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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국군 소위 계급장? 훈장 주고 동상까지 세워준 까닭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남식의 반려동물 세상보기(26)

개는 사람과 가장 친밀한 동물로 가족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도움을 주며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도우미 역할, 뛰어난 후각을 활용한 인명 구조견이나 탐지견과 군견, 활동성을 이용한 스포츠 등 그 예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특히 개가 인간의 생명을 직간접적으로 구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고 있으며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전북 임실 ‘오수’ 마을의 유래

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6일 전북 임실군 오수면 의견공원에서 열린 제34회 오수 의견문화제에서 연구 끝에 복원된 오수개 강아지가 간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6일 전북 임실군 오수면 의견공원에서 열린 제34회 오수 의견문화제에서 연구 끝에 복원된 오수개 강아지가 간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그중에서도 고려 시대 문인 최자(崔滋)가 1230년에 쓴 『보한집(補閑集)』에 등장하는 ‘오수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오수개는 불이 난 것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시대 전라북도 임실군에 살던 김개인은 기르던 개를 무척이나 사랑해 항상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동네잔치가 있어 다녀오던 중 술에 취해 풀밭에 누워 잠들었는데 마침 누워 있는 근처에서 불이 났다.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물고 끌었으나 깨울 수 없었고 불이 계속 번져오자 주인에게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온몸을 적신 다음 불 위로 뒹굴기를 반복했다.

불길은 더는 번지지 않아 김개인은 살았으나 개는 불을 끄느라 기력이 다해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를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그곳에 꽂아 두었는데 나중에 이 지팡이가 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자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라 부르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55년 의견비와 비각을 세우고 동산을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오수의견공원을 조성했다. 임실군에서는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해 의견문화제를 열어 오수개의 보은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올해 34회 행사를 가졌다.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호 의견비. [사진 문화재청]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호 의견비. [사진 문화재청]

인간과 개가 힘을 합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경기로 알려진 ‘아이디타로드(Iditarod)’라고 하는 개썰매 경주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이 대회는 1973년 처음 개최되었으나 그 유래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링 해에 인접한 소도시 놈(Nome)에 악성 디프테리아가 유행해 많은 주민이 죽어갔다. 앵커리지까지 공수된 디프테리아 면역혈청을 놈까지 이송할 방법은 육로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영하 50~60도의 극심한 추위와 강풍은 살을 에고, 심한 눈보라는 천지를 온통 하얗게 만들어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혈청을 한시라도 빨리 이송해야 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용감한 썰매꾼 10여명이 자원해 그들 소유의 시베리안허스키 100여 마리와 함께 결사의 마음으로 팀을 만들었다. 그들은 1600여km 떨어진 놈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쉴새 없이 달려 6일 만에 혈청을 무사히 옮겼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경기로 알려진 개썰매 경주 &#39;아이디타로드&#39;.이 경주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혈청을 이송했던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경기로 알려진 개썰매 경주 &#39;아이디타로드&#39;.이 경주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혈청을 이송했던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이디타로드는 경주에 참여하는 선수는 물론 팀을 이루는 개도 매우 힘들고 사람의 생명도 위험할 수 있다며 일부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아이디타로드 경주는 앵커리지에서 출발해 결승점인 놈까지 달리는 경기로, 미국의 4대 역사경기 중 하나로 지정된 개썰매 경주로 발전했다.

지금까지 이 경주의 우승기록은 점차 단축되고 있지만, 혈청을 옮긴 당시의 기록인 5일 8시간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땅굴 수색 중 순직한 군견 ‘헌트’

생명을 희생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군견의 활약상에 대한 기록도 있다. 1989년 강원도 양구 지역에서 북한의 제4땅굴이 발견돼 국군은 땅굴을 탐색한 뒤 이듬해 수색 및 소탕 작전을 했다. 작전에 투입된 4살 된 셰퍼드 종 군견 ‘헌트’는 유독가스와 부비트랩을 탐지하고 대원들보다 앞서 땅굴을 들어가는 임무를 맡았다.

1990년 북한의 제4땅굴 수색작전 도중 폭사한 군견 헌트. 헌트에겐 인헌무공훈장과 함께 소위 계급이 주어졌다. 육군은 헌트 소위 동상도 세웠다. [사진 육군]

1990년 북한의 제4땅굴 수색작전 도중 폭사한 군견 헌트. 헌트에겐 인헌무공훈장과 함께 소위 계급이 주어졌다. 육군은 헌트 소위 동상도 세웠다. [사진 육군]

헌트는 수색작업을 하던 중 북한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발견했고, 이를 대원들에게 알리려 급히 돌아오다 물속에 잠긴 목함지뢰를 밟아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수색대 10여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 다름없는 공을 세운 헌트를 기리기 위해 땅굴 앞에 묘와 동상이 세워졌으며, 국군 역사상 유일하게 군 계급인 소위로 추서되고 인헌무공훈장도 수여됐다.

동물 특히 개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복잡한 인간과 달리, 있는 그대로 매우 단순하게 행동하기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신남식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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