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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 태양 궤적을 한 화면에… 어떻게 찍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3)

'찍는 건 니 맘, 보는 건 내 맘' 이라지만 사진은 찍는 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매체다. 중앙일보 기자로 필드를 누볐던 필자가 일반적인 사진의 속살은 물론 사진 잘 찍는 법, 촬영 현장 에피소드 등 삶 속의 사진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사진을 찍는 의성어를 ‘찰칵’이라고 합니다. 셔터 막이 열리는 소리가 ‘찰’이라면 ‘칵’은 닫히는 소리입니다. 이 순간 빛이 렌즈 구멍을 통해 들어와 이미지가 필름(센서)에 맺힙니다. 사진을 ‘순간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진이 짧은 순간만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에 가깝게 오래 찍을 수 있습니다. 이를 장노출 사진이라고 합니다.

저스틴 퀸넬이 6개월간 촬영한 브리스톨 현수교. [사진 pinholephotography.org]

저스틴 퀸넬이 6개월간 촬영한 브리스톨 현수교. [사진 pinholephotography.org]

위 사진은 ‘바늘구멍 사진가’로 유명한 영국 저스틴 퀸넬(Justin Quinnell)이 브리스톨 현수교를 6개월 동안 촬영한 ‘초장노출’ 사진입니다. 2007년 12월 19일부터 2008년 6월 21일까지 촬영했습니다. 다리 위에 보이는 하얀 포물선은 해의 궤적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높이가 매일 조금씩 변합니다. 아래쪽에 있는 하얀 포물선은 겨울입니다. 가장 높이 올라간 해의 궤적이 여름입니다.

비어 있는 경우는 온종일 흐리거나 비나 눈이 온 날입니다. 점선처럼 군데군데 끊겨 있는 선은 구름이 해를 가린 흔적입니다. 무려 6개월의 시간이 녹아있는 경이로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바늘구멍 카메라(Pinhole camera)를 근처 전봇대에 매달아 찍었습니다. 저스틴 퀸넬은 버려진 탄산음료 캔 두 개를 이어 붙여 밀봉한 뒤 송곳으로 너비 2.5mm의 구멍을 뚫은 다음 반대쪽에 인화지를 붙여 수제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바늘구멍의 원리’를 이용한 매우 원초적인 카메라입니다. 바늘구멍의 원리는 밀폐된 캄캄한 공간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반대쪽에 바깥 풍경이 거꾸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인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고안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한때 화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카메라의 전신입니다.

놀라운 사진이지만 ‘6개월’은 초장노출사진 세계에서 긴 시간이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현존하는 사진 중 최장노출로 알려진 사진은 독일의 사진가 마이클 웨슬리(Michael Wesely)가 찍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입니다. MoMA의 재건축 장면을 2001년 8월 9일부터 2004년 6월 7일까지 약 34개월 동안 찍었습니다.

세계최장노출 사진으로 알려진 뉴욕현대미술관(MoMA) 재건축 장면. [사진 wesely.org]

세계최장노출 사진으로 알려진 뉴욕현대미술관(MoMA) 재건축 장면. [사진 wesely.org]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 뒤로 해의 궤적이 보입니다. 또 겹쳐진 건물과 공사장의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있습니다. 웨슬리는 이를 위해 4x5인치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실패에 대비해 카메라 네 대를 MoMA 근처 빌딩 네 곳에 설치했습니다.

초장노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렌즈 구멍(조리개)을 아주 작게 해야 합니다. 둘째 ND 필터를 비롯해 빛의 밝기를 줄이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ISO가 아주 낮은 저감도 필름이 필요합니다. 이 외에도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합니다. 눈비를 막는 방수 기능도 필수입니다. 흔들림도 고려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카메라를 설치할 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건물 외벽을 이용했습니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 카메라 거치대를 만든 다음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카메라는 최장 40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 최장노출 사진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미국의 천재 개념예술가 조너던 키츠(Jonathon Keats)는 천 년 동안 사진을 찍는 ‘밀레니엄 카메라 프로젝트(Millennium camera Project)’를 이미 시작했습니다. 2015년부터 3015년까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템페(Tempe)시가 변화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계획입니다. 물론 사진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볼 수 없습니다.

천년 동안 사진을 찍기위해 존 키츠가 만든 바늘구멍 카메라. [사진 Jonathon Keats]

천년 동안 사진을 찍기위해 존 키츠가 만든 바늘구멍 카메라. [사진 Jonathon Keats]

키츠는 지난 2015년 애리조나 주립대학 미술관(Arizona State University Art Museum) 3층에 카메라(위)를 설치했습니다. 특수 제작한 원통형 바늘구멍 카메라입니다. 천 년을 견뎌야 하므로 청동과 순금으로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필름이나 인화지 대신 페인트를 사용합니다. 빛을 받으면 색이 천천히 변하는 특수 도료입니다. 천 년의 기록을 사진 한장으로 남기는 ‘포토 캡슐’이 됐습니다.

키츠는 이 외에도 독일 베를린에서 백 년 동안 사진을 찍는 ‘센추리 카메라 프로젝트(Century Camera Project)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시내 곳곳 비밀장소에 100개의 바늘구멍 카메라(아래)를 설치하고 도시가 변하는 모습을 한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계획입니다. 100명의 자원봉사자를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곳곳에 숨겨둔 카메라를 관리하고, 자신이 죽기 전에 후손에게 카메라 위치와 개봉 시점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 100년 동안 도시가 변하는 모습을 담는다. [사진 Jonathon Keats]

베를린 시내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 100년 동안 도시가 변하는 모습을 담는다. [사진 Jonathon Keats]

장노출 사진을 찍을 때 바늘구멍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해 맺히는 화상의 밝기가 일반 카메라보다 훨씬 더 어둡기 때문입니다. 화질은 선명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더 오래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센서와 배터리의 한계로 장노출 사진을 찍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장노출 사진의 매력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정지된 이미지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철학적인 메시지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나타나는 우연성도 장노출 사진의 장점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한 꺼풀씩 벗겨가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밝기를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노출 시간이 30초를 넘어가면 과학적인 측광의 공식이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경험치에 의존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 계산하면 필름이 타버리거나 어둡게 됩니다. 색의 구현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카메라의 흔들림도 유의해야 합니다.

더구나 6개월, 1년, 100년, 1000년 동안 사진을 찍는 측광의 데이터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광학과 화학 기술을 넘어 영감이 필요한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할까요. 서기 3015년, 우리 후손들은 조너던 키츠가 남긴 ‘1000년의 사진’을 볼 수 있을까요?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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