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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나쁘니 꼭 마스크 쓰라고? 공포마케팅은 아닐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37)

유난 떤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초미세먼지 운운하면서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교실 밖 체육 활동을 멈추라고 학교에 전화하는 부모들 소식을 들으면 그랬다. 휴대용 공기정화장치며 산소캔의 등장은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라 여겨졌다. 살아가노라면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할 위험이 있다는 ‘소신’에서였다. 게다가 어릴 적엔 안개처럼 소독약을 뿜어대는 방역차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니 ‘그까짓 먼지쯤이야’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게 영 터무니없는, 요즘 말로 하면 ‘근자감’이 아니란 근거를 제시하는 책을 만났다.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장재연 지음, 동아시아)란 책인데 이게 음모론자나 사이비 과학자의 글이 아니다. 지은이는 1988년 서울시 미세먼지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딴 의대 교수다.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장재연 지음.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장재연 지음.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을 정도로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가 구체적 데이터와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미세먼지의 위험성, 원인, 대책 등을 과학적으로 짚어주는데 보기에 꽤 설득력 있다.

사실 미세먼지 관련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만큼 이 책을 분석, 비평하기보다는 발췌, 요약하는 수준이 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싶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미세먼지 오염이 지금이 최악이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나쁜 수준이 아니란다. 미세먼지 오염도가 개선됐다고 믿는 국민은 3.1%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이는 사실과 다르단다. 90년대 이후 청정지역은 사라지고, 지방의 미세먼지 오염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대기 오염은 꾸준히 개선되었음을 다양한 자료를 들어 보여준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도가 세계 173위로 최하위권이라는,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가 2016년 발표한 ‘환경성과지수’도 검증 없이 이뤄진 통계 해석 오류란다.

최고 31도에 이르는 더위가 이어진 지난 16일 오전 서울 하늘이 미세먼지까지 겹쳐 뿌옇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최고 31도에 이르는 더위가 이어진 지난 16일 오전 서울 하늘이 미세먼지까지 겹쳐 뿌옇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선 그 통계는 실제 대기질 측정 자료가 아니라 일부 학자들이 인공위성 자료로 추정한 불확실한 값을 토대로 평가한 결과라는 것이다. 스위스, 독일 등 유럽의 환경 선진국이나 일본이 세계 최악 수준이라는 나이지리아나 아프가니스탄보다 오염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나는 조사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미세먼지의 위험도 과장되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환경부는 고농도 미세먼지기 1시간 이상 지속하면 외출 등 실외활동 자제, 마스크 쓰기, 창문 닫기 등은 권고하는데 ‘매우 나쁨’의 기준이 미국보다 두 배 엄격하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처럼 1시간 단위 농도가 아니라 24시간 평균값을 근거로 한단다.

‘미세먼지=중국발’이라는 프레임도 과학적 근거가 취약한,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란다. 입력할 자료가 부족하거나 묵은 것이고, 한중 공동연구도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것. 지은이는 중국발 미세먼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언론의 자기반성적 기사나 학자들의 연구,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까지 극언을 한다.

이 같은 잘못된 ‘진단’ 탓에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고, 국민이나 기업도 저감 대책에 협조하는 대신 각자도생에 나섰고, 이와 관련한 대중 외교도 헛발질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어린이가 엄마 품에 안겨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스1]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어린이가 엄마 품에 안겨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마스크는 미세먼지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미세먼지 제거율이 높은 마스크를 쓰면 1회 호흡량과 호흡 빈도를 증가시키고, 폐포와 폐에서의 환기를 감소시킨다는 미국 흉부학회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며 질환자나 노약자, 임신부나 어린아이의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이런 오해와 미신을 ‘천동설(天動說)’에 견준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잘못된 천동설은 1,000년 이상 사람들을 미혹했다. 미세먼지를 화석연료와 쓰레기 소각 등 우리 생활과 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지 않고, 모두 이웃 나라에서 온 것이며 우리는 피해만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미세먼지 천동설’이다.

지난 5년간 온 사회가 여기 몰입돼 이웃 나라가 미세먼지 오염도를 40%나 개선하는 동안 우리는 공포에 떨며 이웃 나라에 대한 분노만 키우고, 차량 2부제 같은 엉뚱하고 효과 없는 대책에 매달렸다고 한다.

제대로 진단하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미세먼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이 책은, 쉽게 설명한 축약판을 만들어서라도 전 국민에게 읽혔으면 싶다. 적어도 무능한 정책 당국, 게으른 관련 학자들, 호들갑만 떠는 언론 종사자들이 이 책을 필독하고 진지한 토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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