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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잃을 때까지 패줄 것" 요즘 중국선 반미 노래 히트

중앙일보

입력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내 반미 여론이 들끓고 있다. 반미 감정이 잔뜩 묻어나는 노래가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를 끌며 빠르게 퍼지고 있는가 하면 아이폰과 KFC 등 미국 대표 브랜드에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면서다. 중국 당국은 관영언론을 통해 연일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등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22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에선 ‘무역전쟁’(Trade War)이란 노래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노래는 남성들이 “무역전쟁! 무역전쟁! 터무니없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터무니없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무역전쟁은 태평양 건너 일어나고 있다!”는 가사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해자(perpetrator)가 싸우길 원한다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패줄 것”이란 가사도 있다.

당국도 나서서 반미 분위기 조장

이 노래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 중국 마을이 이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1960년대 영화 ‘터널 전쟁’(Tunnel War)의 주제가를 개사해 만든 것이다. 위챗서 벌써 조회수가 10만 건 이상 돌파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내 반미 감정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전했다.

1960년대 중국 영화 ‘터널 전쟁’(Tunnel War). [사진 위키피디아]

1960년대 중국 영화 ‘터널 전쟁’(Tunnel War). [사진 위키피디아]

“일본 침략 상황과 유사”…당국 검열도 통과

노래 프로듀서이자 작사가인 자오량전은 중국 쓰촨성 옌팅현의 전직 관료다. 현재는 공산당 선전부 소속 중국 시 연구소(Poetry Institute of China) 일원이다. 그는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뭔가를 해야 한단 압박감을 느꼈다”며 영화 속 상황이 현재와 유사해 이 곡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반미 성향의 시를 여럿 지었지만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한 이후 “중국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고 자오량전은 전했다. 반미 여론몰이에 나선 당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트 유통을 사실상 눈감아 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위챗엔 광둥성 청년동맹이 미국의 관세율 인상 대상에 포함돼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산물 중 하나인 틸라피아(역돔)를 더 많이 먹자고 중국인에 촉구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등장했다.

“애플→화웨이 갈아타자” 확산

미국산 제품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SNS인 웨이보 등에는 일부 중국 회사가 직원들에게 KFC나 맥도날드 음식을 사 먹지 말라고 강제하는 내용이 담긴 공지문이 떠돌고 있다. 행동으로 국가를 도와야 하며 여기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해고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하면서다.

환구시보의 후시진 총편집인은 웨이보에 자신이 9년간 썼던 아이폰 대신 화웨이 휴대전화로 바꿨다고 적었다. “미국 정부에 부당하게 탄압받는 화웨이를 지지하는 행렬에 동참한다”면서다. SNS상에선 이런 분위기에 동조해 화웨이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 웨이보 사용자는 “화웨이의 기능은 애플 아이폰과 비등하거나 더 좋다. 우리는 그런 좋은 대안을 갖고 있는데 왜 여전히 애플을 쓰나”라고 썼다. “무역전쟁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며 “돈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바꾸겠다”는 아이폰 사용자도 있다. 버즈피드 뉴스는 “미국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중국에서 화웨이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다”고 썼다.

중국은 타국과 사회·정치적 갈등을 겪을 때마다 분노의 표현으로 ‘바잉 파워’를 앞세워 상대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왔다. 앞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체포됐을 땐 캐나다산 유명 의류 브랜드인 ‘캐나다 구스’가 유탄을 맞은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연합뉴스]

반미 여론 불지피는 당국 

이런 여론전은 중국 당국이 앞장서 주도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관영 매체들은 외압에 대한 통일된 저항을 촉구하는 논평을 실어나르고 있다”고 전했다. 관영 CCTV는 지난주부터 영화채널에서 한국전쟁 참전을 집중 조명하는 영화들을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고 있다. 중국군의 상징적 승리라 여기는 한국전쟁을 부각시키며 미국에 맞선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타임스의 수 하이린은 기고문에서 “무역전쟁은 많은 중국인에게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한다“며 “회담과 싸움에 관여한 중국인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며 이 마찰이 당장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고 썼다.

반미 기조가 거세지면서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 방영도 잇달아 취소됐다. 20일엔 중국 플랫폼 텐센트가 ‘왕좌의 게임’ 마지막 편을 갑자기 불방해 논란이 일었다. 텐센트는 미디어 전송 문제 탓이라고 밝혔지만 SNS상에선 정치적 요인 때문에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등 설왕설래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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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양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는 “모든 선전은 목적을 띤다”며 “심리적 측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고 있는 걸 보여지길 원하며 중국이 강한 얼굴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워싱턴포스트에 설명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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