 할 때는 한 신을 찍기위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설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이하은]

돌아온 길이 나의 재산  

연기자가 된 그에게 무용했던 시절과 미국 유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었다. 그는 “무용이나 연기나 몸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같아요. 또 무용할 줄 안다는 건 연기에서도 아주 좋은 특기가 되는 거죠. 미국 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일상들이 연기의 바탕이 되는 거 아닐까요. 사실 전 아주 꿈이 커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앞으로 할리우드나 외국으로 진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외모가 아닌 다른 것으로 더 빛나는 배우가 되는 게 신인배우 이하은의 목표다. [사진제공 이하은]

외모가 아닌 다른 것으로 더 빛나는 배우가 되는 게 신인배우 이하은의 목표다. [사진제공 이하은]

JTBC ‘판타스틱’ 간호사, OCN ‘보이스’ , tvN ‘비밀의 숲’, KBS ‘왜 그래풍상씨’ 등에서 그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남들이 30분 만에 하는 숙제를 밤을 새워서 하던 유학 초기 시절처럼, 대사 한마디를 하는 배역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그의 근성과 투지는 연기에서도 통할까.

톡톡에듀 기사

“저는 특출나게 예쁘진 않아요. 그런데 저, 볼매(볼수록 매력) 아닌가요. 전도연 선배의 연기, 김혜수 선배의 카리스마, 왠지 힐링 되는 느낌을 주는 서현진 선배의 매력 등 부러운 게 너무 많지만 제가 따라 할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잘하는 게 무엇이고, 나의 색깔이 무엇인지 찾고 있어요.” 무용가도, 글로벌 뱅커도 아닌 연기자 이하은,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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